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경제에서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이윤을 내며 발전해야 한다. 동시에 사회적 책임도 지닌다. 그렇기에 기업을 이끄는 최고경영자는 이윤 창출과 사회적 책임을 항상 생각해야 한다. 박종한 대표(기계공학과 83학번)가 이끄는 웰킵스는 ‘당신이 머무는 건강한 삶, 그 곁에 언제나 웰킵스’라는 슬로건 아래 직원에 대한 회사의 배려, 회사에 대한 직원의 배려, 기업으로서 사회에 대한 배려를 염두에 두며 지속 가능한 기업을 꿈꾼다.

사진제공 웰킵스

코로나19 방역 물품의 중심에 마스크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에, 웰킵스 사무실에서 만난 박종한 대표(기계공학부 83학번)는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국내 마스크 시장 점유율 1위 기업인 웰킵스가 코로나19 수혜 기업이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박종한 대표는 재난과 같은 위기를 이용해 이익을 취하지 않기 때문이다. “생산과 비용의 개념으로 접근하지 않고 안전과 안심의 균형을 맞추려고 해요.” 그래서 그는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와의 이야기를 통해 웰킵스가 ‘착한 기업’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웰킵스를 소개한다면. 

  “웰킵스는 잘 지켜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마스크가 주 판매 상품이 아니라 마스크, 손 소독제, 방호복 등 방역과 관련된 모든 제품을 생산하죠. 2008년부터 마스크를 생산해왔고 국내 보건용 마스크를 허가받은 1호 회사입니다. 또 최근에 비말차단용 마스크(KF-AD)도 처음으로 등록했어요. 코로나19 이전에도 국내 마스크 시장 점유율은 1위였죠. 감히 말씀드리자면 마스크 업계에서는 이미 탄탄한 기반을 가지고 있답니다.” 

  -중앙대 기계공학과 출신이다. 

  “특별히 중앙대를 선택한 멋진 계기는 없습니다.(웃음) 제가 서울공고 출신이에요. 중학교 때 디자이너가 꿈이었는데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미술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었죠. 
당시 공고는 학비를 지원해 주는 제도가 있어서 공고에 진학해 공장에 취직했어요. 또 공고 출신 학생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동일계 진학이라는 제도가 있었죠. 디자이너를 꿈꿨지만 고등학교에서도 기계를 전공했으니 동일계 진학으로 중앙대 기계공학과에 입학했어요.”

  -캠퍼스에서 추억이 있나. 

  “그때 할매동산에서 놀았던 기억이 있죠. 중앙대에 다닐 당시는 민주화운동이 굉장히 열정적일 때였어요. 수업의 반을 휴강할 정도였죠. 저희 세대 대부분이 아마 대학 시절에 큰 추억이 없을 거예요. 또 저는 대학 다닐 때 스스로 학비를 마련해야 했기 때문에 캠퍼스에서의 멋진 추억이 없어서 제일 아쉽네요.” 

  -대학 졸업 후 바로 취직했는지.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에 갔어요. 당시 수입이 괜찮은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그만두면 전역하고 나서 졸업을 못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대학 생활 중에 입대하지 않았죠. 

  전역 후 13일 만에 입사 시험을 보고 한 달 만에 취직했어요. 유한킴벌리 산업용품 사업부에서 영업과 마케팅을 담당했죠. 인생을 돌이켜보면 놀았던 날이 없었네요.(웃음) 이후 1996년 말쯤 회사를 그만두고 시작한 유한킴벌리의 대리점이 제 사업의 출발이었죠. 오랫동안 대리점 일을 하면서도 계속 사업을 키워나가는 일을 했어요.” 

  -웰킵스 창업 계기는. 

  “대리점 운영은 유통의 변화를 읽는 일이 중요해요. 처음에는 이마트와 같은 대형 유통업체의 출현으로 변화가 시작됐죠. 이후 온라인 시장이 등장했고 지금은 쿠팡과 같은 소셜 커머스의 시대로 바뀌었어요. 그러한 변화를 경험하면서 대리점 사업의 한계를 일찍 느꼈고 제조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죠. 그래서 산업용 방진 마스크 만드는 사업을 2009년부터 시작했답니다.” 

  -대기업 소속 직원과 창업을 하는 일은 리스크 측면에서 차이가 있었을 텐데. 

  “맞아요. 대리점은 본사 제품을 받아서 잘 팔기만 하면 되죠. 제품 개발이나 마케팅에 신경을 쓸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사업을 시작하면 그렇지 않잖아요. 기획부터 판매 대상과 제품을 선정해 누구에게 어떻게 팔지 등을 정해야 하죠. 

  그래서 위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유한킴벌리가 잘 팔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방법을 택했어요. ‘내가 지금까지 유한킴벌리 제품을 팔아줬지만 이제부터는 내 제품을 유한킴벌리가 팔게 하자’는 역발상으로 시작했답니다.” 

 -코로나19 초기부터 지금까지 마스크 가격을 동결해왔다고. 

  “코로나19는 재앙적 질병이잖아요. 재난을 이용해 돈을 버는 행위는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코로나19 초기에 웰킵스는 마스크 가격을 단 1원도 올리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그 약속을 지금까지 지켰습니다. 마스크나 방역 물품은 시의성이 강한 상품이라 생산 비용, 보관 비용, 재고가 남을 시의 위험성을 고려해서 판매가를 책정하죠. 그래서 이미 충분한 마진이 확보된 상품이에요. 재난을 이용해서 이 마스크에 많은 돈을 받고 파는 일은 폭리를 취하는 행위죠.” 

  -이윤 창출이 목적인 기업에서 가격 동결 결정이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 

  “가격을 동결하면 회사 입장에서는 적어도 700억 이상의 추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돼요. 대신 고객의 신뢰를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한창 마스크 대란으로 혼란스러웠을 때 저희 아르바이트 직원이 마스크를 깔고 엎드린 사진이 SNS를 통해 퍼져나가는 소위 ‘마스크 테러’ 사건을 겪은 적이 있어요. 이런 일이 생기면 대부분의 중소기업, 특히 저희 회사와 같은 소기업에서는 해결할 방법이 없죠. 정말 감사하게도 웰킵스 진성 고객들의 도움으로 잘 대처할 수 있었어요. 저희가 쌓아온 신뢰가 없었다면 기업이 한순간에 위기를 맞는 아찔한 사건이었죠.” 

  -웰킵스를 ‘착한 기업’으로 거듭나게 한 경영 철학이 궁금하다. 

  “거창한 경영 철학은 아니지만 지속 가능한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법적 준수뿐만 아니라 도덕적 준수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누구의 약점이나 위기, 지금과 같은 재난을 통해 이윤을 취하는 일은 절대 해서 안 되죠. 또한 직원에 대한 배려, 직원의 회사에 대한 배려, 기업으로서 사회에 대한 배려는 기본적인 전제로 둬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진제공 웰킵스

“누군가 ‘코로나19가 종식되면 웰킵스가 제일 손해 아니야?’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죠. 웰킵스에 서 방역 용품이 많이 팔린 일은 사 실이지만 재난 상황에서의 비정 상적인 사업보다는 예측 가능한 사업이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해 요. 물론 이윤 창출은 기업 본연 의 업무죠. 하지만 기본적으로 지 속 가능한 회사가 되려면 누군가 의 약점이나 위기를 이용해 막대 한 이익을 취해서는 안 됩니다.”

  -비말차단용 마스크(KF-AD)를 500원에 판매한다고 했을 때 깜짝 놀랐다. 실제로도 품절 대란이 발생했는데. 

  “공적 마스크도 1500원인데 웰킵스에서 500원짜리 마스크가 출시됐고, 또 숨쉬기도 편해서 생긴 품절 대란이라고 봐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마스크는 높은 마진을 남기는 상품이에요. 초기에 마스크 대란이 발생했을 때 웰킵스에서 공적 마스크를 최초로 제안했죠. 

  국가가 유통 채널 마진을 최소화해 마스크의 가격을 1000원보다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하지만 여러 이해 당사자가 모이다 보니 가격이 1500원으로 책정됐죠. 저희 입장에서는 수익을 낼 수 있으니 잘된 일이었어요. 하지만 지금 젊은 학생들이 한 끼에 3000원짜리 컵밥을 먹는데, 무조건 써야 한다는 마스크의 가격이 1500원으로 책정됐으니 과하다고 생각했죠. 당시는 마스크를 한 번 사용하면 버려야 한다고 말하던 시기였으니까요.

  그래서 비말차단용 마스크를 출시하면서 가격을 500원으로 결정했죠. 이 마스크는 정말 하루 쓰고 버려야 하기 때문이었어요. 소비자에게는 좋았을지 몰라도 제조업체에게 욕을 많이 들었죠.(웃음)” 

  -하지만 마스크 때문에 생기는 환경오염이 심각하지 않나. 

  “맞습니다. 그래서 친환경 마스크 제작을 위해 애쓰고 있어요. 일차적으로 마스크 패키지를 100% 종이로 만들려고 시도하는 중인데 문제가 있죠. 마스크는 상온에 오랜 시간 노출되면 필터의 여과 효율이 떨어지는데, 종이는 공기가 쉽게 들어간다는 단점이 있거든요. 또 마스크 필터를 친환경으로 만들면 바이러스를 완벽하게 막을 수 없기도 하죠. 따라서 지금 접점을 못 찾고 있어요.  

  대안으로 수거 시스템을 고민했지만 수거한 마스크에 바이러스가 묻어 2차 감염을 유발할 수 있는 문제 때문에 시행할 수 없었답니다.” 

  -그렇다면 해결할 방법이 없을지. 

  “번거로울 수 있지만 마스크를 분해해서 버리는 방법이 있죠. 또 마스크 외피를 만지지 않고, 마스크가 오염되지 않도록 깨끗하게 관리해서 사용량을 줄이는 방법도 있어요. 관리만 잘한다면 사실 마스크의 필터링 효과는 1~2주일 사용해도 떨어지지 않거든요. 감염 관리에는 불리할지 몰라도 환경 측면에서는 유리하죠. 하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코로나19 팬데믹이 빨리 끝나는 게 아닐까요?” 

  -마스크에 캐릭터를 사용했다. 

  “처음에는 웰킵스라는 브랜드를 아무도 몰랐잖아요. 더군다나 중소기업에서 제품의 브랜드를 알리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였죠. 처음에는 온라인이 주요 시장이 아니었거든요. 편의점이나 마트, 약국 등이 주요 시장이었죠. 어떻게 하면 고객에게 마스크를 친숙하게 알릴지, 어떻게 하면 눈에 띄게 할지 고민했어요. 그래서 캐릭터를 활용했죠. 처음에 개였는데 요즘은 개도 마스크를 쓰고 다니니 오해의 소지가 있어서 사자로 바꿨어요.(웃음)” 

  -마스크 캐릭터에 이야기도 담았다고. 

  “가족을 본떴어요. 대형 사이즈에는 사자를 사용했죠. 아빠가 상대적으로 얼굴이 크잖아요. 중형사이즈에는 고양이를 사용해 엄마를, 소형 사이즈에는 토끼를 사용해 ‘토끼 같은 내 자식’이라는 의미를 담았어요. 유치원생이나 초등학교 저학년이 쓸 수 있는 초소형 사이즈에는 곰돌이로 ‘귀여운 우리 집 막내’를 나타내요. 

  이렇게 사자, 고양이, 토끼, 곰, ‘웰 패밀리’예요.(웃음) 캐릭터를 사용하니 사람들이 ‘사자 마스크, 토끼 마스크’ 이렇게 불러주셨어요. 웰킵스라는 이름보다 훨씬 쉽게 제품을 알릴 수 있었죠.” 

웰킵스 제품을 배경으로 환하게 웃고 있는 박종한 대표의 모습이다. 웰킵스의 다양한 라인업과 마스크 속 캐릭터는 제품을 고객의 눈에 띄게 하기 위한 웰킵스의 전략이다. 사진제공 웰킵스
웰킵스 제품을 배경으로 환하게 웃고 있는 박종한 대표의 모습이다. 웰킵스의 다양한 라인업과 마스크 속 캐릭터는 제품을 고객의 눈에 띄게 하기 위한 웰킵스의 전략이다. 사진제공 웰킵스

  -최고경영자로서 기업의 위기관리 능력 또한 중요하지 않은가. 

  “기업에서 위기가 발생한다면 해당 기업의 위기 대응력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해요. 위기 대응력이 있는 기업에게 위기란 하나의 과제일 뿐이죠. 평소 직원들과의 호흡과 화합, 그리고 기업이 가지고 있는 위기 대응 시스템과 매뉴얼이 중요해요. 하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기업이 계속 올바른 길을 가는 일이죠. 올바른 길을 간다면 어떠한 문제나 위기도 그저 해결해야 할 과제일 뿐이에요.” 

  -대표님이 생각하는 좋은 경영자란. 

  “좋은 경영자란 회사가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게 경영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기업이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할 때 구성원에게도 기회가 오고 그 기회를 직접 선택할 수도 있죠. 회사가 없어지거나, 오히려 역성장하면 구성원이 스스로 선택할 기회조차 잃거든요. 회사라는 버스에 계속 타고 있을지 내릴지의 선택을 구성원 스스로가 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기업이 좋은 기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장 환경이 기업 운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듯하다. 

  “유복하지 않은 환경에서 성장한 사실이 자랑은 아니에요. 부유하게 살아온 사람 중 좋은 사람도 많기도 하고요. 가난한 환경에서 자라 어려운 부분을 알기 때문에 직원들의 불편한 점이나 제품의 가격 측면에서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노력하죠. 어떻게 살아왔는지 보다 지금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니까요.” 

  -웰킵스를 창업한 지 10년이 지났다. 앞으로 계획과 목표가 궁금하다. 

  “웰킵스 슬로건은 ‘Stay Well, Always Wellkeeps’ 입니다. 간단히 직역하면 ‘당신이 머무는 건강한 삶, 그 곁에 언제나 웰킵스’라는 뜻이에요. 

  웰킵스는 위생, 건강, 안심과 안전 3개의 분야를 아우르는 글로벌 라이프 케어 1위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비전이 있죠. 웰킵스를 단순히 마스크 회사에 머무르지 않고 비전을 실현해나가는 회사로 만드는 일을 저의 마지막 꿈과 목표로 생각하고 있답니다.”

  -당신에게 중앙대란?

  “제게 중앙대는 인생의 전환점이었죠. 고등학교 때 공장에 취직해서 타자기 고치는 일을 한 경험이 있어요. 타자기가 매우 무거웠음에도 화물이라는 이유로 엘리베이터도 타지 못하게 하고 화물기를 타거나 계단으로 걸어 다녔죠. 같이 일하는 사람 중 저만 공고를 다니는 학생이었어요. 대부분 대학을 졸업한 형, 누나들이었는데 그분들을 보며 정말 ‘대우에 차이가 있구나’하고 느꼈죠. 그래서 대학에 진학해 큰 빌딩에서 일하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결국 중앙대에 입학했고, 그때부터 인생이 바뀌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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