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훈 금천구청장(경영학과 82학번)
  • 고민주 기자
  • 승인 2020.03.15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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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 해결사 '골목 구청장'으로 거듭나기까지

모든 갈등은 진정성 있는 소통의 부재에서 시작된다. 더욱이 풀뿌리 민주주의를 표방한 지방자치 시대에는 소통으로 인한 갈등이 두드러진다. 지방자치단체는 구민의 요구를 수렴함과 동시에, 원칙에 따라 예산을 편성하고 정당한 행정을 펼쳐야 하는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민과 행정가의 중간 다리인 구청장의 역할은 중요하다. 자칭 골목 구청장인 유성훈 동문이 내세우는 가치도 ‘현장’과 ‘소통’이었다.

구정에 문턱이 없는

'골목길 구청장'으로서

장인정신으로 걸어 나가기

지난 2018년 ‘내게 힘이 되는 구청장’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치열한 선거전을 치른 후 금천구청장에 당선된 유성훈 동문. 그는 말로만 공약을 내세우는 구청장이 아니었다. 2019년 한 해 동안 중앙정부, 서울시 및 민간기관에서 주관하는 공모사업을 통해 634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외부재원을 확보하는 성과를 거뒀다. 뿐만 아니라 '2018 매니페스토 약속 대상'에서 기초자치단체장 선거공약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데 이어, 2019 전국기초단체장 공약 실천계획서 평가에서도 최우수 등급을 받았다. 인터뷰 내내 그에게선 성장하고 학창 시절을 보낸 고향 ‘금천구’를 사랑하는 모습이 느껴졌다. 유성훈 동문을 만나 인생 한 켠 속 이야기를 들어봤다.

  -요즘 코로나 19 대응을 위해 밤낮으로 바쁘겠다.

  “방역, 코로나 19 예방 홍보 활동 등을 중점적으로 하는 중이에요. 바이러스 확산 국면이 장기화되면서 전통시장이 직격타를 맞고 있어요. 그나마 대형 마트는 온라인 쇼핑으로 버티는 상황이에요. 그런데 사람이 대면해서 물건을 구입할 수밖에 없는 재래시장, 특히 주차가 어려운 전통 재래시장은 더욱이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답니다. 이에 재래시장을 방문해 상인들이 체감하고 있는 현 상황의 심각성을 들어봤어요. 대책은 어떤 방식으로 세워야 할지 함께 의논하기도 했죠.”

  -골목 구청장이라는 별명이 있다고.

  “구청장이라는 자리에 취임하면서 스스로 골목 구청장 닉네임을 붙였어요. 제 포부를 담은 별명이죠.(웃음) 동네 주민들을 만나 소통하기 위해서는 골목길로 다녀야 한다는 생각에서 지은 별명이에요. 골목길 어귀에 동네 슈퍼에서 구민들을 만나곤 합니다. 한 달에 두 번씩은 꼭 골목 회의를 열어요.”

  -골목 회의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달라.

  “회의라고 하면 거창하게 들릴 수 있는데 편하게 열 댓명 경우에 따라서 사십 여명의 구민과 골목길에서 만나 이야기 나누는 자리에요. 주민들이 사는 현장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토론하죠. 그런 이야기 속에 지역개발 문제, 주차·쓰레기 문제, 여성 안심 귀갓길 관련 주제들이 등장하죠. 주민들이 모여 자성하는 자리가 될 때도 있답니다.”

  -2018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기초자치단체장 선거공약 분야 최우수상 수상에 이어 지난해에는 전국기초단체장 공약 실천계획서 평가에서도 최우수 등급을 받았다고.

  “어떤 공약이든지 실천 계획이 중요해요. 실천 계획에 맞는 예산들이 발맞춰 있어야 하죠. 그렇지 않으면 말 그대로 헛공약이 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금천구의 예산안을 잘 평가해주지 않았나 싶어요,”

  -공약을 세워놓고 지키지 못하는 정치인들이 많다. 공약을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매우 궁금하다.

  “기본적으로 모든 사안은 추진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정확히 나누어져 있다고 생각해요. 가능한 일은 언제까지 추진해야 한다는 기한을 정해놓죠. 불가능한 일은 법적·제도적 한계 때문인지 예산 부족 때문인지 그 이유를 파악하려 합니다. 추진하기 어려운 일을 가능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항상 점검하려 노력해요.”

  -정치 활동이 올해로 31년째다. 자신만의 정치철학이 있다면.

  “정치는 어려운 사람들한테 도움이 돼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크게 이야기하면 민생과 현장이 제일 중요해요. 정치나 행정이나 어렵고 제일 시급한, 제일 필요한 부분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이죠.”

  -금천구에서 제일 시급한 사안은 무엇인가.

  “사안 분야별로 다르죠. 예를 들어 복지의 경우 보편적 차원의 복지도 있지만 선별적 차원의 복지도 있잖아요. 취약 계층 생활 보장 대상자 그중에서도 노인, 장애인, 아동, 여성을 중점으로 정책을 펼치려 하고 있어요.”

 

  -어렸을 때부터 꿈이 정치인이었는지.

  “학창 시절에는 대표자 직책을 한 번도 맡아본 적이 없어요. 개인적으로 조용한 성격이라서요. 경영학과를 졸업했기 때문에 사업을 해볼까도 생각했죠. 아무래도 1980년대 정치 상황이 저를 정치인의 길로 이끌었다고 봐요. 학생 운동에 눈을 떠서 운동권 활동을 많이 했죠. 학생 운동에 뛰어들면서 정계에도 입문했어요.”

  -중앙대 재학 당시 학생 운동을 하며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박정희 정부 때 학도호국단이 만들어졌어요. 이는 학생들의 투표를 통해 선출된 학생회가 아니었죠. 대학 공동체가 부활해야 한다는 생각에 총학생회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총학생회부활준비위원회부터 추진위원회까지 친구들과 함께 만들어서 총학생회를 부활시켰죠. 마침 제 친구가 선거에 나가겠다고 해서 친구가 총학생회장이 됐어요. 총학생회 출범 이후 저는 총학생회와 별개로 전국 학생 운동 조직이 있었는데 주로 그곳에 참여해 활동했답니다.”

  -대학에 변화가 필요한 순간마다 그 자리에 있었다. 또 실제로 보다 나은 방향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며 뿌듯했겠다.

  “그렇죠. 하지만 4학년 2학기에 제적됐어요. 제적되고 교외로 나가기 시작했죠. 이제 나이도 들었으니 학생 운동은 그만하고 사회변혁 운동을 해보자 해서 재야에 있는 선배들, 학생 운동 선배들과 함께 평화민주통일연구회를 조직했어요. 이 활동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제도권 정치에 참여하게 됐죠.”

  -학내 외 민주화 운동을 두루 경험하며 느낀 점이 있다면.

  “학생 운동만으로는 사회변혁이 안 된다는 점을 가장 크게 느꼈어요. 본격적인 정치 활동과 더불어 법·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제대로 된 사회변화가 이루어지겠다는 생각이 저를 정치권으로 이끌었어요. 실질적으로 법과 제도가 바뀌지 않는 이상 아무리 학생 운동을 해도 바뀌지 않기 때문이죠.”

  -학생 운동을 떼 놓고 대학생 유성훈이 궁금하다.

  “중앙대 재학 당시 저는 모범 학생은 아니었어요(웃음). 학생 운동을 하다 보니 학업에는 신경 쓰지 못했죠. 옛날 풍습에 관심이 많아 민속학 연구반 동아리를 들어갔어요. 1학년부터 시작해 3~4년 동안 활동했죠. 탈춤 공연도 했답니다. 덕분에 몸치지만 봉산탈춤은 출 수 있어요. 봉산 탈춤에서 제일 춤을 못 추는 사람이 맡는 역할이 양반인데 제가 그 역할을 맡았거든요.(웃음) 이외에도 친구들과 농활도 다니고 책도 읽고 발표를 하며 지식을 쌓았던 경험도 생각나요.”

  -지난날을 돌이켜봤을 때 구청장 직책에 이르게 해준 원동력은 무엇인가.

  “저에게 있어 삶의 에너지는 문제 제기예요. 왜 그럴까라고 하는 문제 제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회를 볼 때도 저 자신을 되돌아볼 때도 마찬가지죠. 대학 시절에는 ‘학교에 왜 경찰들이 진주하고 있지’라는 의문을 가졌어요. 그래서 학생 운동을 시작하게 됐고요. 이러한 저만의 문제 제기가 구청장 직책까지 오게 해주지 않았나 싶네요. 지금은 구청장으로서 어떻게 하면 금천구를 발전시킬 수 있을지 매일 의문을 제기하고 있어요. 저뿐만 아니라 다른 단체장들도 다 똑같지 않을까요.(웃음)”

  -마지막으로 중앙대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요즘에는 삶의 패턴이 빠르게 바뀌면서 일어나는 사회 변화가 정말 많잖아요. 하지만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변화해도 그 속을 관통하는 변하지 않는 지점이 있어요. 그렇기에 항상 자기 관점을 세우길 바라요.

  또한 어떤 일을 시작할 때 10년간의 장기적인 비전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그래야만 전문가가 돼요. 장인이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 것과 비슷하죠. 장인정신을 갖고 다양한 활동과 경험을 통해 자기만의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당신에게 중앙대란?

  “저에게 중앙대는 가족이에요. 아내도 민속학 연구반 동아리에서 만난 중앙대 동기랍니다. 중앙대 교훈이 ‘의에 죽고 참에 살자’잖아요. 그래서 저희 큰딸 이름을 교훈의 앞자리를 따서 이름을 지었어요. 딸한테 이야기하니까 처음에는 ‘뭐야’라고 하더라고요.(웃음) 하지만 본인도 뜻이 좋다고 만족하죠. 그래서 중앙대는 우리 가족과도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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