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의 두려움은 설렘으로
  • 김서현 기자
  • 승인 2020.06.01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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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여집합 : 2000년

 

2000년의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지난 2000년에 20살을 맞이한 81년생 김경희씨(39), 김은미씨(39)를 만나 서로 다른 그들만의 이야기, 여(餘)집합을 들여다봤다.

※해당 기사는 개별적으로 취재한 인터뷰를 좌담회 형식으로 각색했습니다.

  - 20살 당시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김경희: 대학에 막 입학했어요. 00학번이라는 새로운 숫자가 화제가 됐었죠.

  김은미: 학생의 신분으로 공부를 하고 있었어요.

  - 지난 2000년에는 남북정상회담이 있었습니다. 분단 후 55년 만의 첫 남북정상회담으로 의미하는 바가 큰데요.

  김경희: 첫 정상회담에 이어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성사되면서 남북관계가 화해의 분위기로 들어섰죠. 당시 통일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이 공존했어요. 

  김은미: 남북 각 대표가 만났다는 사실 자체가 엄청난 일이었죠. 통일이 머지않았다고 생각해 매우 설레었어요.

  - 2000년을 전후로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확산됐죠. 당시 인터넷을 사용해보셨나요?

  김경희: ‘다음(Daum)’ 사이트가 주축이 돼 인터넷을 본격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한 기점이었죠. 저도 다음 사이트에서 이메일을 개설했어요. 

  김은미: 당시 ‘엠파스’, ‘파란’ 등의 사이트를 사용했어요.

  - `진료는 의사, 조제는 약사’로 역할을 분담하는 ‘의료대란’이 일기도 했어요. 실제로 체감하셨나요?

  김경희: 초기에는 비용이 증가하기도 하고 불편함이 따른다는 점에서 해당 정책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였어요. 하지만 점차 각 분야가 전문화됨에 따라 수긍하게 됐죠. 

  김은미: 당시 병원과 떨어진 약국에서 약을 조제 받아 불편했던 기억이 나네요.

  - 연도의 마지막 두자리와 관련해 ‘Y2K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죠. 

  김경희: 지난 1999년을 끝으로 지구가 멸망한다는 둥 소문이 무성했죠(웃음). 하지만 실제로는 아무 문제 없었고, PC 대란도 없었던 걸로 기억해요.

  김은미: 당시 컴퓨터의 통제 아래 작동하는 장비가 많아짐에 따라 컴퓨터 오작동으로 방사능이 유출된다는 괴담이 돌기도 했어요. 하지만 별 탈 없이 지나간 걸 보니 정부 혹은 기업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 그 외에 2000년 당시 인상 깊은 일이나 이슈가 있다면.

  김경희: 당시 지하철 7호선이 처음 개통됐어요. 제가 다니는 대학 앞으로 지하철역이 생겨 매우 신기했죠. 

  김은미: 추억의 동창회 사이트 ‘아이러브스쿨’을 통해 졸업 후 연락하지 못했던 지인을 온라인에서 만날 수 있었어요. 당시 온라인 만남이 오프라인 만남까지 이어져 더 반가웠죠. 비록 다른 매체가 그 자리를 대신해주고 있지만 더는 이용할 수 없는 점이 슬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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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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