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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평야에 위치한 금광호수. 바라만 봐도 평안해진다. 사진출처 안성시​

사람 살기도 안성맞춤
용을 따라 혈을 찾아서

경기도 최남단, 차령산맥 기슭에 자리 잡은 아담한 고장이 있다. 위태로움이 없는 편안한 성곽, 안성(安城)이다. 안성 지명의 역사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안성현에서 시작됐다. 1361년(공민왕 10) 원나라의 홍건적이 침입해 개경까지 함락된 바 있다. 이때 안성 백성들은 기지를 발휘했다. 항복하는 연기를 하며 적의 승리를 축하하는 잔치를 벌인 것이다. 적군들이 술에 취한 사이 안성 백성들은 적을 무찔러 위세를 꺾어놓았다. ‘안성현’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안성군’으로 승격됐다. 그리하여 위태로움이 없는 편안한 성, 안성(安城)으로 통하게 된 것이다. 이 땅에 잠재된 민중의 저력은 문학에서도 드러난다. 조선시대 손꼽히는 의적이 등장하는 소설, 황석영의 『장길산』과 홍명희의 『임꺽정』의 무대 역시 안성이다.

  안락한 성곽이도다
  ‘편안하다’는 뜻의 지명과 달리 삼국시대에 안성은 고구려, 백제, 신라의 각축장이었다. 4세기 이전에는 백제지역, 5세기에는 광개토 대왕과 장수왕의 남하정책으로 고구려의 영토였다.  6세기에는 한강유역까지 진출한 신라에 편입되는 등 파란만장한 서사를 지녔다. 안성이 이토록 폭발적인 인기 지역이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안성의 지형은 전체적으로 동북이 높고 서남쪽 경사가 완만하다. 남북으로 형성된 차령산맥은 지역을 동·서로 나누는 분수령이다. 산맥의 동쪽으로는 청미천이 흐르고 서쪽으로는 안성천과 조령천, 한천이 합류해 서해로 흘러 나간다. 남쪽으로는 서운산이 충청도와 경계를 이뤄 솟아있으며 서쪽에는 안성평야가 넓게 펼쳐져 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쌀은 맛 좋은 ‘경기미’로 유명하다. 한중근 교수(건설환경플랜트공학전공)는 하천이 안성에 비옥한 토양을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암석이 침식되면 점토가 됩니다. 점토에는 광물질인 미네랄, 칼슘 등이 풍부해 생물들이 잘 자랄 수 있죠”
  경기도 최남단에 위치한 안성은 북쪽으로는 용인·이천 등 경기 지역, 남쪽으로는 충청 지역과 인접하고 있다. 홍원의 학예연구사(안성맞춤박물관)는 안성의 지형적 특성이 문화·교통의 요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라고 설명한다. “지형적 특성은 도로망과 직결돼요. 길이 만나는 곳이라 해서 인후(목구멍)라고도 하죠. 인접도시와의 왕래가 빈번해 예부터 내륙교통의 중심지로 상권이 발달했어요.” 안성에는 팔도의 물건들이 모여들어 각종 농산물과 생활수공품들이 집결하는 문화의 접경지대를 이뤘다. 안성시장 5일장은 육로를 따라 삼남지방(충청·전라·경상)과 한양으로 뻗쳐 조선 3대 시장으로 손꼽히는 상업중심지였다. 박지원의 소설 『허생전』에서 허생이 매점매석하여 조선의 유통질서를 마비시킨 출발점이 바로 ‘안성장’이다. 

  아니 성(盛)하올시다
  한때 안성장은 ‘안성에 가면 무엇이든 있다’로 통하기도 했으나 상설시장이 전국화된 탓에 대세에서 밀려난 지 오래다. 안성의 유기그릇과 가죽꽃신이 유명해 생겨난 '안성맞춤’이라는 말도 산업화 시대 이후에는 갈 길을 잃었다. 강창덕 교수(도시계획부동산학과)는 안성이 시대 흐름에 맞게 변화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조선시대에는 안성 유기, 공예 등으로 명성이 높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지역에 적합한 산업을 찾지 못했어요. 전통산업도 현대사회에 맞는 역할을 찾아내야 지역발전을 꾀할 수 있어요.” 
  안성이 산업화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파트, 골프장 건설 등 개발의 움직임이 일기도 했다. 강창덕 교수는 무분별한 자연환경 개발이 해답은 아니라고 덧붙인다. “자연환경을 해치지 않되 특성은 살린 지역브랜드화가 필요해요. 전통 공예산업과 자연친화적 도시 이미지를 결합한 이미지로 안성만의 차별화된 방법을 찾아야할 때죠.”

  장풍득수하니, ‘명당’이로다!
  풍수지리는 2천년의 오랜 역사를 가진 우리민족의 전통사상이자 지리학이다. 풍수(風水)는 장풍득수(藏風得水)의 준말로 ‘바람은 감추고 물을 얻는다’는 의미다. 산맥은 그 흐름이 용처럼 생겼다하여 ‘용’이라 부른다. 용을 따라 땅의 생기가 전달되고, 그 생기가 모인 땅을 ‘혈’이라 한다. 따라서 산맥이 연결된 곳이 생기를 받아 좋은 땅이라 보며 혈처에 집을 짓거나 중요한 건물을 입지시킨다.
  정경연 교수(인하대 정책대학원)에 따르면 안성의 ‘용’은 보은군 속리산에서 김포시 문수산까지 이어진 산맥인 한남정맥에서 비롯된다. 한남정맥 국사봉에서 보개산으로 갈라져 나온 산맥이 매봉과 돌섯산으로 이어져 안성의 주산인 비봉산을 세웠다. 봉황이 날아간다는 뜻의 비봉산에서 남쪽 평지로 내려온 산맥이 안성천을 만나 멈춘 형태를 띤다. 산맥이 멈춘 혈에는 좋은 기운이 넘치는데 안성향교와 안성초등학교, 교육지원청이 자리하고 있다. 주변 산들은 평야를 겹겹으로 감싸며 큰 분지를 형성해 산세가 큰 바람을 막는다. 넓고 평탄한 들판은 물이 풍부하고 기름지다. 자연재해가 없고 들판이 풍요로운 곳이니 이는 안성이라는 이름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안성캠을 풍수지리학적 관점으로 보면 어떨까. 김갑진 교수(평생교육원 풍수지리)는 캠퍼스의 터가 능선을 잘 활용하지 못해 아쉽다고 전한다. “능선으로 산의 용맥이 흐르는데 캠퍼스가 능선 아래쪽을 차지하고 있어요. 능선에는 도로가 만들어져있고 캠퍼스는 비탈길에 지어진 상황이에요.” 덧붙여 안성캠 입구의 높이 또한 적절하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입구는 사람들이 쉽게 드나들 수 있어야 해요. 평평한 지대에 위치해야 맑은 기운이 들어올 수 있어요.” 
  반면 정경연 교수는 캠퍼스 터에 전반적으로 생기가 가득하다고 말한다. “사방의 산들이 학교를 에워싸고 있어 생기가 바람에 흩어지지 않는군요. 기름진 땅에서 자란 곡식이 풍요로운 결실을 맺듯 생기 넘치는 땅에서 공부해야 큰 인재로 성장할 수 있는 법입니다.”
  풍수지리학은 자연현상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인간의 발전과 행복을 추구하는 학문이다. 하지만 풍수지리를 맹신할 필요는 없다. 강창덕 교수는 현대에는 자연적인 요소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아무리 명당인 집이라도 배려 없는 이웃이 산다면 불편하기 마련이에요. 현대의 풍수는 인간관계에 있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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