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의 입장에서 두려움에 가득 차 있을 때 함께 분노해 주신 분들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함께 분노하면 바꿀 수 있다.” ‘미투운동’ 확산을 이끌었던 서지현 검사가 ‘n번방 성폭력 처벌’ 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최근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 화제 되며 국민적 분노가 커지고 있다. 미성년자를 포함한 수십여 명에게 성 착취 영상물과 포르노 영상을 찍도록 협박하고, 그 영상을 텔레그램 채팅방에서 판매하며 유포한 성범죄 사건이다. 며칠 새 사건이 공론화되며 가해자를 처벌해달라는 국민청원이 250만 명을 넘어섰으며 파생된 청원만 10여 개가 넘는다. n번방 특별조사팀까지 구축된 상황이다. 

  n번방 사건이 처음 외부에 알려진 시기는 작년 겨울이다. 하지만 관심이 부족했기에 지금과 같은 공론화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당시만 해도 해당 사건을 경찰에 신고하면 사이버수사대에 의뢰하라는 뻔한 답만 들을 수 있었다.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자 공론화가 됐고, 운영자를 포함해 채팅방에 입장한 가해자 모두를 엄정 수사하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지난 몇 년 이 같은 끔찍한 범죄가 몇 번이나 일어났는지 셀 수 없다.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사라진 사건도 많을 것이다. 꼭 범죄가 아니더라도, 세상의 관심이 필요했던 많은 일은 사람들의 외면 속에 묻혀 사라졌다. 

  무엇인지 잘 모른다는 말,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는 말 뒤에 숨는 행위는 비겁한 일이다. “그런 끔찍한 얘기 보면 정신건강에 안 좋아”, “그런 거 보는 애들은 비정상적인 애들이잖아. 나랑 상관없어”, “그게 뭔데? 난 관심 없어서 잘 몰라” 등등. 이처럼 여러 이유로 방관하고 침묵한다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소라넷, 웹하드 사건과 같은 그동안의 숱한 사이버 성범죄 또한 이러한 여론에 편승해 제대로 처벌받지 않고 묻혀 왔다.

  버튼 한번 눌러 동의하고 나 홀로 목소리를 낸다고 세상이 변화하느냐는 의문이 들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의 움직임이 점차 이슈화돼 법을 제정하는 경우도 있고, 누군가는 보장받지 못했던 권리를 보장받기도 한다. 본래 변화란 느리게 오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는 일뿐이다. 관심을 갖는다는 일은 절대 헛되지 않은 일이다. 촛불집회, 미투운동,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 등 그동안 이룬 변화들은 개개인의 힘이 단단한 세상에 틈이 가게 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개개인의 관심이 모여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스스로 관련 없는 일이라며 자신을 변호하고 구분 지을 시간에 함께 분노하면 어떨까. 분노의 목소리가 모여 보다 개선될 세상에 무임승차하진 말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엘리 위젤은 “침묵은 고통을 주는 사람에게 동조하는 것일 뿐, 고통받는 사람에게는 결코 힘이 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때론 침묵이 소리 없는 동의가 되는 순간이 있다. 외면하지 말고 함께 분노하자. 분노하는 힘들이 모여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되길 바란다. 


서아현 사회부 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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