얼마 전 이사 온 동네에는 천이 흐른다. 천을 따라 난 긴 산책로를 걷다 보면 중대백로와 흰뺨검둥오리를 만날 수 있다. 마주치면 피하기 바빴던 비둘기 떼와 달리 이런 야생동물은 가까이서 볼수록 신기하다. 처음에는 왜가리나 청둥오리쯤으로 생각했는데 실은 독특한 수식어를 가진 백로와 오리였다. 흰뺨검둥오리 1마리가 가만히 있길래 조용히 다가가 후추 알처럼 까만 눈망울, 줄무늬가 나 있는 얼굴, 노란 부리 끝, 진한 오렌지색 다리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청둥오리처럼 얼굴이 푸르지 않네’라고 생각하던 찰나 저만치 예닐곱 마리의 흰뺨검둥오리 떼가 모두 이런 모습으로 유유자적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중 물장구치는 녀석, 꽥 소리를 내는 녀석에게 순간 눈길이 가다가도 그 무리를 다시 보고 있자면 아까 소리를 낸 놈이 이 녀석인지 저 녀석인지 알 수가 없다.

  우리는 대부분, 주변 사람들과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간다. 특별한 경험을 해 봤거나 독특한 삶을 사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많지는 않다. 사람의 사고와 표현은 삶과 경험에서 비롯되기에 비슷하게 살아온 우리의 생각, 그리고 그걸 담아내는 말과 글은 당연히 닮아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학에 들어와 글쓰기, 말하기 교양 수업을 듣다 보면 자꾸 특별한 경험, 참신한 생각, 남들과 다른 나만의 이야기를 하라고 한다. 참 쉽지 않은 일이다. 같은 대상, 같은 상황을 보고도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는 게 쉽냐는 말이다.

  우선은 바라보자. 표현하려는 것이 구체적인 사물이면 구석구석 관찰하고 추상적인 개념이면 종이에 툭 써 놓고 바라보자. 서두르지 말고 진득하니 바라보다 보면 그 노력을 보상받듯 그동안 보이지 않던 무언가가 고개를 든다. 사소하지 않을까 섣불리 판단하지 말고 그것을 잡아 질문을 시작하자. 질문은 당연히 내 삶이 묻어난 질문이다. 지금의 나를 만들어낸 이 삶은 그 누구의 삶과 같지 않다. 내 삶이 연결된 질문들을 던지며 답하다 보면 보석 같은 소재가 고개를 들 것이다. 그럼 이제 그것을 캐내서 멋있게 세공하면 된다.

  오래 보라는 건 대상과 내 삶을 연결해서 깊이 생각해보라는 말이다. 남들은 그냥 지나쳐도 나는 뒷걸음질로 돌아가서 한 번 더 들여봐야 유레카를 외칠 수 있다. 글을 쓸 때마다, 말을 할 때마다 이런 의식이 번거로울 수 있겠지만 그러지 않으면 내 글과 말도 물가의 오리 떼와 다를 바 없지 않을까. 그런데 그 오리들의 삶이 다 같을까? 각자 다른 곳에서 살았고 각기 다른 하루를 보내며 유니크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금도 각자만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개인의 역사는 켜켜이 쌓이고 있으니 표현할 소재 또한 마를 일이 없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라는 시의 구절처럼 나의 삶을 자세히 보아야 표현하고 싶은 것이 보이고, 오래 보아야 더 매력 있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윤경선 강사
다빈치교양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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