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십년간 지속되어온 문화재 테러사건들 중 하나가 곪아터졌다. 바로 백제유적지인 풍
납토성 훼손이 그것. 며칠 전부터 각 일간지 커버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풍납토성의 훼
손사건은 단순히 ‘주민 이기주의’로 빚어진 것이 아닌 수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우려했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예정된 테러’라 더욱 충격일 수 밖에 없다.

풍납토성은 백제의 수도였던 하남 위례성이라고 추측되고 있는 유적지로 백제의 문화 및 생
활양식을 알 수 있는 우리 고대사의 중요한 단서라 할 수 있다. 더구나 이 곳이 동양 최대
의 판축토성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우리의 것만이 아닌 세계적인 문화유산의 가치가 있음
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폼페이 유적이라고 불리는 풍납토성은 1963년 성내부는 제외된
채 성곽만 사적으로 지정된 이후 아무런 보존대책도 없이 개발에 시달려왔다. 97년까지 성
을 복원한다는 정부의 계획이 발표되긴 했으나, 필요에 따라 쓰레기 처리장으로, 얼마 전에
는 구청회관을 짓는다 했다가 급기야는 포크레인으로 부지를 밀어버리는 사태까지 발생했
다.

어쩌면 이미 울산의 삼국시대 주거지 위에 아파트를 세우고, 사전지표조사도 없이 공사를
강행해 삼한시대의 논티산성 유적의 70%를 밀어버린 선례가 있는, ‘천년의 고도’ 경주에
다 경부고속철도를 건설한다는 ‘야무진’ 꿈을 꾸었던 우리 나라로서는 이쯤이야 당연한
축에 속할 지도 모르겠다.

프랑스의 브레타뉴 지방의 바르네즈는 신석기 시대의 집단분묘 지역으로 유명한 곳이지만
유적지로 발굴되기 전에는 석재 채취장일 뿐인 돌산이였다.

그러나 채취작업 도중 유적지가 발굴되자 즉각 공사를 중단하고 발굴작업에 착수하였다. 일
본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사가현 요시노 거리는 80년대 산업공단의 유망지였으나 문화재
조사과정 중에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4세기까지의 유적이 묻혀있는 곳이라 판명되자 곧
공업화를 중단하고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발굴 및 보존, 관리작업을 하고 있다.

수십 세기동안 나라의 심장부 역할을 해왔던 서울에 변변한 문화가 없고 유적이 없다는 것
을 곰곰히 생각해봐야 한다. 없는 것이 아니라 개발논리로 소중한 유적을 모조리 파괴시킨
것은 아닌지.

항상 모든 것이 그렇듯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문화
란 없다. 이번 사태로 많은 시민단체에서 문제제기를 하고 나섰으며, 정부에서도 관련 법규
와 보호정책을 펴겠다고 나서고 있지만 이미 백제의 숨결은 반쯤 끊어져 땅 속에 묻혀버렸
다. 그 숨결을 이제 어떻게 살려낼 것인가.

<이은정 기자> cocoa@press.c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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