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지 아이스하키 국가대표(체육교육과 13학번)·이연정 아이스하키 국가대표(체육교육과 14학번)
  • 이나원 기자
  • 승인 2018.05.14 07: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빙판 위의 작은 통일 이야기

‘올림픽=승부의 세계’라는 명제는 깨진 지 오래다. 올림픽은 단지 승리만이 아니라 스포츠를 매개로 평화와 열정을 보여주는 축제의 장이다. 흰 눈과 빙판 사이로 별들의 향연이 펼쳐졌던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은 그 무엇보다 빛나는 올림픽 서사를 만들어냈다. 단일팀 결성 초반엔 수많은 논란과 반대가 일었지만 ‘우리는 하나다’를 외치던 그들의 함성에 감동에 젖은 이들이 적지 않다. 그들의 호흡과 땀방울은 차가운 빙판 위에 ‘하나 된 열정’을 수놓았다. 승리보다 뜨겁고 가치 있는 존재를 보여주며 전 세계의 가슴을 울린 코리아팀, 이들을 기억하라.

조수지 아이스하키 국가대표(좌측·체육교육과 13학번)와 이연정 아이스하키 국가대표(우측·체육교육과 14학번).
조수지 아이스하키 국가대표(좌측·체육교육과 13학번)와 이연정 아이스하키 국가대표(우측·체육교육과 14학번).

함께 환호하고 눈물 흘린
그때를 기억하며
다시 만날 순간을 기약한다

열악한 환경 속
끈끈해진
빙판 위 청춘들

판문점 선언 이후 아시안게임 공동입장과 단일팀 구성 논의 등 스포츠 분야에서도 남북 교류의 물꼬가 트였다. 이러한 분위기를 끌어낸 남북 스포츠 교류의 시작은 ‘평화올림픽’이란 닉네임이 붙은 평창올림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중에도 올림픽 사상 최초로 단일팀을 결성한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은 역사적인 순간이자 평화가 이겼다는 평가를 받으며 평화올림픽의 주춧돌 역할을 해냈다. 평창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조수지 선수(체육교육과 13학번)와 이연정 선수(체육교육과 14학번)를 만났다.

  -평창올림픽 영웅들을 만나 영광이다. 폐막한 지 두 달이 흘렀는데 올림픽을 마친 소감이 어떤가.
  조수지: “평생 다시 하지 못할 경험을 했고 마치 꿈만 같은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4년 동안 준비했는데 훅 지나간 느낌이네요. 짧고 빠르게, 그리고 특별하게요.”
  이연정: “한국에서 열린 올림픽에 출전했다는 게 영광이었죠.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기회잖아요. 정말 행복했고 북한 선수와 함께한 것도 특별했어요. 올림픽이 끝날 땐 실감이 안 났어요. 폐막 한 달이 지났을 때까지도 올림픽 현장에 있는 기분이었고 함께한 북한 선수들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죠.”

  -올림픽 개막이 한 달도 채 안 남은 상황에서 단일팀이 결성됐다. 당시 선수단 분위기는 어땠나.
  이연정: “반대가 무척 심했죠. 벤치에 들어가는 23명 엔트리에 북한 선수 3명이 무조건 포함돼야 했으니까요. 그만큼 한국 선수들이 경기에 못 뛴다는 이야기였죠. 그동안 올림픽만 바라보고 훈련해왔는데 말이에요. 저희 입장에선 분명 피해 보는 게 있으니까 처음엔 화가 나기도 했어요.”
  조수지: “짧은 시간을 남겨두고 단일팀을 결성한다는 게 당황스러웠어요. 하지만 저희가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잖아요. 감독님이든 선수단이든 주어진 상황 속에서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어떤 점이 가장 걱정됐나.
  조수지: “선수 간 호흡이 가장 걱정됐어요. 아이스하키는 조직력이 중요한 스포츠예요. 골리를 포함해 팀당 6명의 선수가 좁은 링크장에서 스케이트를 타면서 경기를 하죠. 경기 흐름이 빠르고 선수 로테이션도 많아요. 다섯 명씩 라인업을 구성해 이미 호흡을 맞춘 상태에서 누군가가 투입되면 힘든 부분이 있을 수밖에요.”

  -남북 선수가 점점 가까워지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북한 선수들과 어떻게 친해졌는지 궁금하다.
  이연정: “초반엔 훈련도 같이 안 하고 밥도 따로 먹었어요. 그러다 한 테이블에서 밥 먹고 한국 선수와 북한 선수를 반씩 나눠 섞어 훈련하면서부터 가까워졌어요.”
  조수지: “처음엔 잘 지낼 수 있을지 걱정이 많이 됐죠. 대화나 나눌까 싶었는데 막상 만나니 또래 친구들과 다름없었어요. 이렇게 친해지게 될 줄 몰랐죠.”

  -북한 선수들 생일파티도 부쩍 친해진 계기가 됐다고.
  이연정: “맞아요. 훈련 기간에 생일을 맞은 진옥 언니, 은경이 그리고 올림픽 기간에 생일을 맞은 향미까지 총 세 번의 생일파티를 했어요. 저희가 노래를 불러주기도 하고 나중엔 북한 생일 축하 노래를 배워서 불러주기도 했어요. 그때를 계기로 많이 친해졌죠.”

  -북한 선수들과는 어떤 얘기를 했나.
  조수지: “‘오늘 밥 맛있다, 이따가 뭐할 거냐, 오늘 체력훈련 한다는데 힘들 것 같다…’처럼 그냥 만나면 할법한 얘기들이었어요. 선수촌에서 냉면이 나오면 ‘평양냉면이 그렇게 맛있다면서?’ 하고 묻기도 하고, 궁금한 게 생기면 ‘북한에서는 이런 걸 뭐라고 해?’ 같은 질문을 던지기도 했죠.”

  -불편한 건 없었나.
  이연정: “처음엔 말이 잘 안 통했어요. 북한 선수들은 외래어를 거의 안 쓰니까 무조건 말을 풀어서 전달해야 하거든요. ‘슛 쏜다’를 ‘쳐넣기’라고 하고 ‘패스’를 ‘연락하라’고 해요. 방언이 있어서 ‘밥 먹었어?’도 ‘밥 먹언?’, ‘잘 쉬었어?’는 ‘잘 쉬언?’ 이런 식이에요. 북한 선수들 말투에 적응하느라 시간 꽤나 걸렸어요.”

  -서로 못 알아듣는 경우가 생기면 어떻게 소통했나.
  이연정: “북한 선수들이 저희 말을 알아듣지 못하면 ‘있잖아~’ 하면서 막 설명을 했어요. 혼자 설명을 하다가 그래도 못 알아들으면 여러 명이 힘을 합쳐 풀어서 이야기를 전달해요. 북한 선수들도 저희 말을 듣고 서로 상의하면서 해석했죠. 눈치로 맞추기도 하고요.”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올림픽에 출전하기까지의 길은 험난했다. 올림픽 무대는 세계 최상위 여덟 팀만 설 수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여자 아이스하키팀의 랭킹은 22위. 올림픽 무대와는 거리가 있다. 이에 국제아이스하키연맹은 자동출전의 조건으로 ‘경기력 향상’을 걸었고 대한아이스하키협회는 ‘세라 머리’ 감독과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며 전력을 한층 끌어올렸다. 훈련 기간도 기존 8-9개월에서 11개월로 늘었다. 부단한 노력을 펼친 한국 아이스하키는 끝내 올림픽 무대를 밟게 됐다. 하지만 세계의 벽은 역시나 높았다. 남북이 힘을 합친 코리아팀은 5전 전패의 결과를 기록했다.

  -경기 결과가 아쉬웠겠다.
  이연정: “아쉬웠죠. 랭킹만 봤을 땐 차이가 크게 나지만 우리 선수들이 충분히 따라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긴장을 해서 들어가지 않을 골도 내어준 게 많았던 것 같아요. 그래도 단일팀 선수들 모두 끝까지 열심히 했고 올림픽을 잘 마무리한 것 같아요.”
  조수지: “그동안 열심히 해서 대등한 경기를 펼친 건 사실이지만 실력 차이가 분명 존재했다고 생각해요. 체력이나 기술적인 면에서 개선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그래도 세계 무대를 밟으며 한층 성장하지 않았나.
  조수지: “맞아요. 세계 최상위권 팀과 만나면서 확실히 경기 운영이나 조직력 면에서 강해졌어요.”

  -일본전에서 ‘랜디 그리핀’ 선수가 올림픽 첫 골을 만들어냈다. 단일팀이 만들어낸 첫 골에 모든 국민이 감동했다.
  이연정: “제 골은 아니었지만 정말 기뻤죠. 이러다 이길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조수지: “일본 여자 아이스하키 랭킹이 되게 높아요. 올림픽에도 자력으로 출전했죠. 분명 쉬운 상대는 아니지만 같은 아시아권 국가로서 해볼 만 하다고 생각했어요. 현실적인 목표가 1승이었는데 그걸 일본을 상대로 이루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첫 골이 들어가면서 흐름이 저희 쪽으로 넘어왔는데 아쉽게도 결과는 패배였어요.”

  -한일전이 끝난 뒤 남북 선수 모두가 아쉬워하더라.
  조수지: “그럼요. 한일전이 끝나고 북한 선수들도 ‘내가 더 잘했으면 됐는데 미안하다’며 많이 울었어요. 평소엔 말씀을 아끼던 북한 감독님도 한일전을 앞둔 순간만큼은 다르셨어요. ‘일본만큼은 꼭 이겨야 하지 않겠냐’며 한마디 하셨죠. 신기했어요.”

  -태극마크를 달고 뛸 때랑 한반도기를 달고 뛸 때 느낌이 다를 것 같다.
  조수지: “묘했어요. 대한민국 대표로서 대한민국 유니폼을 입고, 애국가를 듣고 태극기를 바라보며 올림픽 무대에서 뛰고 싶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는데 어쩌다 보니 단일팀으로 출전하게 된 거잖아요. 한반도기 유니폼을 입고, 아리랑을 듣고, 북한 응원단의 응원 소리를 들으면서요. 특별한 상황 속에서 특별한 경기를 했죠. 옆에 우리 팀 동료와 북한 선수가 함께 있다는 게 감동적이었어요. 매시간이 소중했죠.”
  이연정: “애국가가 나올 때나 아리랑이 나올 때나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는 생각은 마찬가지였어요.(웃음)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스웨덴전밖에 못 뛴 게 너무 아쉽긴 했지만 북한 선수들과 함께 한 올림픽이잖아요. 행복했고 열심히 뛰는 북한 선수들의 자세에서 배울 점이 많았어요. 진천 선수촌에 오자마자 죽기 살기로 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한마음 한 팀이라는 게 느껴졌죠.”

  -감동적이다. 북한 선수들과 헤어질 때 감정이 남달랐겠다.
  조수지: “함께 하면서 저희도 모르게 정이 많이 들었어요. 다른 나라 선수들이라면 나중에 보자고 하거나 SNS를 통해서라도 연락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이 친구들은 언제 볼지 모르고 아예 못 볼 수도 있잖아요. 많이 슬펐죠.”
  이연정: “헤어지기 전날 북한 선수들과 함께하는 행사가 있었는데 그때부터 많이 울었어요. 지나갈 때 마주치면 손 꼭 잡고 ‘잘 있었냐’고 물어볼 정도로 아주 친해졌거든요. 마지막엔 같이 찍은 사진을 인화해 선물로 주기도 했고요. 잊지 말자고, 보고 싶을 거라고 편지도 썼어요.”

  -앞으로 남북 아이스하키 교류가 이어지면 어떨 것 같은지.
  이연정: “좋은 효과를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나라는 여자 아이스하키 프로팀이 하나도 없는 반면 북한은 도마다 프로팀이 있고 링크장도 한국보다 많대요. 저희는 전지훈련을 나가야만 4-5경기씩 뛸 수 있는데 북한은 국내 경기만으로도 매년 4-50경기씩 뛴다고 하더라고요. 교류한다면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단일팀의 한 달, 아름다운 기록조수지 선수(사진 가운데)와 이연정 선수(우측에서 두 번째)가 경포해변에서 단일팀 선수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선수들이 자랑스럽다"는 세라 머리 감독의 말처럼 단일팀은 평창올림픽의 자랑이자 평화의 상징이 됐다. 사진 제공 이연정 선수
단일팀의 한 달, 아름다운 기록 조수지 선수(사진 가운데)와 이연정 선수(우측에서 두 번째)가 경포해변에서 단일팀 선수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선수들이 자랑스럽다"는 세라 머리 감독의 말처럼 단일팀은 평창올림픽의 자랑이자 평화의 상징이 됐다. 사진 제공 이연정 선수

  행운은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된다. 이들이 아이스하키를 만난 ‘행운’은 초등학생 시절 작은 호기심에서였다. 가족과 스케이트를 타러 집 근처 안양아이스링크에 들른 이연정 선수는 안양 한라 남자 아이스하키단의 경기를 관람하다 아이스하키에 빠져들었다. ‘재밌을 것 같다’는 호기심에 그도 아이스하키에 입문했다. 조수지 선수 또한 집 근처 목동아이스링크에서 운동을 하고 싶은 호기심에 아이스하키를 시작했다.

  -언제부터 국가대표에 합류하게 됐나.
  이연정: “중학교 1학년으로 올라갈 때 코치님이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에서 운동해볼 것을 권유하셨어요. 그때가 아이스하키를 시작한 지 6개월밖에 안 됐을 때였죠. 그때부터 대표팀에서 연습을 시작하다가 지난 2011년 아스타나-알마티 동계 아시안게임에서 처음 시합을 뛰었어요.”
  조수지: “고등학교 3학년 때 국가대표 트라이아웃에 참가해 대표팀에 들어오게 됐어요. 사실 처음부터 운동선수를 꿈꾼 건 아니고 이것저것 꿈이 많았어요. 그렇지만 무엇보다 활동적인 걸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고 공부보단 운동이 재밌어서 선수가 됐죠. 즐기다 보니 좋은 기회가 온 것 같네요.”

  -두 선수가 동고동락하는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어떤 팀인가.
  조수지: “365일 중 300일 정도를 함께하는 팀이에요. 우리나라는 대표팀이 유일한 여자 아이스하키팀이거든요. 프로팀이 있는 종목은 각자 팀에서 연습하다가 국가대표 소집 기간에만 모이지만 저희는 대표팀에서 거의 매일 봐요. 그래서 서로 끈끈해요.
게다가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열정을 가진 팀이에요. 사실 우리나라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들이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은 좋지 않아요. 아이스하키를 할 수 있는 대학팀도, 프로팀도 없으니까요. 이 일을 한다고 넉넉한 수당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요. 각자 자기 생활을 하면서 아이스하키를 하는 사람들이 모인 팀이에요. 그러니 하키를 진짜 좋아하는 사람만 모일 수밖에요.”

  -국가대표가 머무는 선수촌은 어떤지 궁금하다.
  조수지: “지난해 가을 태릉에 있던 선수촌이 진천으로 이전했어요. 진천선수촌은 태릉에 있던 선수촌이랑 비교가 안 되게 좋아요. 규모도 크고 장비도 최첨단이에요. 무엇보다 진천으로 이전하면서 아이스하키 전용 링크장이 생겼어요. 태릉에선 쇼트트랙, 피겨스케이팅 대표팀과 링크장을 공유하느라 아침 일찍이나 늦은 저녁에야 운동할 수 있었어요. 전용 링크장에선 저희가 원할 때 훈련할 수 있어서 좋아요.”
  이연정: “밥이 맛있어요. 점심으로 최고급 스테이크, 랍스타가 나오는 정도?(웃음) 밥이 너무 잘 나와서 훈련 기간이면 다들 다이어트해야 한다고 해요.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진천에 할 게 너무 없다는 거예요. 카페랑 편의점에 가려면 차 타고 나가야 하고 대중교통이 없어서 콜택시를 불러야 해요. 태릉선수촌 옆엔 대학가가 있어서 괜찮았는데 진천은 밥 먹고 운동하고 잠만 잘 수 있어요.(웃음)”

  이연정 선수와 조수지 선수는 국가대표이기 전에 각각 체육교육과 3학년, 4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이다. 어린 나이부터 대한민국을 대표해 당당히 세계무대에 서기까지 그들의 인생에도 아쉬움을 삼켜야만 했던 순간이 많았다. 시합 준비에 몰두하기 위해 잠시 학업을 접어야 하기도 했고 운동 자체가 힘에 부칠 때도 있었다. 엠티 한 번 제대로 못 가고 대학생으로서의 추억을 포기해야 했으며 때로는 운동선수에게 치명적인 부상 탓에 잠시 빙판과 멀어질 때도 있었다.

  -선수촌 생활과 학업을 병행하기 힘들 것 같다.
  조수지: “오전 수업만 듣고 바로 운동하러 가요. 출결이 엄격해서 빠질 수가 없죠. 감독님, 코치님께 양해를 구해서 오전 운동은 빠지고 학교에 갔다 바로 선수촌으로 향해요. 오후, 저녁 훈련에 참여하죠. 오후 수업은 잡으면 안 돼요. 그래도 선수촌 생활을 병행하고 시합에 나가다 보니 학교 나올 시간이 부족해요. 성적도 안 나오고요. 그래서 2년간 휴학을 했죠.”

  -이연정 선수는 무릎 부상이 있었다고 들었다.
  이연정: “1학년 수업시간 때 허들을 넘다가 십자인대가 끊어져서 수술했어요. 수술하고 1년 동안 시합을 못 뛰었죠.”

  -요즘은 많이 나아졌나.
  이연정: “올림픽을 준비하는 동안 훈련 강도가 심해지면서 다시 무릎에 무리가 갔어요. 올림픽 때까진 어떻게든 버텼죠. 근데 병원에 가니 다시 수술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한편 조수지 선수는 지난달 이탈리아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3부리그에 출전해 3부리그 승격 1년 만에 준우승을 이뤄냈다고.
  조수지: “오히려 아쉬웠어요. 올림픽에서 세계랭킹 1위부터 8위권 내 팀과 시합을 치른 팀으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무조건 우승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는데 아쉽게 놓치고 말았죠.”

  -중요 대회가 다 끝나고 여유가 생겼을 텐데 뭐 하고 지내나.
  조수지: “다른 선수들은 놀러 가는데 학생 신분이니 세계선수권 대회가 끝나자마자 바로 학교에 가서 중간고사를 치렀죠. 지금은 교생실습 기간이고요.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설레기도 하면서 힘드네요.”
  이연정: “운동 때문에 그동안 못 해봤던 경험을 하고 있어요. 원래 기타를 배우고 싶었는데 어렵다고 해서 우쿨렐레를 배우고 있죠. 목동아이스링크랑 수원아이스링크에서 아이스하키 강습 아르바이트도 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선수로서 꿈꾸는 앞날이 궁금하다.
  조수지: “운동선수로서 꿈의 무대인 올림픽을 마쳤지만 이게 끝이 아니라 이걸 시작으로 더 많은 노력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요. 아이스하키는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것 같네요. 그만큼 어려운 종목이고 더 많이 배워서 좋은 선수가 돼야죠. 당장의 목표는 빨리 졸업하자는 것?(웃음)”
  이연정: “선수 생활은 아직 정해진 바가 없어요. 하지만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로서 후배 선수들을 도와주고 싶어요.”

  당신에게 중앙대란?

  조수지 “가깝고도 먼 존재 아닐까요? 열심히 다닌다고 다녔는데 그리 열심히 다니진 못한 것 같네요. 동기들이랑 제대로 된 추억을 못 쌓은 것도 아쉽고요. 그럼에도 저의 하나뿐인 대학 생활을 하게 해준 학교이고 아직도 신입생 때의 설렘이 남아 있어요.”

  이연정 “가장 어려운 질문이네요.(웃음) 이것저것 경험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인 것 같아요. 평소 배워보고 싶었던 과목도 배울 수 있고 선배에게 궁금한 것도 물어볼 수 있으니까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