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을 깨다
  • 전영주 기자
  • 승인 2020.11.15 23: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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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에 표류하는 학자 3명이 있다. 통조림을 어떻게 열지 논의가 한창이었다. 먼저 화학자가 “통조림이 폭파할 때까지 가열하자”고 말했다. 물리학자는 “통조림을 바위로 떨어뜨리자”고 제안했다. 마지막으로 경제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 좋은 생각이 있다. 우선 깡통따개가 있다고 가정하자”

  삭막한 시험 기간 기자를 웃게 한 유머다. 잘못된 가정은 잘못된 결과로 이어짐을 꼬집는다. 가정 오류는 경제학자만의 과오가 아니다. 정부 또한 빗나간 가정으로 현실과 동떨어진 제도·정책을 내놓는다. 기자가 ‘열공’하던 10월 7일, 정부는 그릇된 가정하에서 ‘낙태죄’ 조항을 개선한 「형법」·「모자보건법」 입법개선안(개정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개정안으로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증진한다고 가정한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선고에 따라 개정안에서는 임신중단 허용 범위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임신중단이 범법으로 묶인 한, 여성은 자기결정권을 온전히 누릴 수 없다.

  세분화한 차등 규정에 따라 자기결정권이 흔들릴 전망이다. 개정안은 여성을 미성년자, 심신장애인, 나머지로 분류한다. 미성년자는 만 16세를 기준으로 다시 나눈다. 임신주수에 따라 ‘14주 이내’, ‘14~24주’, ‘24주 이상’ 딱지를 붙인다. 이제 여성의 몸은 맞춤형 통제와 촘촘한 억압에 놓였다. 임신중단이 범죄가 아닐 때까지 통제와 억압 정도가 달라질 뿐 진정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는 어렵다.

  단서 조항도 께름칙하다. 개정안은 임신한 지 14~24주가 지난 경우 상담과 24시간 숙려기간을 거쳐야 임신을 멈출 수 있다는 내용을 포함한다. 충동적으로 임신중단을 결정할 만큼 여성의 자기결정능력이 미숙한가. 임신 사실을 인지하고부터 억겁의 고민은 한순간 무시당했다.

  혹자는 말한다. 태아의 생명권은 경시해도 좋단 말인가! 정부는 ‘혹자’들을 달래고자 태아의 생명권을 법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가정한다. 태아가 세포 덩어리냐 귀중한 생명이냐 논쟁은 접어두고― 태아를 인간이라고 여기더라도 가정은 틀렸다. 이를 증명하고자 미국 도덕 철학자 주디스 자비스 톰슨은 『A Defense of Abortion』에서 사고 실험을 보였다.

  기자가 죽을 위기에 처했다고 해보자. 차은우가 이마를 짚는 방법만이 기자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 기자는 차은우의 손길이 필요하지만 손길을 받을 권리는 없다. 차은우가 중대신문으로 달려온다면 친절한 일이겠으나 그 행위가 의무는 아니다. 톰슨에 따르면 스스로를 희생해 호의를 베푸는 사람은 ‘훌륭한 사마리아인’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도록 강제할 수 없다.

  그날 밤 경제학자는 통조림에 든 맛있는 소시지를 먹었다고 가정하고 잠이 들었다. 어떤 가정을 지지할지는 우리 손에 달렸다. 오늘(16일)까지 「형법」 개정안에 의견 제출이 가능하다.

 

전영주 뉴미디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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