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웨일스에 위치한 작은 시골 마을 ‘헤이 온 와이’는 세계 책 마을의 원조로 헌책들의 메카라고 불린다. 해당 마을은 비교적 후미진 곳에 위치해 있지만 세계적인 문학 중심지로 성장했다. 부산 보수동에도 헤이 온 와이처럼 헌책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작은 골목이 있다. 보수동책방골목의 매력을 파헤치기 위해 상인과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반도를 아우르는 역사

  1950년 부산은 한국전쟁 발발로 임시수도가 됐다. 전쟁을 피해 북한에서 내려온 손정린씨 부부는 미군부대에서 나온 잡지 등을 수집해 보수동 사거리 입구에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를 시발점으로 여러 상인이 각종 헌책을 노점에서 판매함으로써 보수동책방골목은 피어났다. 책을 구하기 어려웠던 당시 보수동은 수많은 시민들에게 서적을 제공하는 중요한 장소였다.

  보수동에 모이는 헌책들은 사회 흐름에 따라 다채롭게 변해왔다. 보수동책방골목번영회 허양군 회장은 책방골목이 시대와 연결성이 깊다고 설명한다. “초기에는 미군부대가 버린 서적들을 위주로 팔았어요. 이후 참고서와 교과서가 주로 팔렸죠. 당시 헌책방은 유일한 지식 공유의 장이었기 때문에 많은 학생이 이곳에서 책을 사고팔았어요.” 1970년대에는 무려 70여개의 점포가 들어오면서 보수동은 부산의 대표 문화 골목으로서 당당히 자리 잡았다.

  작지만 강한 전문가

  책이 귀했던 과거에만 해도 문전성시를 이뤘던 보수동이지만 현재 인터넷과 대형 서점의 영향으로 다소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보수동책방골목에서 약 20년 동안 중고 만화를 팔아온 ‘국제서점’의 상인 A씨는 인터넷 발달과 함께 손님이 줄었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핸드폰과 인터넷이 발전하면서 거리에서 서적을 사는 사람이 감소했어요. 불과 몇년 전만 해도 거리에 활기가 돌았는데 말이죠.”

  헌책방이 예전에 비해 인기가 감소한 배경에는 서적 분류상 문제도 존재한다. 가게 안팎으로 순서 없이 쌓여있는 형태에 서적을 찾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A씨는 헌책방에 특화된 상인의 전문성이 해결방안이라는 말을 붙인다. “복잡하게 서적이 놓인 헌책방의 특성상 책을 찾기 어려워하는 고객이 많아요. 가게 밖에서만 훑어보고는 원하는 서적을 찾기 어렵죠. 하지만 가게 주인에게 책 이름을 직접 이야기하면 무조건 찾아줘요.” 보수동의 상인들은 각자의 가게 구조를 완벽히 숙달한 헌책 전문가다.

  이처럼 전문성을 겸비한 보수동책방골목은 다양한 시도를 통해 거리 활성화를 도모하고 있다. 허양군 회장은 종이책을 즐겨보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골목만의 차별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요즘은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접해요. 이런 상황에서 보수동은 빈티지 샵, 북카페 등에 책을 공급하며 시대 흐름에 적응하고 있어요.”

  유구한 생명력을 지닌 곳

  깊은 역사와 전통을 지닌 보수동책방골목이 더욱 활성화되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전공서적부터 소설까지 다양한 서적을 다루는 ‘월드서점’의 상인 B씨는 정부 차원의 보호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외국의 경우 헌책방 보호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요. 거리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국가적 노력도 수반돼야 하죠.”

  실제로 부산광역시 중구청에서는 보수동책방골목 문화축제 지원과 보수동 환경 개선 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문화관광과 김경란 주무관은 보수동의 발전을 위해 구청 차원에서 다양한 활동을 선행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문화축제를 번영회에서만 진행하기는 어려운 실정이에요. 올해 축제도 구청 측에서 지원했어요. 관광안내소와 관광안내판도 마련해 골목 환경 개선을 위해 힘쓰고 있죠.”

  보수동책방골목 문화축제는 올해로 16회를 맞이했다. 그러나 허양군 회장은 축제 존치 여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설명한다. “부산자갈치시장의 권유로 축제를 기획했어요.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지만 앞으로 더 이상 축제 비용을 상인들이 부담하기 어려운 형편이에요. 국가 지원이 더욱 필요한 때죠.” 이어 허양군 회장은 헌책방이 도서 시장 전반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고 강조한다. “헌책은 이미 책으로서 그 가치가 인정된 물품이에요. 책 중에서도 황금 같은 알맹이만 모여있는 헌책방이 살아야 전체 책 시장이 활성화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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