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환 배우(연극영화학과 64학번)
  • 고민주 기자
  • 승인 2020.03.22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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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노장의 필모그래피

‘재능이 없어 노력하지.’ 화장실에서 중얼중얼 거리며 대본을 외우는 모습으로 많은 연기자 후배에게 귀감을 주는 노력파 배우. 연기 인생 56년차에 접어든 그는 쉴 틈이 없다. 하지만 그에겐 연극이 ‘쉼’이다. 연극과 스크린 그리고 브라운관까지 넘나들며 우리에게 웃음과 눈물을 선사한다. ‘78 대한민국 연극제 최우수 연기상’, ‘80 MBC 연기대상 우수 연기상’, ‘81 동아 연극상 연기상’, ‘84 백상예술대상 최우수 연기상’…. 다수의 연기상을 수상했음에도 겸손하게 진실한 연기를 고민하는 배우 박인환 동문을 만나봤다. 

 

사진 박진용 기자
사진 박진용 기자

단단한 중년을 넘어

연기 정년이 없는 행운을

선택받는 배우이기에

노력은 항상 현재진행형

코믹한 연기와 강한 성격파 연기를 같이 보여줄 수 있는 배우. 박인환 동문은 우리에게 스크린과 브라운관 속 아버지로 유명하다. 그는 완고한 인상에 스며든 온화함과 인자함으로 기자를 마주했다. 방정식처럼 떨어지지 않는 새로운 연기를 보여주려 스스로 연기 변신을 꾀하는 그에게서는 연기를 향한 뜨거움이 느껴졌다. 드라마와 영화 그리고 무대에서 관객과 호흡하며 묵묵히 한 길만 걸어온 박인환 동문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어떻게 배우의 길에 들어섰나.

  “배우의 꿈을 갖고 연극영화학과 64학번으로 입학했어요. 그때부터 배우의 길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죠. 전망이 좋은 학과로 유명해 입학 전 희망에 부풀어 있었어요. 하지만 막상 학교에 들어와 보니 앞이 깜깜했어요. 학과가 자리 잡지 못해 3학년이 돼서야 전공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전공공부도 지금처럼 전문성을 띠지 못했답니다. 뿐만 아니라 배우가 워낙 먹고 살기 쉽지 않아 살길을 찾아서 중간에 다른 길로 바꾼 동기들이 많았어요. 그렇지만 저는 재주가 없어 다른 직종에 종사할 수 없었죠. 그래서 꾸준히 연극을 하며 배우의 길을 걸어 나갔답니다.”

  -타 직종을 생각해 본 적은 없는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죠.(웃음) 군대를 갔다 와서는 말 그대로 하늘이 노랗더라고요. 복학을 해야 하는데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에는 장남인 제가 돈을 벌어야 하는 부담감도 있었죠. 현실의 벽에 부딪혔을 때 배우는 너무나도 막연한 직업이었어요. 제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까요. 누군가 선택해줘야 하고 선택 받아야만 연기를 할 수 있는 직업이에요. 선택 당하는 일이 잔인하기에 스트레스도 받았어요. 선택받는 기준도 애매했죠. 그래서 금융권을 희망하며 성균관대 경영학과 편입을 준비하기도 했어요.”

  -결국 은행원이 아닌 배우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연극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연극영화학과 출신들이 모인 극단 ‘극단가교’를 통해 연극을 시작하게 됐어요. 아직 아마추어인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극단이었어요. 그래서 배우, 연출, 스텝을 돌아가면서 했죠. 심지어 연기자가 조명도 들고 의상도 만들 줄 알아야 했어요. 지금의 프로듀서 시스템과는 정반대라 할 수 있어요. 단순히 연극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열정 하나로 뭉쳤죠. ‘극단가교’에서 코미디, 비극, 창작극 뮤지컬 등 다양한 연극 형태를 경험했어요. 사실 성균관대 경영학과 편입을 위해 원서를 준비했음에도 지원하지 않은 이유도 ‘극단가교’에서 지방공연을 가자고 해서였어요.”

  -어떤 공연이기에 편입도 포기했나.

  “3개월간 지방 공연을 가는데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했어요. 돈을 많이 준다는 말이 큰 몫을 했죠.(웃음) 공연은 ‘한센병은 고칠 수 있다’는 주제의 계몽극이었어요. 60년대만 해도 한센병은 전염병이라는 잘못된 사실이 널리 퍼졌었죠. 전국을 돌아다니며 정확한 사실을 깨우치는 공연을 했어요. 학교 운동장에서 마당극을 펼치기도 했죠. 3개월 동안 마당극 수입으로 돈을 많이 벌고 나서는 연극영화학과를 졸업해도 돈이 생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대학시절의 추억을 꼽아본다면.

  “연극 자체가 하나의 호흡이라서 팀워크가 중요해요. 그래서 그런지 대학 재학시절 저희 과는 체육과랑 축구, 농구 경기를 해도 지지 않았어요. 호흡, 앙상블, 팀워크를 중요시하는 연극영화학과답지 않나요.(웃음) 또한 연극은 궂은 일이 많아서 소극장 청소를 자주 했어요. 학창시절을 돌아보며 생각하니 다 추억이네요.”

  -연극에 대한 애정이 남다를 것 같다.

  “연극은 제 연기의 고향이에요. 배고픔을 못 이겨 돈을 잘 벌 수 있는 드라마와 영화도 했지만 제가 연극배우 출신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어요. 아직도 연극은 환경이 열악해요. 관객도 없고 수입도 없기 때문에 많은 배우가 연극을 떠나려 하죠.”

  -애정 때문에 연극을 계속하나.

  “그렇죠. 어떨 때는 내가 연극을 해도 괜찮을까 하는 불안감이 들기도 해요. 지금 하고 있는 <그대를 사랑합니다> 연극도 대사가 400마디나 되거든요. 이 대사를 무대에서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죠. 드라마, 영화와는 달리 연극은 NG가 불가능하기 때문이에요. 그만큼 많은 연습이 필요해요. 무대에서 긴장을 엄청나게 하게 되죠. 하지만 긴장이 있음으로써 오는 재미가 있어요. 또 관객과 배우의 호흡과 교감이 즐거워 끊임없이 연극을 제 발로 찾죠. 관객은 재미있으면 웃어주고 슬프면 같이 울어주는 데 제가 연기하는 무대에서 그 모습을 보면 신바람이 절로 나요. 특히나 소극장은 관객과의 소통과 교감에 아주 최적화된 장소기 때문이죠.”

  -데뷔 후 쉬지 않고 작품 활동을 이어나갔다. 연극 관객과의 호흡이 원동력인가.

  “그렇죠. 후배들에게도 쉬는 공백이 생기면 연극을 하라고 이야기하곤 해요. 드라마나 영화가 매달 계속 있지는 않잖아요. 6개월짜리 드라마 촬영이 끝나면 6개월은 보통 쉬게 돼요.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자신을 소모하면 공허해질 때가 있어요. 그래서 쉴 때 기회가 있으면 연극을 하라고 이야기하고 저 또한 연극을 하죠. 연극을 통해서 에너지를 보충하고 충전하기 때문이에요. 연극을 통해 충전한 에너지를 다음번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발산하죠.”

나이가 들어도 지치지 않는 그의 연기 열정은 여러 작품에서도 드러난다.
나이가 들어도 지치지 않는 그의 연기 열정은 여러 작품에서도 드러난다.

  -연극에서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이유가 궁금하다.

  “감독의 지시를 받고 연기를 하는 영화와 달리 연극은 공동 작업이죠. 한 달 이상의 연극 연습을 통해 배우들과 함께 작품을 해석하는 시간을 가져요. 연극배우들이 작품 분석력이 좋아 같이 토론하며 작품을 만들어나갈 수 있죠. 함께 좋은 아이디어를 내면서 스스로가 채워지는 기분이 들어요. 그러다 보니 분위기도 가족적이에요.”

  -데뷔 56년 차다. 고민이 있다면.

  “젊어서 너무 고생했기에 현재에 만족하며 살고 있어요. 마찬가지로 고민도 없죠. 20~30대에는 수입이 거의 없었어요. 나이가 들면서 배역도 맡고 일을 하고 돈을 벌었기에 다시 돌아가라고 해도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직장인들은 정년퇴직이 있는데 저는 정년퇴직 할 나이에 일을 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지금이 행운이라고 매번 생각해요. 운이 좋았죠. 절대 잘난 체 않으려 자기관리를 하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은 배역이 제게 오면 고맙다는 생각을 먼저 한답니다.”

  -배우의 길로 처음 입문하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연극영화학과에 입학함과 동시에 고생 끝이라고 생각하는 후배들이 많아요. 정말 미안한 이야기지만 고생은 이제 시작이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그렇기에 치열하게 노력하지 않으면 안 돼요. 치열하게 노력하는 사람만이 무슨 일을 하든 살아남죠. 살아남는 자가 되기 위해 성실하게 달려 나가길 바라요.

  또한 연기자는 항상 준비가 돼 있어야 해요. 우연히 찾아온 기회를 잡지 못하면 끝이기 때문이죠. 학교 다닐 때부터 경험을 쌓아두세요. 사극, 현대극 등 모든 역할에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답니다. 준비된 자에게는 어떤 기회든 다가오니까요.”

  -기회를 잡기 위한 본인만의 방법은.

  “책을 많이 읽었어요. 책을 보면서 작품 분석을 하는 등 간접경험의 수단이 되기도 했죠. 책 읽는 과정에서 끊임없는 상상을 하기 때문이에요. 책을 통해 배역의 독특한 성격을 구축해내기도 했답니다. 그 외에도 주위 사람들한테 자문도 구하고 부지런히 노력했어요.”

  -후배들에게 어떤 선배로 불리고 싶나.

  “저 사람 참 성실하게 살다간 사람이라고 기억되고 싶어요. 저는 재주가 없어요. 그래서 남들보다 2~3배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노력하고 있어요. 재주를 이기는 길이 노력이죠. 대사를 끊임없이 반복해 보며 대사 이면에서 표현해낼 수 있는 부분들을 끌어내고자 한답니다.

  또 배역에 따라 연기의 표현이 달라져야 하잖아요. 제가 하는 연기는 저만을 통해서 나오지만 캐릭터는 다 달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뻔한 연기를 계속하면 제 연기를 보는 사람들도 지루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길을 걷다가도 대사를 반복해서 보고 말해 봐요. 그렇기에 성실하게 노력하는 선배로 불리고 싶답니다.”

 

  당신에게 중앙대

  “중앙대는 자부심이자 제 몸의 일부에요. 국적은 바꿀 수 있어도 모교는 못 바꾼다고 이야기하잖아요. 모교는 죽을 때까지 따라다닌다 생각해요. 중앙대 출신이라 하면 가끔 손이 안으로 굽기도 해요.(웃음) 뿐만 아니라 중앙대 출신들이 사회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면 자랑스럽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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