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상황이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다. 또한 인류는 4차 산업혁명을 맞으며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볼 수 있는 기회가 더욱 줄어들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람’ 자체로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더 솔직하게 마주할 필요가 있다. 그 중심에서 한덕현 교수(의과대학 90학번)는 때로는 과학적인 시선으로, 때로는 따뜻한 심장으로 우리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연구실에서 만난 한덕현 교수(의과대학 90학번)는 정신건강의학과 뇌과학, 스포츠정신의학까지 섭렵했음에도 연구하고 싶은 분야가 끝이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진취적인 모습 이면에 그는, 학생들이 언제나 편하게 찾아오는 교수가 되고 싶은 꿈을 품고 있었다. 정신과 의사로서 한덕현 교수는 불편한 우리의 마음에 많은 해결책을 찾아주기보다 쌓은 경험을 통해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방향을 알려준다. 불안한 우리의 마음에 그가 내려주는 심심한 응원의 처방이 궁금하지 않은가. 

  -초등학교 때부터 야구와 테니스를 좋아해서 꿈이 운동선수였다고. 어떻게 의사를 꿈꾸게 됐나. 

  “다른 인터뷰에서 몇 번 이야기했을 때 공부 잘한다고 잘난 체 하는 거 아니냐고 해서 이야기 안 하려고 했는데요.(웃음) 정말 운동선수가 되고 싶었는데 운동을 못 해서 공부를 해야 했어요. 의학을 택하게 된 이유에는 집안의 영향이 컸어요. 집안에 의사가 많았거든요.” 

  -중앙대 의대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지. 

  “제가 입학할 때쯤 김희수 재단이 중앙대를 인수하면서 학교를 발전시키겠다며 비전을 제시했어요. 중앙대 의대가 비슷한 부류의 의대 중 비전이 가장 좋은 학교였죠. 중앙대에 입학하면 저도 같이 발전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중앙대 의대를 선택했어요.” 

  -현재 정신의학과 의사인데 학부 때도 정신의학을 전공으로 희망했나. 

  “입학할 때부터 정신과를 전공하려고 했어요. 정신의학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고등학교 때 키에르 케고르, 니체, 헤세의 책을 좋아했어요. 이런 분야를 공부하려면 문과에서는 철학과나 인문학과로 가거나 이과에서는 의대에 입학해서 정신과를 전공하면 가능하겠다고 생각했죠. 의사가 된다면 다른 분야보다 정신과는 잘할 자신이 있었어요.” 

  -지금은 인식이 나아졌지만 예전에는 정신과에 선입견이 있기도 했었는데. 

  “사실 아버지가 정신과 의사셔서 어렸을 때부터 정신과 병원의 환자들과 같이 지내고 살았어요. 그래서 정신과를 천대한다거나 정신과에 대한 선입견을 느끼지 못하면서 자랐죠. 나중에 정신과 의사가 되어 사회에서 정신과를 어떻게 대하는지 알고 나서는 당황하긴 했지만, 환자나 병원에 관한 선입견은 전혀 없었어요.” 

  -석·박사 학위 이후 하버드대 뇌과학연구소에서 연구를 했다고. 

  “학위보다 전문 분야가 생긴 후의 진로를 어떻게 결정하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정신과 중에서도 소아청소년정신과를 전공으로 택했고 그 안에서 기능성 뇌 자기공명을 전공했죠. 소아청소년 기능성 뇌 자기공명을 바탕으로 어떤 질환을 주로 볼지 고민하다 그때 한창 사회적으로 문제가 됐던 인터넷게임장애를 연구 분야로 선택했어요. 

  중앙대 대학원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이었어요. 최고의 단계인 하버드대 의대에서 공부하고 싶었죠. 유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운 좋게 미국 보건복지부에서 유학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었어요. 그렇게 하버드대에서 ‘게임이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주제로 연구하기 시작했답니다.” 

  -스포츠정신의학에는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됐나. 

  “미국에서 공부할 때 『American Journal of Psychiatry』라는 학술지를 봤는데 스포츠정신의학 소개가 나와 있었어요. 읽으면서 ‘아, 내가 해야 할 분야다’라는 생각이 들었죠.(웃음) 스포츠정신의학을 공부하고 싶어서 하버드대 스포츠심리학과에 문의했는데 제가 의대 출신이다 보니 아무도 받아주지 않았어요. 하지만 계속된 노력 끝에 극적으로 보스턴대 교수님과 인연이 닿아 교수님의 도움으로 스포츠심리 수업을 청강할 수 있었죠. 낮에는 하버드대 뇌과학연구소에서 연구를 하고 밤에는 보스턴대에서 스포츠심리 수업을 들었어요. 수업이 밤늦게 끝났는데도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할 수 있어서 기분이 너무 좋았던 기억이 있네요.” 

  -스포츠정신의학은 어떤 분야인가. 

  “주로 운동선수의 심리를 다뤄요. 테니스면 테니스, 골프면 골프 등 운동을 할 때 요구되는 자세가 있잖아요. 운동에서 자세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말의 형식과 비슷해요. 불안이라든지 우울감과 같은 요소로 인해 자세의 변화가 생기기도 하죠. 그 변화를 의학적으로, 심리적으로 포착해요. 연구를 오래 하다 보면 선수들의 몸놀림만 보고도 심리를 알 수 있죠.” 

  -여러 스포츠팀에서 심리주치의로 활동하고 있다고. 

  “국립춘천병원에서 공중보건의로 일할 때 현대 유니콘스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어요. 현대 유니콘스 측에서 정신과 의사 중에 스포츠정신의학을 하는 사람을 찾아 강의를 부탁했거든요. 또 지금은 LG트윈스에 계시는 김용일 코치님을 만나게 됐어요. 그분이 우리나라 프로야구 훈련 과정에도 스포츠 심리훈련이 정착할 수 있게 많이 도와주셨죠. 지금도 저는 스포츠 심리주치의로서 프로 스포츠 선수들의 심리자문과 상담을 하고 있어요.”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는지. 

  “LG트윈스 심리주치의로 있었을 때였어요. LG트윈스가 약 10년 동안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한 시기가 있었죠. 제가 LG트윈스 심리주치의를 맡으며 선수들의 개인 면담과 팀 분석을 통해 도움을 줬어요. 그래서 심리주치의를 맡은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팀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수 있었죠. 선수들과 함께 좋아했던 기억이 있어요. 경기를 치르다 보면 선수들이 심적으로 쫓기고 부담을 느끼기도 해요. 그럴 때마다 여유를 갖고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게 도왔던 경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답니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해당 분야에서 일하는 소위 ‘성공한 덕후’라고 볼 수도 있는데, 힘들었던 경험은 없었나. 

  “처음에는 환경이 썩 좋지 않았어요. 상담하는 장소가 상담센터도 아니었고 구장에서 자리를 내주지도 않았거든요. 저기 나가서 하라고 하셔서 선수 차 안에서 면담한 경험도 있어요. 선수가 식사하는데 옆에 앉아서 상담하고 그랬죠. 지금은 정신과 의사로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서 괜찮아졌지만요.(웃음)” 

  -항상 타인의 마음을 연구하는데, 본인 마음에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떤 방법으로 해결하는지. 

  “동료 정신과 의사의 도움을 많이 받아요. 스스로 해결하기보다는 외부의 도움을 받죠. 마음에 문제가 생기면 대화가 필요하고 서로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에요.” 

  -저서 『불안한 것이 당연합니다』의 키워드를 ‘불안’으로 선택한 이유는. 

  “2014년~2015년에 안식년을 얻었어요. 환자 보고 연구하느라 정신이 없다가 약간 여유가 생기니 인생을 한번 정리해보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죠. 그동안 공부했던 정신의학도 다시 정리하면서 책을 썼어요.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게 사례를 많이 추가하다 보니 출간하기까지 5년이 걸렸답니다. 책이 나오려는 순간 코로나19가 겹쳤어요.(웃음) 어차피 상황이 이렇게 되기도 했고, 코로나19 때문에 사람들이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생각을 많이 하고 자신을 돌아볼 기회가 생길 것 같았죠. 

  제가 정체성에 관한 책을 쓴 적이 있거든요. 정체성을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솔직해야 하고, 솔직함에 정면으로 맞서려면 결국 자기 불안 해소가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책의 키워드를 불안으로 정했죠. 코로나19 상황과도 잘 맞았고요.” 

과잠(학과 단체복)을 입은 한덕현 교수. 연구실에서 저서 『불안한 것이 당연합니다』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과잠(학과 단체복)을 입은 한덕현 교수. 연구실에서 저서 『불안한 것이 당연합니다』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불안은 무지에서 시작돼요. 뭔가에 대해 모르는 바가 생기면 불안이라는 감정이 동반되죠. 하지만 내가 모르는 바가 무엇인지 알고 무지를 인식하면 불안이 사라져요. 없애버리든 피해버리든 도망가버리든 할 수 있을 테니까요. 결국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로부터 도망가고 피해버리고 싶은 마음을 불안이라고 정의할 수 있답니다.”

  -‘불안’과 관련해 중앙대 학생들에게 어떤 말을 해 주고 싶은가. 

  “예전에는 꾀만 안 부리면 인생을 계획한 대로 살아갈 수 있었어요. 지금은 경쟁이 치열해졌고 사회에서는 다양성을 요구하죠. 그래서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대학에 입학해서 주식 공부, 자격증 취득, 학점관리 등 많은 일을 하잖아요. 모든 걸 다 하면서도 왜 하는지 순간적으로 불안이 막 떠오르기 시작할 때가 있죠. 하지만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사회 속이니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것에 회의감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중앙대 학생이라면 결국에는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낼 사람들이니까요. 뭔가를 열심히 하면서 목표가 불분명할 때도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결국 불안은 해소될 테니까요.” 

  -앞으로 어떤 교수가 되고 싶은지. 

  “어려운 질문이네요. 많은 교수가 꿈꾸듯 저도 누구나 쉽게 찾아올 수 있는 교수가 되고 싶어요. 하지만 막상 학생들이 찾아왔을 때 그들이 원하는 바에 맞춰줄 수 있는 여유가 부족하니 편하게 오라고 할 수도 없어서 아쉬워요. 하지만 또 편안하게 찾아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크죠. 아이러니해요.(웃음)”

  -당신에게 중앙대란?

  “중앙대가 가는 길이 제 인생과 비슷한 모습을 띤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미국에 있을 때 가장 부러웠던 대학 중 하나가 존스홉킨스 대학이었어요. 다른 명문 아이비리그 대학보다 크고 훌륭하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가진 강한 개성이 있죠. 의대를 시작으로 바이오 분야에서 완전히 두각을 나타내고 있거든요. 제가 정신과 의사 중에 가장 훌륭한 교수라고 할 수는 없지만 노력과 연구끝에 ‘한덕현’ 하면 스포츠정신의학이 떠오르게 됐어요. 모교인 중앙대도 어떤 하나의 개성을 기반으로 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대학으로 거듭났으면 좋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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