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권이 아닌 당연한 권리, 성중립화장실
  • 김서현 기자
  • 승인 2019.06.03 20: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의자를 박차며]

성중립화장실은 성별, 장애 유무의 구별 없이 누구나 이용 가능한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다. 그러나 성중립화장실을 향한 대중의 인식은 여전히 ‘남녀공용 화장실’에 머물러 있다. 국내에서 성중립화장실 설치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위해 어떤 방안이 필요할까. 이미 성중립화장실 설치가 활발한 해외사례를 중심으로 성중립화장실 설치 방안을 전문가와 함께 짚어봤다.

  문화로 자리 잡은 성중립화장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주 내 모든 단독 화장실에 남녀 구분 표지판 대신 성중립을 뜻하는 알림판을 의무적으로 부착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보건안전법」 제14편은 ‘주의 모든 단독 화장실은 모든 성별을 위한 화장실로 인정돼야 한다’는 조항을 명시하고 있다. 워싱턴 D.C. 역시 조례 제4편에서 ‘법을 적용받는 모든 자들은 단독 화장실에 성중립적 표지를 사용해야 한다’는 조항을 통해 개인이 성별 정체성으로 차별받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고 있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박한희 변호사는 미국이 성소수자의 화장실 사용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여러 주가 개인이 성별 정체성에 맞게 화장실을 쓸 수 있도록 권리를 보장해요. 성중립화장실은 권리를 보장하는 원칙의 실현방안이죠.”

  미국 사회가 성중립화장실 설치에 나선 이유는 대학생의 적극적인 움직임에 있다. 박한희 변호사는 미국의 대학생 운동이 성중립화장실 공론화의 시발점이라고 말한다. “트랜스젠더의 화장실 사용문제가 대학생을 중심으로 제기됐어요. 학내 트랜스젠더가 교내 화장실의 분리성을 꼬집은 데서 성중립화장실이 대안으로 대두된 거죠.” 이후 미국 사회는 성중립화장실을 둘러싼 인식 고취를 위해 여러 방안을 마련했다. 실제로 지난 2015년 오바마 전 대통령은 백악관을 시작으로 성중립화장실의 설립을 본격화했다. 

  아시아 최초로 동성혼을 허용하는 등 성소수자를 위한 여러 법적 기반을 갖춘 대만 역시 성중립화장실 설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2016년 대만은 ‘성중립화장실 설계정책 연구’를 시행해 전국 성중립화장실 설치 사례와 법규 개선을 위한 자료를 취합했다. 또한 지난 2017년 성중립화장실 설립 가이드라인을 배포하거나 지자체 차원에서 국립중학교에 성중립화장실을 시범 운영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내놓았다. 

  이러한 사회적 인식은 올바른 성평등 교육의 법제화로 이뤄졌다. 박한희 변호사는 대만의 「성평등 교육법」을 언급하며 성교육의 구체적 법제화가 사회에 미친 영향을 강조했다. “대만은 지난 2004년 동성애자 학생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을 계기로 「성평등 교육법」을 제정했어요. 이 법이 대만 사회의 여론을 크게 변화시켜 성중립화장실이 공론화되는 배경으로 작용한 거죠.”  
        
  누군가는 불편함을 겪는다 

  성중립화장실 설치에 관한 국내 논의가 보편화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이 수반돼야 할까. 박한희 변호사는 대중이 성소수자의 불편함을 인지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성중립화장실의 개념 역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중이 성별 이분법적 화장실을 당연하게 여기는 이유는 생활에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죠. 반면 성소수자는 화장실 출입에 항시 큰 제약을 받고 있죠. 성별 분리가 당연하다는 시각이 누군가를 배제하고 있다는 걸 인식해야 해요.” 그는 성중립화장실이 ‘모두를 위한 화장실’임을 덧붙여 설명했다. “성별 이분법적 화장실은 성소수자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장애인 보조자의 성별이 다른 경우, 어린 딸을 둔 아버지가 화장실을 찾는 경우 등의 경우에도 불편함이 발생하죠. 성중립화장실은 이러한 불편함을 해소할 수 있어요.” 성중립화장실에 대한 올바른 인식 마련을 위해 대만처럼 성교육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은 성중립화장실을 둘러싼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교육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불편함을 느끼는 당사자의 목소리를 듣고 반영할 수 있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해요. 인식 개선을 위해 국가적으로 성교육을 실시해야겠죠.”

  박한희 변호사는 국내에서 성중립화장실 설치가 보편화되기 위해 명확한 실태조사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화장실에 관한 기존 조사는 위생에 국한돼있어요. 성별이 분리된 공간 때문에 불편함을 겪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가 먼저 이뤄져야 해요.” 김지학 소장은 성중립화장실을 향한 편견을 없애기 위해 국가적 차원의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성중립화장실의 개념이 확산되려면 가짜뉴스로 각인된 오해를 바로잡아야 해요. 또 교육과 캠페인을 통해 차별적 시선을 개선해야 하죠. 일상생활 속 필수적인 화장실을 이용할 땐 불편함이 없어야 해요.” 성중립화장실은 어느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성별 분리가 누군가를 ‘당연한’ 권리에서 분리시킨다면 이에 대한 인식 제고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