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한 사람의 바람직한 행동 변화를 이끌어낸다. 특히 유아교육은 인간의 기본적인 행동 형성에 관여하는 학문이기에 더욱 중요성이 크다. “아동은 우리가 도와주거나 보호해야 할 미숙한 존재라기보다는 하나의 인격체예요.” 최다은 키즈 크리에이터(유아교육과 06학번)는 아이들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와 유아교육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학부와 석사 모두 유아교육을 전공한 전문성 있는 키즈 크리에이터로서 그는, 1년에 200여 편의 콘텐츠를 만들어낸다. 여전히 하고 싶은 콘텐츠와 아이디어가 샘솟는 최다은 크리에이터의 여정은 오늘도 진행 중이다. 

사진제공 최다은
사진제공 최다은

우리는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어릴 적 품었던 순수함을 잊고 살아가기도 한다. 유튜브 채널 ‘다니유치원’의 ‘다니’, 최다은 키즈 크리에이터(유아교육과 06학번)는 삶에서 잃어버리기 쉬운 순수함을 어른에게도 일깨워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어린아이뿐 아니라 어른 내면의 어린이 자아에도 따스한 눈길을 보낸다. 바쁜 일상 속에 지쳐있다면 잠시 ‘아띠’(친구를 뜻하는 ‘다니유치원’ 구독자 애칭)가 되어 다니유치원의 문을 두드려보면 어떨까. 재미있는 유아교육 콘텐츠와 함께 다들 한 번쯤 들어본 노래를 부르는 ‘다니’가 어린 시절을 향한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중학교 때부터 방송 직종을 꿈꿨는데 중앙대 유아교육과에 진학했다. 

  “중학교 때 방송반에서 활동했고 고등학교 때는 학교 홍보도우미였어요. 고3 때 담임 선생님께서 ‘다은이 너는 유아교육과가 딱 맞아’하면서 추천해주셨죠. 당시만 해도 유아교육에 전혀 관심도 없었고 선생님이 되고 싶지도 않았어요. 하지만 저를 계속 지켜본 담임 선생님의 추천을 믿고 지원했는데 덜컥 합격했죠. 처음에는 ‘안 맞으면 전과해야지’ 하는 마음이었지만 유아교육에 매료됐어요.” 

  -어떤 부분이 매력적이었나. 

  “당시 이원영 교수님께서 사명감을 많이 심어주셨죠. 유아교육과라고 유치원 선생님으로 끝내지 말고 행정가도 되고 법도 만들고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고 하시면서요. 또 유아교육은한 사람을 인간답게 기르는 학문이잖아요. 아동교육 철학, 심리학 등을 배우면서 학문이 너무 매력적이라고 느꼈어요. 생각보다 적성에도 잘 맞았고요.” 

  -유아교육을 전공하면서도 방송 직종을 꿈꿨는지. 

  “원래 꿈꿨던 일이 아나운서였어요. 20, 21살부터 방송 활동을 시작했고, 학교에서는 UBS 활동도 했어요. 20대 때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죠. 잡지 모델, 방송 리포터, 광고모델 등 외부 활동을 하면서도 대학 생활이 재미있어서 알차게 보냈어요. 하지만 방송국 생활은 만만치 않았죠. 2,3학년 때는 공부에 전념했고, 학부 졸업 후에 우연한 기회로 연기를 시작했지만 생각만큼 잘 안 됐어요.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죠. 그래도 여러 가지 일을 해본 경험을 통해 전공과 제가 원하는 바를 접목할 줄 알게 됐어요. 방송 관련 일은 하고 싶은데 전문분야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유아교육 전문 방송인은 흔치 않았으니 그 분야를 노렸어요.” 

  -굉장한 열정으로 살았는데 특별한 목표가 있었나. 

  “목표지향적인 사람은 아니었어요. 20대에는 그냥 열심히만 하면 되는 줄 알았죠. 하지만 열심히만 해서 되는 세상이 아니잖아요. 현명하고 선택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죠. 대학생 때 심리학이나 부모교육에 관해 배우다 보니 20대에는 가치관을 정립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더라고요. 책도 많이 읽고 문화생활도 했어요. 또 연기를 배우며 캐릭터가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철학적으로 탐구하며 인생의 가치관을 세우는 작업도 했죠. 이후에는 안정감이 많이 생겼답니다.” 

  -‘다니 유치원’의 콘텐츠 ‘가요 시리즈’, ‘역할 놀이 시리즈’ 등을 직접 기획한다고. 콘텐츠 기획에서 어떤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유치원에서 일해보니 아이들의 일상생활이나 기본 생활 습관이 유아교육에서 굉장히 중요한 점이라고 느꼈어요. 아이들이 새롭게 경험하는 일이 있으면 그들의 시선에서 어떻게 받아들일지, 어떤 감정을 느낄지 등을 중요하게 생각하죠.” 

  -반응은 어땠나. 

  “유튜브에서 아동용 영상에는 댓글을 달 수 없어요. 직접적인 반응을 알기 어렵지만 조회 수가 많이 나오죠. ‘치과에 가요’ 나 ‘태권도에 가요’, ‘유치원에 가요’ 등 ‘가요 시리즈’가 반응이 좋았어요.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캐릭터가 나와서 이야기하는 감정이나 에피소드에 유아들이 동일시할 수 있거든요. 아이들이 일상생활에서 느낄 법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좋아해 준다고 생각해요.” 

다니유치원에서 키즈카페에 간 다니. 어린이 체험 볼풀장에서 미션을 해결하고 있다.  사진제공 최다은
다니유치원에서 키즈카페에 간 다니. 어린이 체험 볼풀장에서 미션을 해결하고 있다. 사진제공 최다은

  -어린이 채널을 운영하는데, 구독자와 소통 방법이 궁금하다. 

  “소통은 거의 아이들의 부모님이 대신해 주시죠. 요즘은 아침 일찍 부모님들과 함께 ‘미라클 모닝’을 하고 있어요. 단체 대화방에서 서로 인사도 나누고 그림책도 소개하면서 피드백을 많이 받죠. 아이들의 직접적인 댓글을 못 받는다는 부분은 아쉬워요. 하지만 SNS 메시지나 영상 편지를 주고받기도 한답니다.” 

  -키즈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이 있었다면. 

 “활동 초반에는 채널의 영향력을 체감하지 못했어요. 저는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듯 촬영하고 직접 만날 일도 많지 않았으니까요. 구독자가 점점 늘어나면서부터는 해외에서도 반응이 오기 시작했어요. ‘우리 아이가 외국에서 자라 한글을 접할 기회가 없었는데 다니누나 덕분에 한글을 배웠어요’라는 말이 너무 뿌듯했죠. ‘처음 태어나서 유튜브에 검색한 말이 다니예요’와 같은 반응을 보면 채널의 영향력을 실감해요. 코로나19 이후로는 교육 현장에서 저희 채널을 많이 활용하시기도 하죠. 제가 추구하던 방향대로 나아가는 듯해서 성취감이 들어요.” 

  -어른의 삶을 살면서 어린이의 시각으로 콘텐츠를 제작해야 하는데, 어려움은 없는지. 

  “제 채널은 ‘다니 유치원’이니 5세에서 7세를 생각하고 콘텐츠를 만들었어요. 하지만 초등학교 저학년이나 3~4세 아이들도 많이 시청해서 주요 대상층을 정하기가 어려웠죠. 해외 예시도 많이 참고하고 유행하는 유튜브 알고리즘 공부도 했어요. 실제로 집에서 활용하거나 적용할 수 있는 교육적인 내용도 많이 찾아보고요. 또 저희 작가님이 실제로 아이 엄마여서 이야기를 나누며 어떻게 하면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출지 방법을 찾아요. 온전히 교육적이지는 않더라도 재미있거나 유익한, 아이들 수준에 맞는 콘텐츠가 무엇이 있을지 많이 고민한답니다.” 

  -콘텐츠를 계속 발전시키고 다양화하는 일이 크리에이터로서 숙명인 듯하다. 

  “아이템을 꼼꼼히 기획하거나 계획하는 성격이 아니에요. 갑자기 꽂히면 ‘어! 저거 하자’고 하거나 촬영장에서 무언가 떠오르면 바로 말하고 촬영하는 등 즉흥적인 편이죠. 창의적인 콘텐츠는 즉흥적인 부분에서 나오기도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촬영한 영상의 반응이 좋을 때 느껴지는 쾌감이 있죠. 오히려 다른 유튜브 채널은 많이 안 보는데 기사는 많이 봐요. 유아교육 분야 이외에도 사회, 정치, 경제 같은 분야에 관심이 많아요. 이런 관심사를 차차 콘텐츠에 반영해서 카테고리를 넓혀 보고 싶죠. 요즘은 또 융합 교육이 중요하잖아요. 유아의 수준 또한 10년 전의 수준이 아니거든요. 교육 분야도 그에 맞춰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진로 선택에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중앙대 후배들에게 한마디. 

  “저도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어요. 힘들고 암울했던 시간도 있었죠. 특히 졸업하고 3년은 너무 힘들어서 희망찬 말이 하나도 안 들렸어요. 여러 분야의 일을 계속하니 ‘왜 저렇게 사서 고생하냐’는 말도 많이 들었죠. 하지만 그때 경험을 많이 했기 때문에 지금 저의 길을 찾을 수 있었어요. 누구에게나 기회가 온다고 이야기해 주고 싶죠. 20대에 겪은 시행착오가 길을 찾은 후에는 훨씬 더 단단해지는 힘이 된다고 생각해요.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추구하는 방향으로 가게 돼 있어요. 속도만 다를 뿐이랍니다.”

  -당신에게 중앙대란?

  “저에게 중앙대는 발판 같은 곳이에요. 유아교육에 관심도 없었던 제가 이 일을 거의 15년 가까이 하고 있거든요. 중앙대 유아교육과에 진학한 일이 발판이자 운명처럼 느껴지죠. 또 학부 졸업 후 동 대학원에서 석사과정까지 마치며 이렇게 학교를 오래 다닐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웃음) 학교 다닐 때는 그렇게 애정이 가진 않았는데 돌이켜보면 추억도 많고요. ‘의혈중앙’이 거의 세뇌되다시피 해서 졸업하고 사회에서 동문을 만나면 반가운 감정이 많이 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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