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세기를 마감하고 21세기를 내다보는 이 시점에서 학계에선 21세기를 위한
준비들로 분주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학술기획면에서는 '대안모색'이라는
화두에 초점을 맞춰 '생태학적 세계관으로의 인식전환', '지식인 문제', '과학기
술의 새로운 논의를 위하여' 3개의 기획을 마련했다. 다음호부터는 '지식인,
과연 이 새대 ㅣ지성을 이끌어 가는가'라는 주제로 지식인 문제를 4회 연재한
다. <편집자 주>

태양:여보게, 지난 50여년 동안 별탈없던 자네가 요즘 갑자기 왠 몸살을 그
렇게 심하게 앓는가?

지구:… 글쎄, 정말 답답해. 그 수가 갑작스레 너무 많이 늘어난 인간이란 동
물들이 그만….

달:그 인간들에 의해 나도 생채기를 입었지만, 가까운 이웃이 지금 급속도로
망가지는 것을 보니 너무나 걱정되네.

목성:3천만의 다양한 종(種)이 함께 사는 지구에서 유독 인간들만이 창궐하
는지.

화성:얼마전 지구에서 패스파인더라는 우주선이 나한테도 왔더라구. 이제
지구 인간들이 나까지 식민화하고 개발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지?


21세기를 준비하는 오늘날 우리들의 최대 화두는 생태학이다. 근대화, 산
업화, 과학기술화, 도시화의 꿀맛에 빠져있던 우리는 갑자기 우리 자신들이
자행한 생태파괴라는 끔찍한 죄에 놀라고 있다. 이미 때를 놓친 것일까. 주
기노드의 수레바퀴는 멈추지 못하는가. 아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변할
때이다. 진보와 발전과 개발이라는 근대 신화를 해체하고 인식의 녹색화, 무
의식의 생태화로의 대전환이 필요한 때이다.우리에게 이제 필요한 것은 정치
경제 혁명이 아니라 인류의 마지막 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생태혁명이다.

혁명은 점진적 개량이나 타협이 아니라 대대적인 탈바꿈이며 전복이다. 인간
성을 포함한 전지구적 생태계의 파괴에 대해 이제 우리는 많이 알게 되었다.
이제는 이론이나 지식이 아니라 실천의 문제이다.생태학적 인식론으로 지구
의 미래에 대한 대각성 운동을 벌이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변화에
대한 강력한 의지와 실천에 대한 치열한 투자가 없다면 우리의 모든 논의는
또다른 환상의 협주곡이 될 뿐이다. 이제 우리는 `생태지수(Ecological Quo
tient)' 개발과 생태학적 상상력을 통하여 대학의 지식인들을 포함하는 세계
사회의 각 구성원들이 펼쳐 온 이론과 비전을 실천과 변혁에 개입시키지 못
한다면 생태혁명은 결코 성취될 수 없을 것이다.생태학적 `지행합일(知行合
一)'을 위해 대학은 무엇을 할 것인가. 우선 인간과 환경에 대한 전학문적
접근을 시도해야 한다. 인간의 모든 사상과 학문이 우리 문명에 중차대한 환
경 위기에 봉착하여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
가 있겠는가. 21세기 이후에도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해 기존 학문 체계는
전면적으로 환경친화론적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문제는 `이미 언제나' 인간
중심적 인식론이다. 인문 과학은 이러한 인간 중심적인 사고 유형을 혁파하
고 인간과 자연의 상호관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인간을 포함한 삼라만
상은 `상생(相生)'이라는 이론의 틀거리를 만들어내야 한다. 만물은 상호의
존적이라는 명제 아래 심층생태학, 에코페미니즘의 출현의 경우처럼 녹색윤
리학, 환경심리학, 생태문학, 생태역사학 등이 새로운 학문 체계로 부상되어
야 한다. 사회과학도 이론 환경에 대한 새로운 이론과 실천의 영역을 구축해
야 한다. 지구와 자연과 환경이 배제된 인간, 사회, 제도를 연구하는 어떠한
사회과학도 온전한 것은 아니다.우리 시대의 모든 지적 담론의 화두인 성별
, 계급, 종족에 환경이 추가개입되어야 하며 녹색경제학, 사회생태학, 환경
정책학 등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효율 제일주의에 빠진 자본의 교
활하고 무자비한 증식 논리에 갇혀버린 인간의 무한한 욕망을 효과적으로 승
화시켜 `작은 것은 아름답다'를 노래 부르게 하는 것이 녹색경제학의 주요
과제이다.근대 과학기술은 모든 것을 분리하고 나누고 잘라 단편화시켰다.

자연과학 기술 분야에서는 지구, 자연, 산업, 인간을 네겹의 상호보완의 구
도 속에서 지속적으로 지탱가능한 역동적인 전지구적 체제를 유지시키는 방
법을 연구하는 학제적 기술 환경 인간 공학이 수립되어야 한다. 이것이 과학
기술의 무거운 윤리적 책무이다. 과학기술은 근대화 산업화가 가져다준 `빛
'에 의해 눈이 먼 우리의 `위험 사회'를 치유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천적
방책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지혜의 시대가 되어야 하는 21세기를 위해
생태학적 상상력이 화급하게 전학문 영역에서 교육되어야 한다. 상상력은 우
리의 인식과 마음의 밭을 새로 갈아 엎어 반생태 근대 문명을 쇄신, 혁파,
광정하여 대안 문화를 창출하는 밑거름이다.이제 우리는 새로운 유토피아를
꿈꾸고 있는 것일까. 유토피아는 단순히 허황된 미래학이 아니라 우리의 현
재 과업과 의무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실천윤리학으로서의 문화정치학이다
. 여기에 `생태적 인간'(home ecologicus)을 위한 6개항의 선언문을 띄운다
.인간이란 동물은 지구에 존재하는 삼라만상 중의 한 종(種)에 불과하다. 패
권적 인간 중심주의를 벗어나 생물종의 다양성을 지키는 것은 인간의 전지구
적 윤리학이다. 지구는 삼라만상이 상호의존하는 생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유일한 삶인 지구에는 공기, 물, 땅 기타 가용 자원이 한정되어 있으
며, 그 자원은 인간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자원의 과용은 다음 세대의 것을
미리 훔치는 행위이다.경제 효율 제일주의와 과학 기술 중심 사상은 인간에
게 편리함과 즐거움을 가져다 준 것도 사실이지만 동시에 많은 고통과 재앙
을 가져다 준 판도라의 상자이다. 인간은 하늘에 구멍을 내고 열대림을 파괴
하고 바다와 강을 더럽히고 다른 종들을 멸종시키고 있다.`지금 여기'를 지
탱가능한 세계로 만들기 위한 희망의 문화정치학과 실천 전략을 위해 생태철
학, 환경과학, 경제정책, 과학기술 등이 모두 학제적인 협업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이러한 인간들의 공동 노력으로 생명공동체의 미래를 위한 전지구적
거대 이론을 창출해야 한다.전지구적 생태 위기에서 우리의 마지막 선택은
생태적 인간으로의 대변신이다. 인간은 무책임한 종말론적 비관론에 빠지지
말고 지금까지의 실패와 과오에서 새로운 미래학을 수립하려는 `비극적 환희
'를 가져야 한다.생태학적 상상력의 요체는 `의미있는 타자'(자연, 동물, 식
물, 다른 인간들)에 대한 사랑이다. 사랑은 타자를 강제로 지배하거나 착취
하지 않고 다만 상호 교환하고 활성화시킨다. 사랑은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창조하는 위대한 힘이다. 생태학적 혁명가인 `생태적 인간'의 궁극적인 목표
는 따라서 생태학적 상상력의 발현이다.눈동자를 들어 바라보자. 힘차게 하
늘을 날아오르는 종달새를….귀바퀴를 땅에 갖다 대고 들어보자. 뿌리가 솟
아오르는 미묘한 소리를….손바닥을 벌려 만져보자. 꽃과 나무를, 다람쥐와
토끼를….콧구멍을 열고 맡아보자. 달구지 지나간 길위, 소똥구리 냄새를…
.혓바닥을 내밀고 맛보자. 상큼한 아지랑이, 봄바람을….

정정호 <문과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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