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개강 후 그 어느 때보다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문화부에 들어와 매주 기사를 준비하면서 학교 수업과 봉사활동, 영어 회화 과외를 병행해야 했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바쁘게 살아내고 나면 일요일에는 그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들을 봐야 했습니다. 다이어리에 일정이 쌓여갈수록 바쁘게 살고 있다는 뿌듯함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 쪽엔 무언가 찜찜한 느낌이 자리 잡았죠. 잘 하고 있는 건지, 등 떠밀려 살고 있는 건 아닌지 헷갈렸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어느 수요일이었습니다. 취재처는 전화를 받지 않고 수많은 상점에서 기자의 인터뷰를 거절했습니다. 속상하고 화가 났지만 취재를 그만둘 수는 없었습니다. 수없는 거절 끝에 인터뷰에 성공했고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습니다. 행복했죠. 서둘러 봉사 활동을 위해 이동했습니다. 바쁜 하루 중에도 계획한 일정을 모두 마쳤으니 뿌듯한 하루여야 했습니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니 원인 모를 허탈함이 쏟아졌습니다. 아직 해야 할 일은 쌓여 있었지만 아무것도 하기 싫은 무력감이 계속됐습니다. 기자는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그 원인 모를 무력함의 이유를 찾아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가만히 내면에 집중했습니다. 하루를 돌아보며 순간순간 불어닥친 감정의 파도들을 곱씹어 봤습니다. 그날 하루 느꼈던 감정들과 그 이유를 곰곰이 복기했습니다. 그리고 본인이 상처를 받았기 때문임을 깨달았습니다. 기자는 당일 겪었던 수많은 거절이 기자를 향한 거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거절은 기자의 취재 요청에만 해당했을 뿐 기자 본인을 향한 것이 아닌데 말입니다. 그렇게 마음 쓸 필요 없다며 스스로를 위로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습니다. 자신을 설득하고 위로한다니 퍽 웃긴 일이지만 그 이후 취재는 한결 쉬워졌습니다.


  이후 기자는 본인의 감정을 흘려보내지 않기로 했습니다. 짧게 스쳐 지나가는 감정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본인을 위로하고 보듬어주기로 다짐했습니다. 사소한 이유일수록, 별 이유 없는 감정일수록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은 본인뿐이니까요. 신문사에서 지새우는 밤이 유난히 힘이 들 때면, 자꾸만 등 떠밀려 사는 느낌을 받을 때면 가만히 내면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어젯밤 잠을 설쳐 피곤하구나.’ ‘요즘 주말까지 약속을 잡아 일정을 돌아보고 점검할 시간이 부족했구나.’ 자기 자신을 위로하는 데 논리적인 근거나 거창한 말들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해결 방안은 찾으면 좋고 못 찾아도 그만이었습니다. 본인의 감정의 상태를 알아주는 그 자체로 힘든 감정은 누그러졌고 기자는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가까운 친구가 유난히 힘들어하고 이유 없이 지쳐 보일 때 우리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합니다. 그 위로가 정답은 아니더라도 들어주는 자체로도 힘이 되니까요. 어쩌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존재인 본인의 이야기를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유 없이 무력하고 유난히 지치는 날, 가끔은 본인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위로해주는 시간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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