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 언어, 혈통 등으로 ‘족(族)’을 구분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여기 개성과 취향으로 하나의 ‘족’이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번학기 문화부는 저마다의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문화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이번주는 ‘노케미족’의 족장과 함께했습니다. 화학물질이 들어간 제품을 거부하는 노케미족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요? 노케미족의 문화가 궁금하다면 국제아로마테라피협회 윤금순 협회장과 배원규 교수의 이야기에 주목해주세요. 지금 시작합니다!

 

느리지만 건강하게
나를 위한 노케미 레시피
한 걸음씩 화학 물질과 멀어지기

 

 

지난 2011년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폐 손상으로 산모, 영유아 등이 사망하거나 폐 질환에 걸린 사건이 전국을 뒤흔들었다. 또한 지난 2017년에는 ‘생리대 유해물질 사건’이 발생했다. 다수의 유해 물질이 생리대에서 검출됐다는 실험 결과는 온 국민에게 충격을 안겼다. 화학물질로 인한 사건·사고가 계속되는 현대 사회 속에서 화학물질 의존도를 낮춰 건강한 삶을 영위하는 노케미족을 만나봤다.
 

 

  건강을 위해 Do It Yourself!


  그는 시중에서 판매하는 비누나 화장품을 쉽게 사용할 수 없는 아이였다. 아토피 피부도, 발진이 일어나는 피부도 아니지만 기성 제품을 사용할 때마다 따가움을 느꼈다. 그러던 와중에 허브를 우린 물이 스킨을 대체할 수 있다는 정보를 접하고 그는 천연 DIY 제품에 입문하게 됐다. 국제아로마테라피협회 협회장을 맡고 있는 윤금순 협회장의 이야기다. 현재 윤금순 협회장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 노케미컬 문화의 활성화를 위해 강의 개최, 책 출간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민감성 피부였던 윤금순 협회장은 25세부터 자신을 위한 천연 화장품을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피부에 맞지 않아 그동안 사용하지 못했던 스킨케어 제품을 직접 만들어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천연 DIY 제품에 자연스럽게 흥미를 붙였다. “의외로 재료비가 저렴해요. 직접 만들어 주변에 나눠주면서 뿌듯함도 많이 느꼈죠.” 이제는 스킨케어 제품을 넘어 일상생활 속 대부분의 화학 제품을 천연 DIY 제품으로 대체해 사용한다. “색조 화장품, 주방 세제, 세탁 세제도 다 직접 만들어 사용해요. 천연 DIY 제품을 이용해 욕실과 싱크대 청소도 하고 있죠.”


  지난해 윤금순 협회장은 전문가의 도움 없이 노케미컬 제품을 직접 만들 수 있도록 천연 제품 레시피를 담은 책을 출간했다. “주의해야 할 유해 성분을 소개하고 친환경 세제, 천연 비누, 천연 화장품 등의 DIY 레시피를 담은 책이에요. 천연 DIY 제품이 저울과 재료만 있으면 쉽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현장 강의를 통한 노케미컬 문화 확산에 힘쓰고 있는 윤금순 협회장의 모습이다.사진 윤금순 협회장 제공
현장 강의를 통한 노케미컬 문화 확산에 힘쓰고 있는 윤금순 협회장의 모습이다.   사진 윤금순 협회장 제공

 

  노케미컬 생활에 불편함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직접 만드는 천연 DIY 제품은 유효기간이 보통 3개월에서 6개월 정도다. 기성 제품보다 짧은 유효기간 탓에 자주 만들어 써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금순 협회장은 천연 제품을 향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노케미 생활을 추구하면 조금은 번거롭고 귀찮을 수 있죠. 일상생활에서 편리하게 사용하던 제품들을 하나하나 의심하고 따져봐야 하니까요. 하지만 느리더라도 천연 제품을 사용하는 작은 실천들이 모였을 때 사랑하는 사람들의 건강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해요.”


  국내 노케미 문화의 현주소는 어떨까. 윤금순 협회장은 국내 노케미 문화의 촉발지점으로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이야기한다. “해당 사건을 계기로 대중은 화학 물질에 공포를 느끼게 됐어요. 그 이후로 노케미컬 문화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났죠.” 천연 성분이 적혀있어도 믿지 못하는 불안감이 커져 천연 DIY 제품 시장도 활성화됐다.

 


  생각보다 중요한 ‘용기’


  여기 노케미컬 샴푸를 연구하는 전기공학부 교수도 있다. 배원규 교수(숭실대 전기공학부)는 ‘피부를 통한 진단과 치료’를 주제로 한 의공학 연구의 연장으로 노케미컬 샴푸를 다루게 됐다고 말한다. “피부는 몸에서 가장 큰 장기에요. 샴푸나 바디워시는 피부에 직접 닿기 때문에 건강과 밀접한 관련이 있죠. 때문에 두 제품에 집중해 연구를 시작했어요.”


  배원규 교수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유학하던 당시 노케미컬 문화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됐다. “실리콘밸리는 새로운 기술과 문화를 선도하는 지역으로 생활수준이 높고 건강과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은 곳이에요. 더불어 ‘피부로 흡수되는 환경호르몬’을 주제로 연구를 진행하면서 노케미컬 문화를 자연스럽게 접하게 됐죠.” 하지만 직접적인 계기는 당시 친구의 월경전 증후군, 다낭성 난소증후군 진단이었다. 단순히 연구 주제로 생각하던 노케미컬 문화가 생활 속으로 들어오며 배원규 교수는 연구를 넘어 안전하고 저렴한 제품을 생산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됐다.


  국내 샴푸나 바디워시를 담는 용기는 반투명한 경우가 많다. 배원규 교수는 용기를 투명하게 만들수록 화학 첨가물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화학 성분이 첨가된 용기가 내용물과 반응한다고 생각해보세요. 당연히 사용자에게 악영향을 미치죠. 아직까지 국내 제품들은 내용물을 담는 용기에는 인식이 부족한 상황이에요.” 배원규 교수는 제품의 유효 성분이 보존되면서 내용물과 화학적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용기를 사용해 자체 브랜드를 론칭했다. “아무리 좋은 외국 노케미컬 제품도 수입과정을 거치면 뜨거운 컨테이너 속에서 내용물이 용기와 반응할 가능성이 커져요. 안전한 제품을 국내에서 직접 생산할 필요성을 느꼈죠.” 덧붙여 그는 노케미컬 제품의 한계로 지적되는 높은 가격도 보완했다. “정부의 지원을 받은 연구 산업이었고 대학에서도 공간과 인력을 지원받았죠. 따라서 고가의 기성 노케미컬 제품보다 저렴하게 제작할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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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원규 교수는 환경호르몬 위험이 없는 노케미컬 제품 용기를 연구해 상용화했다.   사진 배원규 교수 제공

 

  배원규 교수는 노케미컬 문화가 청년층에 많이 알려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질적으로 건강에 관심을 갖는 시기는 30대 이상이에요. 하지만 건강 악화를 미리 막을 수 있는 10대와 20대에 노케미컬 문화를 확산하는 게 중요하죠.” 배원규 교수가 다른 업체들과의 협약을 뒤로하고 청년층이 주로 이용하는 플랫폼에 입점한 이유다.


  마지막으로 배원규 교수는 노케미족에 입문하길 희망하는 사람들이 ‘케미포비아’를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케미포비아’란 생활화학제품에 대한 공포증을 일컫는 말이다. “키보드를 만지는 행위만으로도 화학성분이 피부를 통해 흡수될 수 있어요. 하지만 아주 소량이죠. 샴푸, 바디워시 같이 인체에 큰 영향을 주는 요소부터 바꿔나가는 생활 방식이 중요해요.” 배원규 교수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며 환경호르몬으로 등록된 물질을 모두 배제할 수는 없다고 전한다. “매년 새로운 환경호르몬이 등록되는데 일일이 다 테스트할 수는 없어요. 이미 위험성이 확실히 알려진 성분부터 배제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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