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 중대신문
  • 승인 2020.09.14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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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제안이 왔다. ‘나도 한마디’에 글을 하나 써달라는 것이었다. 쓰는 것에 재주가 없어 거절하려 하였으나, 주제가 자유라는 점과 졸업 전에 한 번쯤은 이라는 생각에 수락했다.

 ‘무슨 이야기를 할까‘와 ’남는 건데 조금은 있어 보이게 쓰겠다‘는 부담감 사이에서 한 글자도 못 쓰고 있을 때, 노트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학생회에서 있었던 일을 기록한 노트였다. 읽다가 근거 없는 자신감이 떠올랐고, 내가 느낀 학생사회의 변화에 대해 적기로 했다.
 
 요즘은 모든 게 편리하고 빠르다. 손글씨로 적던 대자보는, 인쇄물이 되고, 카카오톡이 되었다. 모여서 얼굴 보고 적던 글이 굳이 만나지 않아도 전달 가능케 되자, 더욱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때문에 더, 뭔가 끈끈했던 느낌이 사라진 것 같다.

 효율성을 따지기 시작하자 인간관계도 쉬워졌다. 싫은 사람도 학부 행사나 개강총회와 같은 날들에 어쩔 수 없이 만나다 보니 그냥 저냥 인사라도 하고 지냈었는데, 요즘은 싫으면 안보면 그만이 되었다.

 ‘그 때가 좋았지’,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와 같은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변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지금의 학생회는 민주주의를 외치지도, 바른말을 해서 어디 끌려가지도 않는다. 예전 학생회의 필요성은 분명했다. 학생들의 니즈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 니즈는 민주주의였고, 등록금에 합당한 교육과 시설물이었고, 불합리한 제도의 개선이었다. 모두의 공통된 기본적인 요구가 있을 때 자연스럽게 존재했고, 힘이 있었다. 이런 요구들의 해결과 기술의 발달은 모두를 편하게 만들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편해진다는 것은 개인화된다는 것 같다. 공통의 니즈가 개개인의 니즈로 분화되자 학생회는 목적성을 잃어버리기 시작했다. 그 누구의 비난처럼 그냥 학부 행사나 진행하는 단체가 되어가는 것 같다.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는 단체는 그 끝이 분명하다.

 이에 나는 학생사회의 구성원에게 말해주고 싶다. 말해달라고, 관심을 좀 가져달라고. 말하고 있다면 드릴 말씀이 없지만, 대표자 회의 참석률이, 투표율이, 의견수렴 구글폼 응답률이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학생회에 말하고 싶다. 찾아보라고 변하긴 했지만 분명 예전과는 다른 니즈가 있다고, 분화되어 있어 모두를 만족시킬 순 없어도 다수를 만족시킬 수는 있을 것이라고, 예전의 필요에 맞춰진 행사를 답습하지 말라고.

 쓰고 보니 나는 그런 사람이었나 하면,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 걸 보니 나 역시 부족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몇이나 이 글을 볼지 모르지만, 봤다면 부디 이전과 같지 않았으면 좋겠다.

공승환
통일공대 학생회장
건축공학전공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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