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지 않을 자유를 외치다
  • 홍희지 기자
  • 승인 2018.11.26 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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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밈’으로부터의 해방

일러스트 윤국화 학생
일러스트 윤국화 학생

 

아름다운 여성이 아닌
‘나’로 살아가기

목과 귀가 시원하게 드러나는 짧은 머리와 투블럭 머리, 맨 얼굴에 통 넓은 바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여성에게서 보기 힘들었던 복장을 요즘에는 길거리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한 여대 총학생회 선거 포스터에서는 짧은 머리를 한 두 후보자가 당당한 자세로 앞을 바라보고 있다. SNS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짧게 자른 머리카락, 부서진 화장품 인증샷을 올리며 ‘탈코르셋’을 인증한다. 탈코르셋은 이제 개인적 차원을 넘어 사회적 흐름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탈코르셋의 배경과 원인,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시대 흐름 속에서
  1968년 미국에서는 미스 아메리카 반대 시위가 일어났다. 우리나라 탈코르셋 운동과 비슷한 ‘프리덤 트래쉬 캔 (freedom trash can)’ 시위에서는 여성들이 쓰레기통에 화장품과 하이힐, 브래지어 등을 버리며 여성에게 아름다움을 강요하는 행태를 비판했다. 이나영 교수(사회학과)는 탈코르셋이 페미니즘 운동의 흐름 속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한다.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존재와 사회적 위치에 대한 의문이 시작됐어요. 2015년에는 메갈리아가 등장했고, 몇 달 전에는 불꽃페미액션 상의탈의 운동이 일어났죠. 탈코르셋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어요.”


  탈코르셋 운동은 지난 2017년 급진 페미니스트를 중심으로 SNS를 통해 확산됐다. “과거 SNS에는 주로 완벽한 화장과 미소를 담은 셀카 사진이 올라왔어요. 그러나 소수 페미니스트들이 삭발한 머리와 펑퍼짐한 바지, 민낯 등 남들에게 예뻐 보이는 모습에서 탈피한 사진을 SNS에 올리며 탈코르셋이 본격화됐죠.” 윤지선 강사(가톨릭대 철학과)는 코르셋으로부터 해방된 모습이 SNS에 올라가며 탈코르셋 운동의 움직임을 이끌었다고 말한다.


예뻐야 여성인가요?
  최근 한 카페에서 ‘화장을 하지 않고 머리가 짧다는 이유’로 여성 아르바이트생을 해고했다. 점주는 아르바이트생에게 “탈코르셋을 한 것 같은데 여기는 매장이므로 용모가 단정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여성에게 요구되는 외모 기준에 화장과 같은 꾸밈 노동이 포함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사례다.


  윤지선 강사는 사회가 취업 요건으로 제시하는 용모단정이 ‘코르셋’과 같은 의미라고 지적한다. “서비스 직군에서 여성 종사자들에게 부과되는 유니폼, 화장, 헤어스타일 등의 기준은 매우 엄격해요. 여성이 경쟁력 있는 직장인이 된다는 것은 여성스러운 외모에 대한 규율에 복종하는 것을 의미하죠.”


  외적 용모에 대한 기준은 여성 개인에게 강박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윤지선 강사는 예뻐져야 한다는 강박이 여성을 억압한다고 지적한다. “뚱뚱하고 못생긴 여성의 사진이 커뮤니티에서 혐오의 대상이 되거나 여성을 외모로 서열지어 비하하고 조롱하는 일이 일상에서 일어나기도 해요. 이러한 문화는 ‘예쁘지 않으면 여성도 아니다’라는 사고를 팽배하게 만들고 여성에게 예뻐져야 한다는 강박을 만들어내죠.” 윤지선 강사는 이러한 강박 때문에 여성이 스스로를 혐오하고 외모로 인한 차별을 스스로의 탓으로 돌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자유로운 몸’을 향한 날갯짓
  탈코르셋은 여성이 외적인 부분에서 다양한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기반이 되기도 한다. “탈코르셋의 방향이 여성성의 대립적 상인 남성성을 표현할 필요는 없어요. 화장을 하든 안 하든, 머리를 기르든 자르든 여성이 다양한 모습을 선택할 수 있도록 사회적 조건이 만들어져야 하죠.” 정연보 교수(성공회대 사회학과)는 여성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사회적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윤지선 강사는 탈코르셋 운동이 여성으로 하여금 역량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든다고 말한다. “탈코르셋 운동은 가녀린 신체, 볼륨감있는 몸매 등 남성과 식별되는 여성 외형에서 여성의 역량으로 초점을 옮기죠.” 탈코르셋 운동은 여성이 사회에서 ‘예쁜 인형’이 아닌 다양한 역량을 지닌 인간이 되고자 하는 운동인 것이다.


  이나영 교수는 탈코르셋 운동이 가부장제에 순응하지 않겠다는 움직임이라고 설명했다. “남성이 원하는 여성상 안에서 인정받는 것을 거부한다는 것이죠. 제도적 평등을 넘어서 사회 문화를 뿌리째 바꾸려 한다는 점에서 혁명적이라 할 수 있어요.”


  젠더 감수성을 지닌 세대가 등장했고 이들은 여성에 대한 억압을 강화하는 꾸밈 노동을 문제 삼았다. 이나영 교수는 탈코르셋 운동이 앞으로도 꾸준히 지속될 것이라 전망했다. “탈코르셋을 한 여성은 존재가 가시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폭력의 대상이 되기도 해요. 그럼에도 위협을 감수하고 자유로움과 해방을 선택하는 것이죠. 과거에도 페미니즘 운동은 일시적일 것이라는 주장이 있었지만 스쿨 미투 등 다양한 페미니즘 운동이 이어지고 있어요. 사회가 변할 때까지 탈코르셋 운동 또한 계속될 거예요.”


벗어나겠다는 의지
  ‘가부장적 사회 속 아름다운 여성’이 되지 않겠다는 탈코르셋 운동은 가부장제에서 여성의 역할을 거부하겠다는 맥락에서 비연애와 비혼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비연애, 비혼은 기존 결혼제도의 가부장적 문제, 연애 관계에서 일상화된 젠더 권력에 문제를 제기하는 흐름이라고 봐요.” 정연보 교수는 비혼, 비연애의 흐름이 여성에 대한 대상화 탈피를 넘어 주체적으로 살아가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탈코르셋 운동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윤지선 강사는 비연애와 비혼은 기존의 사회 구조가 재생산되는 것을 막는 움직임이라고 본다. “여성이 더 이상 남성과의 연애와 결혼을 꿈꾸지 않고 부계 혈통의 세대 재생산에 동원되는 것을 거부할 때 가부장제에는 거대한 균열이 생길 거예요. 여성이 외모가 아닌 스스로의 다양한 역량에 몰두할 때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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