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극복 일기 feat. 연세대 우정원 생활치료센터
  • 김서경 기자
  • 승인 2021.12.06 10: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기자의 따뜻한 신변잡기

‘올여름의 할 일은 모르는 사람의 그늘을 읽는 일’ 지난여름 광화문 글판에 내걸린 김경인 시인의 글을 보며 이번 학기 여론부는 당신의 그늘 속으로 찾아가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 순간으로부터 뜨겁게 달려 어느덧 추운 겨울에 닿았는데요. 여론부가 함께 할 마지막 당신은 ‘코로나19 확진자’입니다. 코로나19라는 추운 계절을 나고 있는 당신의 그늘을 읽어봤습니다. 누구에게나 겨울은 찾아옵니다. 다만, 서로 함께한다면 그 어떤 겨울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을  
아프게 하는 건 아닐까?  
나는 다시 건강해질 수 있을까?”

어느 날 목이 아프고 기침이 났습니다. 쌀쌀해진 공기 탓에 목감기에 걸린 건가 싶었는데 조금 있으니 오한도 느껴졌죠. 불안한 마음이 들어 ‘내일 일어나자마자 코로나19 검사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자려고 누워있는데 몸이 너무 뜨거워 열을 쟀더니 체온이 38.7도였죠. 계속되는 열 때문에 잠을 설쳐서인지 날이 밝았는데도 정신이 몽롱했습니다. 가누기 힘든 몸을 이끌고 보건소에 도착해 코로나19 검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보건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검사 결과 양성이네요’

  중앙대생 연세대에 가다
  ‘제가 양성이라고요?’ 너무나 당황스러웠습니다. 이제 기자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코로나19 확진자는 최소 약 10일 동안 격리돼야 합니다. 자가격리를 하거나 시설에 들어가 격리치료를 받아야 하죠. 증세가 위중한 환자는 의료기관에서 입원치료를 받습니다. 그렇지 않은 환자는 생활치료센터에 입소하죠. 기자가 확진 판정을 받은 다음 날 이른 아침에 가족들의 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기자를 제외한 다른 가족은 모두 음성이었습니다. 따라서 기자는 가족들과 떨어져 격리해야 했죠. 그날 오후에 바로 생활치료센터로 옮겨졌습니다.

  기자가 갔던 생활치료센터는 연세대 생활관 ‘우정원’입니다. 우정원 생활치료센터는 2인 1실로 운영됩니다. 가족이 함께 입소한 경우가 아니면 처음 보는 사람과 방을 같이 써야 하죠. 그런데 기자는 이틀 만에 방을 혼자 쓰게 됐습니다. 같은 방을 쓰던 사람이 다른 치료기관으로 이동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픈 상태로 낯선 사람과 한 공간에 있어서 힘들기도 했는데 혼자가 되면서 긴장이 조금 풀렸습니다.

  입소자들에게는 보급품이 제공됩니다. 물·이불·베개·휴지·물티슈·세안도구·수건·슬리퍼·컵라면 등을 받죠. 식사는 아침·점심·저녁 하루 3번 공급됩니다. 방문 앞에 식사가 놓이고 안내 방송이 나왔을 때 식사를 챙기면 되죠. 아침으로는 샐러드·샌드위치·과일·요거트 등이, 점심과 저녁에는 주로 도시락이 나왔습니다.

  생활치료센터에 있는 동안 환자는 자신의 건강 상태를 직접 측정합니다. 하루 3번 정해진 시간에 제공된 의료기기로 체온·혈압·맥박·산소포화도를 확인하죠. 이 수치를 생활치료센터 앱에 입력해야 합니다. 또한 의료지원팀은 주기적으로 환자에게 전화해 몸 상태를 물어봅니다. 전화를 통한 진료와 앱에 기록된 정보를 바탕으로 약 처방과 같은 의료적 조치가 취해집니다.

  격리 기간에 식사와 약을 가져가거나 폐기물 통을 내놓는 때를 빼면 절대 방문을 열어선 안 됩니다. 엑스레이를 찍으러 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방 밖으로 아예 나갈 수 없죠. 작은 방과 창 너머 보이는 풍경이 세상 전부가 됐습니다. 기자는 누운 채로 쉬거나 깊이 생각을 하고, 수업을 듣거나 과제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예고도 없이 갑자기 작아진 세상 속에서 때로는 평소 같은 일상을, 때로는 낯선 삶을 살았죠.

  불안한 마음 끝에 맺히는 눈물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고 나서 며칠간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걱정이 가장 먼저 들었죠.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줬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이 마음을 조여 왔습니다.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낸 가까운 사람일수록 바이러스가 전파됐을 확률이 높다는 사실 때문에 미안하다 못해 괴로웠습니다. 죄책감은 자신을 자책하게 했습니다. 방역수칙을 어긴 적이 없고 학교 외에는 특별히 간 곳이 없었음에도 스스로 탓할 수밖에 없었죠. 가족과 지인을 포함해 주변 사람들이 모두 음성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기 전까지 가슴에 큰 돌이 얹혀 있는 듯했습니다.

  코로나19 확진자 중 큰 증상이 없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그러나 기자는 기침을 비롯해 발열, 오한, 미·후각 상실, 복통 등 많은 증상을 겪었죠. 그동안 봤던 무서운 뉴스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기자에게 현실이 되자 소식이었던 뉴스가 공포로 변했습니다. 몸이 너무 아프니 ‘이러다 죽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마치 평범했던 일상이 차원이 뒤틀리면서 기자를 집어삼키는 공간이 된 것 같았습니다.

  외부와 단절되면서 고립됐다는 불안감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무력감이 들기도 했죠. 밀접 접촉자로 분리돼 자가격리를 했던 대학생 A씨는 위급한 상황이 생겨도 연락 외에 방법이 없는 점이 답답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격리 기간에 지인이 경찰서에 있다고 들었어요. 평소 같았으면 직접 찾아갔겠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 없어서 아주 갑갑했죠. 다행히 큰일은 아니었지만 만약 위험한 상황이었다면 ‘집에서 할 수 있던 일이 뭐였을까’라는 생각에 불안하기도 했답니다.”

  사람 말고 코로나19를 미워해 주세요
  중앙대에서는 카카오톡으로 교내 코로나19 확진자에 대한 정보를 안내합니다. 동선을 비롯한 기자의 정보도 공개됐죠. 그런데 기자가 동선 중 한 곳에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고 안내가 잘못 나갔습니다. 실제로는 마스크를 착용한 데다 해당 장소에서 마스크를 착용했는지 기자에게 물어본 사람이 아예 없었죠. 그리고 대학별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서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비판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것에 대한 비판부터 알려진 동선을 바탕으로 ‘중대신문 기자인 것 같다’는 추측까지 있었죠. ‘중증으로 죽었으면 좋겠다’는 도 넘은 비난도 있었습니다.

  이는 자료 정리 과정 중 실수로 인한 오보였고 사실이 아니었음이 정정 안내를 통해 밝혀졌습니다. 기자의 억울함은 조금이나마 해소됐죠. 하지만 아픈 몸으로 낯선 환경에 있으면서 이런 상황을 견디고 해결하는 일은 고단했습니다. 코로나19 초기 확진자는 심한 질타를 받기도 했죠. 사건의 본질을 넘어선 비난은 항상 누군가를 상처 입히기 마련입니다. 서럽고 힘들었던 기자의 경험은 지금도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을 사람들에게 더욱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이 됐습니다.

  바이러스가 다니는 길? 치유가 다니는 길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사람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퍼집니다. 바이러스의 강한 전염성은 교류 없이 생활하지 못하는 인류의 특징을 약점이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기자는 힘든 시기를 오히려 이 네트워크를 통해 극복했습니다.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받은 위로와 공감 덕분에 막막한 시간을 견뎌낼 수 있었죠. A씨 또한 주변으로부터 받은 격려가 힘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증상이 없어서 크게 공포를 느끼진 않았지만 주변에서 해준 위로의 말이 고마웠어요. 저나 가족에게 조금이라도 증상이 있었다면 그런 말에 크게 의지가 됐을 것 같아요.”

  거리두기 수칙으로 잠시 약해졌던 네트워크가 역설적으로 코로나19에 걸리면서 다시 강해졌습니다. 누군가 옆에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용기가 됩니다. 기자 곁에는 항상 함께 해온 사람들이 있었죠. 코로나19 상황 속 잠시 희미해졌던 네트워크의 가치를 새롭게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힘든 순간을 네트워크를 통해 이겨냅니다. 인류가 가진 강점이죠.

  격리 기간에 기자는 별을 헤아리며 많은 밤을 지새웠습니다. ‘저 별은 얼마나 오래됐을까’ 생각했죠. 인류의 긴 역사에는 무수히 많은 고난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를 함께 극복했죠. 우리는 이겨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오늘의 아픔이 내일은 면역이 되길 바랍니다.

사진 김서경 기자
사진 김서경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