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류, 앞장서 걸어갔던 독일
  • 신혜리 기자
  • 승인 2018.12.03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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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대학교류 알아보기

적극적인 교류가 일궈낸
통일을 향한 발걸음

굳건하던 장벽은 무너졌고
대학은 새롭게 태어났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분단국가다. 독일, 예멘, 베트남 등 과거 분단국가들이 모두 통일을 이뤄냈기 때문이다. 독일의 경우 동서독 간 교류와 협력이 통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총 34차례의 협상에 걸친 교류는 양독 간 상호관계를 개선하는 데 일조했다. 분단에 따른 고통 완화, 민족 동일성 유지에도 크게 기여해 통일의 밑거름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한반도에도 평화의 분위기가 조성됨에 따라 남북 간 교류의 장이 열리고 있다. 더불어 남북 간 대학교류의 씨앗도 싹트기 시작했다. 앞으로 남북 간 대학교류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과거 동서독 간의 대학교류와 그에 따른 변화를 짚어봤다.

  통일의 길 닦은 교류

  1972년 12월 분단된 양독의 정상적 우호 관계를 위한 ‘양 독일 관계의 기초에 관한 조약’이 체결됐다. 하지만 문화 및 교육교류는 쉽게 합의점을 찾지 못한 상태였다. 문화 및 교육교류는 경제교류나 인도적 교류와는 달리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요소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서독은 민족 동질성을 유지하기 위해 민족문화 차원에서 문화교류를 원했으나 동독이 서독의 문화침투를 경계하며 이를 거부했다. 문화 및 교육교류가 타 분야 교류에 비해 가장 늦게 이뤄진 이유다.

  신용철 명예교수(경희대 사학과)의 논문 「독일통일과 문화 및 교육의 교류」에 따르면 1973년부터 논의된 문화협정 체결은 1986년 5월에 이르러서야 결실을 맺는다. 문화협정이 체결된 이후 문화교류가 크게 활성화된다. 1987년 9월에는 교육 분야 중에서도 대학 연구에 집중한 학문·기술협정이 체결됐다.

  문화협정의 기초 위에 양측은 대학생과 대학원생을 위한 지원계획에 합의했다. 이로써 대학 간 자매결연이 급증해 1989년까지 여러 대학의 결연 관계가 성립된다. 자르브뤼켄과 라이프치히, 아헨과 드레스덴, 뮌헨과 라이프치히, 슈투트가르트와 카를 마르크스 대학 간 협력이 이루어졌고 그들은 서로 학자, 학생, 자료 등을 교환했다.

  대표 사례는 서독 자르브뤼켄 대학과 동독 라이프치히 대학의 협정이다. 협정내용에 따르면 두 대학은 의학에 중점을 두고 2년마다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또 공동의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시행했다. 상호 간 학술회의를 개최해 서로를 초대하고 문헌을 교환하기도 했다. 이 협정은 5년간 유효하다고 명시돼있다.

  양독은 문화협정을 정부 간 교류로 이뤄지는 국가 관계 영역에만 국한하지 않았다. 그 대신 문화협정은 관련 기구, 협회, 조직단뿐만 아니라 각 개인 간 자유로운 협력과 교류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이뤄졌다. 문화작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아도 성격상 협정의 목표에 상응하는 조치는 지원에서 제외하지 않은 것이다. 양독의 적극적인 지원은 문화협정의 직접적 접촉을 개시하고 통일로 가는 여러 계획을 발전시킬 가능성을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통일과 함께 찾아온 새로운 대학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이후 동독의 임시 과도정부에서 부분적으로 교육개혁을 시도했다. 본격적인 개혁은 통일정부가 수립된 후인 1990년부터 1995년에 걸쳐 이뤄졌다. 임홍배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단 부단장은 통일조약이 구동독 지역 대학의 자세한 구조개혁안을 명시하고 있다고 말한다. “1990년 8월 동서독 정부 사이에 체결된 통일조약에서 구동독 지역 대학의 존폐를 통일 후 새로 구성될 주정부에 맡긴다고 명시했어요. 아울러 1994년까지 구조개혁을 완료한다는 일정까지 제시했죠. 실제로는 1995년까지 구조개혁이 진행됐고 세부적인 보완조치는 1990년 말까지 계속됐어요.”

  대학 구조개혁의 원칙에 따라 구동독의 대학은 종합대학과 전문대학으로 이원화됐다. 구동독의 국책사업에 맞춰 지나치게 세분화된 교과과정을 통합해 대학 본연의 보편적 교육을 시행하도록 했다. 특히 공업기술전문대학의 통합은 통일 당시 경제적 측면에서 뒤처지던 구동독의 낡은 산업구조 재편과 연관돼 있었다. 또한 임홍배 부단장은 국책사업 수행을 담당하던 특수전문대학이 통일과 함께 존재의 당위성을 잃어 폐지됐다고 설명한다. “과거 체제 유지 기능을 하던 당정치대학, 국방대학, 경찰대학 등의 국책전문대학이 폐지되고 직능 중심의 행정전문대학을 신설했어요.”

  더불어 구동독의 이데올로기적 성향이 강한 분야의 교원이 대거 퇴출됐다. 특히 정치경제학, 법학 등 과거 동독체제의 이념적 재생산에 핵심역할을 했던 학문 분야에서는 약 90% 이상 퇴출됐다. 구동독 지역 대학의 교원 변화는 2000년대까지도 계속돼 구동독 시절 재직하던 교원의 약 60%가 퇴출된 것으로 추산된다.

  1994년까지 구동독 지역 대학은 신규 교원을 임용해 과거의 교원 수를 회복했다. 그러나 임홍배 부단장은 새로운 교원 대부분이 구서독 지역 출신으로 충원됐다는 비판이 있었다고 밝힌다. “1995년도 통계수치를 보면 종합대학과 전문대학에서 구서독 출신 교원의 비율이 약 40% 이상을 차지하고 예술대학에서도 약 22%를 차지하고 있어요. 종합대학의 경우 교원의 약 41%가 퇴출됐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새로 충원된 교원의 약 90% 이상이 구서독 출신이라 추정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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