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쫓겨난 터는 도시가 아닙니다
  • 김현우·김민지 기자
  • 승인 2020.09.07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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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김경진 작가
사진제공 김경진 작가
사진제공 김경진 작가
사진제공 김경진 작가

 

터와 사람이 모여야

도시가 될 수 있기에

<노량진: 터, 도시, 사람.> 展

 

멀리서도 눈에 띄는 목욕탕 굴뚝과 노란 외벽에 얼룩덜룩하게 쓰인 글씨 ‘행화탕’. 1960년대 아현동 주민들이 즐겨찾던 공중목욕탕은 시설이 낙후되고 신식 목욕탕 이 들어서면서 철거 위기를 맞이했다. 아무도 찾지 않던 행화탕은 2016년 5월 복 합예술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 구 노량진수산시장 이야기는 마치 행화탕의 아픔과 닮아있다. 구시장 상인들 의 처절한 외침에 예술가들이 응답했다. 약 1년간의연대기록을 예술로 풀어낸 전시 ‘노량진 : 터, 도시, 사람’이 행화탕에서 열렸다.

빼앗긴 이들 곁에서 예술하다

  2012년 수협의 수산시장 현대화사업 으로 구시장은 철거 직전으로 내몰렸다. 지난 5년간 구시장 상인들은 길고 외로운 투쟁을 이어왔다. 그러나 동작구 행정대 집행 이후 상인들의 생계터전은 완전히 사라졌고 구시장 벽면은 ‘철거’라는 두 글자로 채워졌다. 지난해 10월 즈음 노량진역 1, 2번 출구에 모여 매주 금요일마다 노래, 그림 등 저마다의 방식으로 구시장 상인을 위로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상인의 슬픔을 함께하기 위해 뭉친 ‘예술해방전선’이다. 보통 전시는 작가를 빛내기 위해 열리 기 마련이다. 하지만 예술해방전선의 전시는 구시장 현대화사업 이면에 가려진 당사자를 조명했다. 김경진 작가는 투쟁 현장을 알리기 위해 전시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구시장 투쟁은 언론의 주목을 많이 받지 못해 대중에게 덜 알려진 감이 있어요. 이번 전시는 예술가들이 투쟁과 현장을 알리기 위해 고민한 결과물이죠.”

 

사진제공 김경진 작가
사진제공 김경진 작가

 

사람의 흔적을 찾아서

  행화탕 문을 열고 들어가니 옛날 타일 과 낡은 천장 골자가 투박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벽면 중앙, 커다란 캔버스 천막 위에는 행정대집행을 묘사한 일러스트가 펼 쳐져 있다. 김경진 작가는 행정대집행에서 목격한 현장의 폭력성을 선명히 기억했다. “상인이 입은 부상과 재산 손해가 막대했어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과 폭언을 듣기도 했죠.” 박산들 작가도 당시를 회상했다. “용역은 상인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 사했어요.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일 이라고는 믿을 수 없었죠.”

  물리적 폭력보다 쓰라린 상처는 삶의 터전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이다. 둥작 체케스트라바이스 작가는 생계를 빼앗기는 아픔은 공포 그 자체라고 이야기했다. “인간에게 가장 공포스러운 상황은 자신의 삶을 빼앗기는 거예요. 구시장 상인들의 삶은 사회로부터 송두리째 부정당했죠. 이번 전시를 감상하며 인간 존재의 이유를 생각해봤으면 해요.”

  전시장을 둘러보니 작품 속 상인들은 뒤돌아있거나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박산들 작가는 약자를 대상화하지 않기 위해 표정을 그리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고통스러운 표정 묘사는 자칫하면 당사자를 대상화할 수 있어요. 그래서 사람 그 자체를 그린다기보다 사람의 흔적을 찾고자 했죠.”

완벽한 타인임에도 우리는

  우리 사회에 완벽하게 개인과 상관없는 문제가 있을까. 박산들 작가는 약자가 외치는 목소리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했다. “구시장에 관심을 가지기 전에는 투쟁 현장을 무심코 지나쳤던 적이 많았어요. 한 번쯤 ‘저들이 싸우는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해본다면 변화의 싹을 틔울 수 있지 않을까요.”

  김경진 작가는 약자와의 연대를 이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우리는 도시라는 집단 속에서 함께 살아가기에 어느 투쟁 도 당사자성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어요. 누구나 자신의 터전에서 쫓겨나는 상황을 맞닥뜨릴 수 있죠. 어떤 방식으로든 약자 들이 있는 현장을 알리기 위한 행동은 계속될 거에요.”

  평범하게 장사하는 날만 기다리며 도시를 헤매고 있는 구시장 상인들. 이는 외면당한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끊임 없는 투쟁이다. 행화탕이 상인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공간으로 부활했듯 구시장 상인들의 삶도 재탄생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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