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도 여성도 아니지만,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 이서정·정상원 기자
  • 승인 2021.05.16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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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원래 그래왔다는 핑계를 내세우며 당장 눈앞의 차별에 등을 돌리곤 합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자리를 옮기기도 하죠. 그러나 차별받아 마땅한 사람은 없음을 알기에 다시 마주 보고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이번학기 사회부는 당연하다 생각해왔던 차별을 마주보고 여러분과 함께 당찬 발걸음을 내딛어보려 합니다. 이번주는 성별 이분법적인 사회 속에서 당연한 듯이 차별받아온 ‘인터섹스’ 당사자와 발걸음을 맞춰보겠습니다. 김예령 기자 kduaud@cauon.net

성별 이분법이라는 구조화된 폭력 속
사각지대에 내몰린 인터섹스 당사자

인터섹스(intersex)라는 용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인터섹스는 신체적 특징이 남성이나 여성의 전형성을 띠지 않아 생물학적 성별이 모호한 자연적 신체 변이를 설명하는 데 포괄적으로 사용된다. 뭇 사람들은 인터섹스를 지렁이와 같은 자웅동체의 존재냐고 묻는다. 되묻고 싶다. 세상을 단순히 남성과 여성, 두 가지 집단으로 나눌 수 있을까. 이 사소한 물음으로부터 우리는 인터섹스에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Enter Intersex
  인터섹스는 전형적인 남성과 여성의 성기를 함께 갖고 태어났거나, 둘 중 하나도 아닌 상태이거나, 잠재적으로 성기(性器)와 성징(性徵)의 불분명 현상을 타고난 사람들을 일컫는다. 이는 정체성의 개념이라기보다 몸의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 그 변이가 매우 다양하다. 여성의 신체에 XY 염색체, 또는 남성의 신체에 XX 염색체를 가진 경우도 있을뿐더러 1차 성징과 2차 성징 모두에서 변이가 발현될 수 있다. UN에 따르면 인구의 0.05% 내지 1.7%가 인터섹스의 특성을 지니고 태어난다.

  '성별 이분법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임, 여행자' 운영자회의 쁨 대표자는 인터섹스의 경우 사회적으로 철저히 비가시화되어 있어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설명했다. “전 세계 인구를 70억 명이라 가정해도 1.7%는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잖아요. 그런데 이들은 자신이 인터섹스인지 모르고 살거나 출생 시 개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정상화 수술’을 받아 그 존재가 쉽게 드러나지 않아요.”

  그는 성별 이분법이 인터섹스가 겪는 차별의 근본적인 원인이라 지적했다. 성별 이분법이란 인간의 성별을 남성과 여성, 2가지만으로 한정하는 관점이다. “종족 번식과 역할 분리에 있어 가장 눈에 띄는 특성이 성별이기 때문에 성별 이분법이 과거에서부터 오랜 기간 굳어진 거라 생각해요. 성별 이분법 아래에서 인터섹스는 일종의 장애 혹은 예외적인 존재로 간주되거나 이분법적인 체제 안으로 어쩔 수 없이 흡수되어야만 하죠. 제3의 성별 영역이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거예요.” 남성과 여성만이 ‘정상’이라는 성별 이분법적 사고가 만연한 사회에서 인터섹스는 비정상적 존재로 치부된다는 것이다.

  차별의 굴레 속 인터섹스
  성별 이분법이 인터섹스에 가하는 폭력은 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가족관계 등록을 위해 제출해야 하는 출생 신고서의 성별 기입란에서는 남성과 여성 2지 성별만 선택 가능하다. 한 국가의 시민으로서 꼭 필요한 주민등록번호 또한 마찬가지다. 「주민등록법 시행규칙」 제2조에 따라 모든 국민은 ‘생년월일·성별 등을 표시할 수 있는 13자리의 숫자’를 부여받는다. 이때 7번째 자리 숫자는 성별에 따라 남성은 홀수로, 여성은 짝수로 정해진다. 출생과 함께 찾아오는 성별 이분법의 압력은 인터섹스 당사자의 전 생애에 걸쳐 지속된다. 「병역법」, 「양성평등기본법」, 「근로기준법」 등 대한민국 의무와 권리를 담은 법체계의 태반이 성별 이분법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의료계 또한 인터섹스를 하나의 ‘질환’으로 취급한다. 질병관리청은 인터섹스를 ‘성 발달 이상’으로서 ‘적절한 성을 지정’하는 치료적 개입의 대상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2019년 발간한 『BORN FREE AND EQUAL』 보고서를 통해 의료적으로 불필요한 경우에도 사회적 이유로 당사자의 동의 없이 신체적 고통이 가해진다고 지적했다. 국제 앰네스티 한국지부와의 대담에서 인권활동가 키티 앤더슨 또한 영·유아 대상의 성별 정정 수술의 강압성을 비판했다. “삶을 바꿀 수도 있는 외과 수술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능력조차 없는 어린 나이에 이뤄지고 있어요.”

  쁨 대표자는 국가가 성별 이분법으로 흡수되는 성별 정정 수술을 방조하고 있음을 언급했다. “한 사람이 태어난 상태가 아닌 인위적으로 성별 이분법에 맞는 신체를 갖도록 수술을 감행하는 데에 있어 국가가 방임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요. 인터섹스의 몸 자체를 교정 대상으로 간주하는 것은 개인이 자신의 몸을 유지한 채로 살아갈 수 있는 기본 권리를 박탈하려 드는 것이라 할 수 있죠.” 이때 인터섹스가 성별 정정 수술로 인해 지정받은 성과 추후 정체화한 성 사이에서 겪는 갈등은 결국 당사자의 몫이 된다.

  인터섹스가 일상에서 겪는 사회적인 차별도 다양했다. 쁨 대표자는 주민번호 뒷자리만으로도 차별이 자행될 수 있음을 언급했다. “신분증에 나타난 성별과 외모가 일치하지 않다는 것만으로도 그 신분증은 자신을 증명하는 증서가 아니라, 의심만을 받게 하는 물건이 돼요. 직업을 구하는 과정에서 외모 지적이나 해고 등 부당한 대우를 당하고, 병원에 가서도 차별적인 언행을 듣죠.”

  흑백논리로부터의 탈피
  인터섹스 당사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한국 사회의 제도적 조치는 아직 부족해 보인다. 한국에서는 지난해 6월 29일 성별을 ‘여성, 남성, 그 외에 분류할 수 없는 성’으로 분류하는 내용을 포함한 정의당 장혜영 의원의 「차별금지법안」이 발의됐으나, 아직 국회 본회의 심의를 통과하지 못한 상태다. 차별금지법 도입 논의가 2007년 17대 국회 당시 법무부의 「차별금지법안」에서 시작했음을 감안하면 약 14년째 제자리걸음 중인 셈이다. 또한 같은 기간 인터섹스가 명명된 법안이 발의된 적은 한 번도 없다.

  반면 해외 일부 국가는 인터섹스 당사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제3의 성 개념’을 도입하고 당사자 동의 없는 성별 정정 수술을 금하는 등의 제도적 개선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몰타 정부는 2015년 인터섹스 아동의 권리 보호를 위해 당사자의 동의 없이 진행하는 성별 정정 수술을 법적으로 금지했다. 또한 불특정 성별은 신분증과 여권에 ‘X’로 표시 가능하다. 독일의 경우 지난해 인터섹스를 법적 성별로 인정했으며 부정확한 정보 제공으로 인해 성별 정정 수술을 진행한 사안에 대해 손해배상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기도 했다. 호주는 일찍이 정부 지침을 통해 출생 시 남성 또는 여성 외 제3의 선택지를 인정하고 있다.

  제도적 차원의 개선과 더불어 인식적 차원에서의 노력도 동반될 필요가 있다. 쁨 대표자는 타인의 성별을 검증하고, 지나치게 부각하려는 시선이 사라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사람의 성별을 결정하는 요소는 성염색체, 생식샘, 내부생식기 구조, 외부생식기 모양, 호르몬 분비 양상, 성별 정체성, 성 역할, 문화적 배경 등 그 범주가 다양하잖아요. 이렇게 모호하고 개인적인 요소들을 모두 남성 혹은 여성의 이분법적 영역에 완벽히 들어맞게 살아갈 것을 강요해서도, 강제돼서도 안 되죠.”

  모든 영역에 있어 양극단은 있다. 그러나 양극단만이 존재한다는 편협한 생각은 떨쳐내야 한다. 무수히 넓은 성의 스펙트럼 속, ‘정상적인 성’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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