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이 되어버린 노동자
  • 최지환 기자
  • 승인 2020.11.30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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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1970년, 청년 전태일이 외친 절규다. 당시 평화시장 여공들은 하루 15시간이 넘는 골방 속 노동에 폐결핵을 비롯한 각종 질병으로 쓰러져갔다.

  제도가 미비했기 때문이 아니다. 당시 「근로기준법」은 법정 근로시간, 최저임금, 미성년자 야근 금지 등을 명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허울 좋은 법률이었을 뿐 사업주, 그리고 이들을 감시할 근로감독관과 노동청조차도 지킬 의지가 없었다. 결국 명문뿐인 ‘근로기준법전’은 전태일과 함께 불꽃 속에서 사그라들었다.

  50년이 지났다. 주 52시간 근무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육아휴직 등 각종 정책으로 노동의 질이 대폭 개선됐다. 하지만 이 혜택이 모든 노동자에게 돌아가진 않았다. 관심이 닿지 않는 곳에는 노동자의 권리를 빼앗겨 유령이 되어버린 사람들이 있다.

  지난해 등록금을 벌고자 웨딩 스튜디오에 취업했다. 격주 5·6일 근무에 월급 140만원이라는 광고를 보고 찾아갔지만, 실제 면접에서는 수습 기간 동안 120만원만 지급한다고 말했다. 수습 기간은 알려주지 않았다. 근로계약서 작성도 없었다.

  알고 보니 나는 직원이 아니었다. 면접 때 사장과 구두로 한 계약은 근로계약이 아닌 도급계약이었다. 도급계약은 내가 어떤 일을 완수하면 상대방이 그 결과에 대한 보수를 지급하는 계약을 말한다. 아침 11시에 출근해 화장실을 청소하고, 택배를 포장하고, 고객 전화를 응대하고, 촬영을 나갔다가 저녁 7시에 퇴근했지만 나는 프리랜서, 사장님이었다. 최저시급에 못 미치는 월급을 받았지만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했다.

  근로자와 도급계약을 체결해 사업자의 의무를 피하려는 ‘위장 프리랜서’ 계약이었다. 위장 프리랜서는 정해진 시간에 특정 사업장에 출퇴근하며 고용주로부터 업무 지시를 받지만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이들은 법정 근로시간과 각종 수당을 보장받지 못하고 부당해고를 당해도 구제받기 쉽지 않다. 단체교섭권도 없다.

  한번 ‘유령 노동자’가 되면 근로자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2018년, CJB청주방송의 14년 차 프리랜서 PD였던 이재학 PD는 자신과 동료의 처우개선을 사측에 요구했다 해고됐다. 그는 프리랜서였지만 지방자치단체 보조금 사업을 수주하는 등 제작업무뿐만 아니라 행정업무까지 담당했다. 하지만 해고 후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 패소했고 결국 극단적 선택을 했다.

  사업주들의 온갖 꼼수에 또다시 인간이 기계가 되어버린다. 정부는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외면하고만 있다. ‘어떠한 인간적 문제이든 외면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 가져야 할 인간적인 과제다.’ 1970년을 하루 앞두고 전태일이 남긴 일기다. 인간이면 인간의 문제를 외면하지 말라.

최지환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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