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아 색다른 체험
  • 김준성
  • 승인 2018.11.05 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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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 카페 체험기

본인이 유행에 뒤처지는 것 같나요? 수업 들으랴, 아르바이트하랴 너무 바빠 무엇이 유행하는지 잘 모르겠다고요? 그럼 ‘요즘 것들’을 주목해주시죠. ‘요즘 것들’이 아는 '요즘 것들'을 소개해드립니다. 요즘 것들만 알아도 당신은 유행 선도자! 이번주 주인공은 바로 ‘이색 카페’입니다. 최근 들어 다양하고 색다른 컨셉의 이색 카페가 등장해 인기를 끌고 있는데요. 대표적인 이색 카페 '암흑 카페'를 다녀왔습니다. 암흑 속에서 음식을 먹고 게임도 하고 진솔한 대화도 나눌 수 있었죠. 이색 카페에서 들려주는 이색적인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요즘 것들'을 주목해주세요!

 

노벨문학상 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는 운전하다가 신호등 앞에서 갑자기 눈이 멀게 되는 한 운전자의 일화로 시작된다. 소설은 이후 사회 구성원 전체가 하얗게 눈이 멀게 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이처럼 갑자기 시력을 잃는다면 어떻게 될까? 지금부터 사방이 어둠이었던 이색 카페 ‘눈탱이 감탱이’에서 경험한 암흑 체험기를 들려주고자 한다.

  암흑을 마주하는 자세

  카페에 도착하니 어둡지만 은은한 조명과 함께 펼쳐진 복도가 눈에 띈다. 실내는 아늑하고 차분한 느낌이 든다. 우측 벽면에는 무한도전 멤버 박명수와 정형돈 씨 사인을 비롯한 연예인 사진이 붙어 있다. 카운터에 서 있는 카페 직원이 말을 건넨다. “저희 카페는 방송 섭외도 많이 오는 편이에요. <무한도전>을 비롯해 <최고의 사랑>, <백년손님>에서도 다녀갔죠.” 

  메뉴판에 있는 여러 코스 중 ‘다보 세트’를 고른다. 다보 세트는 간단한 다과와 함께 보드게임을 즐길 수 있는 코스다. 이밖에도 암흑 속에서 탁구를 하고 마사지를 받는 등 다양한 체험 코스가 마련돼 있으니 관심사에 맞게 고르면 된다.

  본격적인 암흑 체험을 시작하기에 앞서 간단한 설명을 듣고 나면 건네받은 바구니에 시계와 스마트폰을 맡겨야 한다. 체험 공간에서는 빛이 새어나가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입고 있던 겉옷을 옷장에 넣어두면 비로소 입장 준비가 끝이 난다. 

  곧 등장한 대표님이 어깨에 양손을 올리라고 지시한다. “갑자기 암흑으로 들어가면 어지러울 수 있으니 눈은 감는 게 좋을 거예요.” 수줍게 대표님 어깨 위에 손을 올린 채 장막을 통과해 천천히 암흑으로 들어간다.

  몇 차례 꺾어 들어가자 암흑 속 대화가 펼쳐질 방에 도착한다. “오른손 저한테 주세요.” 대표님은 허공에 뻗은 손을 잡아 의자 위치를 확인시켜준다. “이쪽이 의자고 그 앞은 테이블입니다. 이제 착석하세요.” 친구와 마주 보며 앉는다. 대표님은 이후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벨과 호출 벨의 위치를 알려준다. 벨 옆에는 점자책이 세워져 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점자를 더듬어보니 비로소 암흑카페에 들어온 사실을 체감할 수 있다. “이런 곳은 애인이랑 오는 건데.” 친구가 적막을 깨며 말끝을 흐리는 순간 직원이 앞서 주문한 음료를 갖고 온다. 목이 메어올 뻔했는데 이것 참 기가 막힌 타이밍이다.

  보이지 않는 게임은 지금부터

  직원이 함께 가져온 게임 바구니에서 ‘악어 룰렛’을 꺼낸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악어 이빨을 하나씩 누르다 친구와 뜻하지 않은 스킨십을 하게 됐다. “으악!” 너나 할 것 없이 외마디 비명을 지른다. 비로소 2, 30대 연인들이 이곳을 주로 찾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어느 이빨이 함정인지 모른 채 게임에 임하다 보면 어느새 극한의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함께 들리는 심장 박동 소리는 행여 악어 입이 손을 삼킬까 조마조마한 마음을 대변해준다.

  이제 몸풀기는 끝났다. 본격적인 게임을 시작하기 전, 준비된 젤리와 초콜릿, 쌀 과자를 하나씩 까서 먹는다. 시각이 제한된 만큼 미각에 더 집중하게 된다. 마치 잠들어 있던 혀의 말초신경이 하나씩 깨어나는 느낌이다. 초콜릿이 입안에 녹아들면서 점점 진해지는 달콤함은 단연 기대 이상이다. 당도 충전됐겠다, 호출 벨을 누른다. “다음 게임 해볼 수 있을까요?” 

  직원은 곧 오목 게임과 젠가를 가져온다. 우리가 흔히 아는 그 오목이지만, 암흑에서는 바둑돌 색깔을 구분할 수 없으니 오로지 서로 다른 촉감에만 의존해 돌을 구분해야 한다. 판이 시작된 뒤 세 번째 차례를 맞은 친구가 오돌토돌한 돌을 올려놓으며 공격을 시도한다. 이를 막고자 판을 더듬어 보는데 뭔가 느낌이 이상하다. 친구가 올려놓은 세 번째 돌의 위치는 오목판 가장자리 바로 옆 칸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양쪽에 수비할 필요가 없어 결정적인 승부수가 주어진 것이다. 그제야 상황을 인지한 친구가 절규하듯 외친다. “으악!” 모든 것은 첫수를 판의 정 가운데 위에 두지 못해 초래된 결과다. 오목을 통해 시각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이어지는 젠가야말로 암흑카페 하이라이트다. 암흑 속에서는 평소와 달리 상대방이 어느 조각을 빼는지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자칫 헤맬 수 있다. 찬찬히 손으로 더듬어 보면서 어느 층 조각이 빠져있는지 탐색해본다. 손에 땀이 난다. 친구가 조각을 비스듬히 빼면서 세워진 탑의 방향을 돌려놓는다. 말로만 듣던 고급 기술 ‘돌려 빼기’다. 손의 땀은 식을 줄을 모른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라 했다. 친구는 결국 자기 꾀에 빠져 스스로 탑을 무너뜨리고 만다. ‘와르르르!’ 여느 때보다도 무너지는 소리가 크게 느껴져 화들짝 놀랐다. 시각을 제외한 감각에 신경을 기울이는 경험은 매우 신선하게 다가온다.

  시간 확인 벨을 눌러본다. “오후 일곱 시 오 분입니다.” 어느덧 체험 종료까지 10분밖에 남지 않았다. 체험 시간이 종료된 이후부터는 10분당 추가 비용을 지급해야 하므로 서둘러 남은 활동을 진행한다. 마지막으로 서로의 진심을 전할 수 있는 비밀 편지를 작성한다. 특수 볼펜으로 편지를 쓴 뒤 볼펜 뚜껑에 달린 불빛을 비춰보면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친구와 서로 덕담을 써주기로 한다. 진지하게 글을 적어보려는 찰나 앞이 보이지 않으니 글씨가 삐뚤빼뚤하게 적힌다며 친구가 투덜댄다. 그러나 체험을 마치고 나와 주고받은 편지 속 진심만큼은 제대로 다가왔다.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글 쓰는 게 쉽지 않은 만큼 진심은 배가 되어 전해진다. 사진은 특수 볼펜으로 쓴 글을 불빛으로 비추는 모습.

  이색 카페 그 이상

  암흑 체험을 마친 후 밝은 곳에서 다시 만난 대표님은 후천적 시각장애인으로 살면서 겪은 불편함을 바탕으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자 해당 카페를 만들었다고 전했다. “구청, 주민센터 등에서 시각장애인이라고 말해도 일반인 대하듯 안내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이 책으로만 이뤄져서는 안 되겠다고 느꼈죠.” 이후 그는 프랑스에 블라인드 레스토랑이 있다는 소식을 접한 뒤 우리나라 상황에 맞춰 카페를 만들었다.

  오늘날 카페는 음료만 마시는 일차원적인 공간에서 벗어나고 있다. 암흑 카페처럼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카페뿐 아니라 색다른 컨셉 혹은 체험 공간을 갖춘 다양한 이색 카페의 등장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준영 교수(상명대 경제금융학부)에 의하면 이러한 추세는 다채로운 실내 공간을 체험하고자 하는 소비자 욕구가 반영된 결과라고 설명한다. “카페는 사회적 공간이자 체험의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어요. 복합 체험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는 과도기인 거죠.” 


  눈탱이감탱이

  위치: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5길 26

  영업시간: 매일 11:30~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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