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 언어, 혈통 등으로 ‘족(族)’을 구분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여기 개성과 취향으로 하나의 ‘족’이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번학기 문화부는 저마다의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문화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이번주는 ‘렉(Rec)족’의 족장과 함께했습니다. 렉족은 개인의 일상을 영상으로 기록하는 사람들을 일컫습니다. 달달한 카페 브이로그를 찍는 안유준씨와 버스기사의 치열한 하루일과를 촬영하는 김진성씨의 일상에서 영상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렉족 집중 탐구, 지금 시작합니다!

 

자기발전의 초석 되어준 영상
일상에 뿌리 내린 브이로그
클릭 한번으로 경험하는 타인의 삶

 

현재 전 세계 유튜브 이용자의 하루 시청 시간은 약 10억 시간, 업로드 되는 새로운 동영상은 1분에 400여 시간에 달한다. 이른바 영상 홍수의 시대에 자신들만의 무기로 당당히 도전장을 내민 이들이 있다. 영상의 매력에 빠져 스스로의 일상을 끊임없이 기록하는 ‘렉(Rec)족’을 만나 그들의 생활 모습을 살펴봤다.

 

 

  커피 향 가득한 기록

  통통 튀는 음악과 함께 다양한 색채의 디저트가 화면을 가득 채운다. 새하얀 생크림이 과일을 덮을 때 덩달아 포근함을 느낀다. 카페‘Good simple’의 사장 안유준씨(28)는 지난 6월 ‘카페노예 jun’이라는 이름의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그는 주로 디저트와 음료를 제작하는 모습을 영상에 담아 카페 브이로그를 업로드한다. 

  안유준씨는 유튜브를 시작한 지 약 3개월 만에 8만 여명의 구독자를 모았다. “유튜브 영상을 보고 방문하는 손님이 꽤 많아요. 유튜브에서 한번쯤 본 것 같다는 말도 간혹 듣죠.” 안유준씨의 영상이 이목을 끈 비결에는 영상을 향한 열정이 큰 몫을 차지한다. 안유준씨는 영상 매체를 이해하기 위해 유튜브 플랫폼 패턴인 ‘유튜브 알고리즘’을 꾸준히 탐구했다고 언급한다. “유튜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계속 공부했어요. 시청자가 영상을 보는 시간과 영상이 노출됐을 때 실제로 클릭하는 횟수가 가장 중요해요. 두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많이 노력했죠.”

 

 

  가장 기억에 남는 영상을 골라달라는 질문에 안유준씨는 지난 20일 기준 조회수 약 109만회를 기록한 영상을 꼽는다. 해당 브이로그 영상은 안유준씨 연구의 값진 결실이다. “대부분의 카페 브이로그 영상은 만드는 과정만 나열해요. 제 영상에서는 지루함을 없애기 위해 흐름을 빠르게 하고 중간에 다양한 장면을 끼워 넣었죠. 디저트 제작 영상 뒤에 곧바로 영수증 출력 영상이 이어지도록 만들기도 했어요. 영수증 영상만 모아 올려달라는 요청이 있을 정도로 해당 장면은 반응이 뜨거운 편이에요.” 영상 속 퐁! 하고 경쾌하게 튀어 오르는 영수증을 보면 인기의 이유가 짐작된다. 

  복습도 빼먹지 않는다. 안유준씨는 첫번째 영상을 다시 곱씹어 보는 과정에서 개선점을 인식했다고 말한다. “첫번째 영상은 흐름이 느렸어요. 출근부터 청소까지 준비 장면을 길게 삽입해 시청자의 초반부 영상 이탈도 다수 있었죠. 오프닝을 간결하게 만드니 시청 지속시간이 1~2분 정도 더 길어졌어요.”   

  안유준씨에게 영상은 이제 제2의 직업과 같은 존재가 됐다. “삶 자체라고나 할까요. 영상에 정말 큰 비중을 두고 있죠.” 앞으로의 영상 촬영계획을 묻자 안유준씨는 다양한 포부를 쏟아낸다. “제 일상을 더 넣고자 해요. 24시간 밀착 브이로그나 메뉴 개발 과정을 넣고 싶어요. 카페가 쉬는 날의 일정을 공유하는 콘텐츠도 찍을 계획이에요.”  

 

 

  카메라에 담긴 치열한 17시간

  최근 변호사부터 의사까지 다양한 직업군의 유튜버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아직 유튜브 시장 내에서는 다소 생소한 직업인 버스 기사 유튜버를 만나봤다. “새벽 다섯 시쯤 차고지에 도착해 왕복 4시간 코스를 총 4번 돌아요. 일정이 끝나고 나면 새벽 한 시가 돼 있죠.” 버스 기사가 감내해야 하는 노동의 강도는 높다. 유튜브에서 ‘20대 버스 기사 이야기’ 채널을 운영하는 김진성씨(25)의 브이로그에는 버스 기사의 고단한 일상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차량 앞 유리 너머 펼쳐진 도로에는 김진성씨가 운전 중에 마주하는 풍경이 담긴다. 차에 햇살이 비치는 모습으로 시작해 어두컴컴한 장면으로 끝나는 버스 영상을 시청하고 나면 하루를 오롯이 그와 함께 보낸 듯한 느낌이다. 

 

 

  김진성씨는 약 4개월 전부터 버스 운전석 옆 받침대에 고프로 카메라를 매달아 꾸준히 버스 기사 브이로그를 찍어왔다. 김진성씨에게 유튜브는 버스 기사의 삶을 공유하는 하나의 매개체가 돼줬다. “무의식적으로 이용하는 버스에 오랫동안 운전하며 고생하는 버스 기사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계기가 돼서 보람차요.” 그는 시각과 청각을 모두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영상은 효과적인 설명 수단이라고 덧붙인다. “불법으로 주정차한 차 때문에 좁아진 길을 힘겹게 지나가는 영상을 찍어 업로드한 적이 있어요. 버스 기사의 노고를 알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죠. 공간을 양보해주는 다른 차의 훈훈함도 보여줄 수 있었어요.” 

  하지만 김진성씨의 영상 촬영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영상 촬영에 고깝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시내버스 업계 분위기로 인해 촬영이 난관에 봉착하기도 했다. “인터넷 방송을 찍는다는 민원이 들어와서 해고당할 뻔한 적도 있어요. 시내버스 업체는 시키는 대로 운전만 하는 사람을 원하더군요.” 

  그러나 김진성씨는 자신의 일상에서 큰 의미를 차지하고 있는 영상을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현재 김진성씨는 보다 자유로운 관광버스 회사로 환경을 바꿔 버스 브이로그 제작을 이어가고 있다. 김진성씨는 앞으로의 영상에서 버스 기사의 쉬는 시간을 다루고 싶다고 말한다. “승객들이 여행을 즐기는 동안 버스 기사들은 뭘 하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그런 휴식 시간을 콘텐츠로 다뤄보고자 해요.”    

  다양한 콘텐츠가 넘쳐나는 오늘날 대중은 왜 브이로그에 이끌릴까. 김진성씨는 손쉽게 타인의 삶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을 꼽는다. “브이로그는 누군가의 삶을 보여주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해요. 타인의 인생이나 직업을 클릭 한 번으로 경험할 수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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