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 전에 사람있고 제도 위에 인권있다
  • 박수현 기자
  • 승인 2018.05.07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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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지 못한 첫걸음

완주까지 하려면

“너희들과 얘기를 하면 내 머리가 굉장히 네모 같다는 생각이 들어. 자유롭지 못하고 여기 네모에 갇혀 있는 느낌.” 코미디언 박미선은 젠더 토크쇼 ‘까칠남녀’에서 성 소수자 패널에게 위와 같은 말을 전했다. 다양성을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기성세대가 느끼는 고민이 담겨있다. 네모난 사고에 갇혀있는 사회가 트랜스젠더와 함께하기 위해선 어떤 부분이 개선돼야 할까. 전문가들과 함께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알아봤다.

  부담 없이 병원에 가려면

  국가에서 법적인 성별 정정을 위해 성전환 수술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당장 필요한 건 의료적인 뒷받침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성전환 수술은 비급여 항목에 해당한다. 정부에서 새로 내놓은 건강보험 정책 ‘문재인케어’에도 성전환 수술이 급여 항목에 들지는 확실하지 않다. 레인보우커넥션프로젝트연구팀 이혜민 연구원은 국가가 건강보험을 통해 성전환 수술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전환 수술을 하려면 20대 때 수천만 원이 드는 돈을 모아야 해요. 건강보험에서 성전환 수술 비용 지원을 보장해 본인 부담금을 줄여야 하죠.”

  김승섭 교수(고려대 보건과학대학)의 「한국 트랜스젠더 의료접근성에 대한 시론」에 따르면 세계 118개국 중 43개국은 가슴 제거·확장 수술, 고환제거 수술 등 어떤 방식으로든 공공의료체계에서 한 가지 이상의 성전환 수술 지원을 보장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은 공공영역의 의료보장제도를 통해 지역에 따라 트랜스젠더의 트랜지션 비용을 일부 지급한다. 65세 이상의 노인 대상 의료보장제도 ‘메디케어’는 호르몬 요법과 성전환 수술을 지원하며 성 소수자 인권단체에서는 트랜지션을 보장하는 보험사 정보를 제공한다. 뉴욕, 캘리포니아 등 9개 주에선 민간의료보험에서 트랜스젠더를 배제하지 못하도록 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비용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의료 서비스의 질에 대한 논의 또한 필요하다. 레인보우커넥션프로젝트연구팀 박주영 연구원은 「성 소수자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 해외논의 및 한국에서의 시사점」에서 의료서비스 전달과정과 인력 부분의 개선점을 제시했다. 그는 먼저 ‘성 소수자 친화적인 의료서비스’가 제공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낙인이 심각한 한국의 수준을 고려해 관련 정보와 지식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력 부분에선 의료인들이 트랜스젠더에 관한 정보와 지식을 충분히 인지하도록 인프라를 구축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성소수자가 사회적으로 겪는 차별적 현실을 이해하고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의료기관의 성소수자 친화성이 트랜스젠더의 의료접근성에 직결된다는 점에서 의료진의 인권 교육은 필수다.

  재량껏 하지 말고 제대로 해라

  트랜지션을 위한 의료적인 보장과 더불어 성전환수술을 성별 정정 조건에 넣는 것은 재논의가 필요하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박한희 변호사는 트랜스젠더의 인권을 존중하는 성별 정정기준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아르헨티나는 본인이 원하면 아무런 제한 없이 성별을 바꿀 수 있어요. 트랜스젠더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죠.”

  비온뒤무지개재단 이승현 이사도 성전환 수술을 성별 정정 요건으로 포함하는 건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라는 입장이다. “독일은 성별 정정에 의료적 요건을 넣는 것을 위헌이라고 결정했어요. 인권 수호 활동을 진행하는 국제기구 ‘유럽평의회’도 성별 정정에 외과적 치료를 요구해선 안 된다고 권고하죠.”

  또한 그는 대법원이 만든 가이드라인인 가족관계등록예규 「성전환자의 성별정정허가신청사건 등 사무처리지침」(사무처리지침)을 넘어선 법률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판사의 재량으로만 성별 정정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 개선돼야 해요. 판사의 자의적 판결은 예측 불가능하죠.” 충분한 논의를 통해 인권 감수성을 갖춘 법적인 제도의 마련이 트랜스젠더의 인권을 존중하는 데 필수과정이란 것이다.

  우리는 어디에나 있다

  박한희 변호사는 근본적으로 젠더 이분법적인 문화양식이 해체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젠더 이분법적인 교육을 받으며 자라와요. 남자애는 로봇을, 여자애는 인형을 좋아해야 한다는 것처럼요.” 그는 이러한 사회를 타파하기 위해선 인권 감수성을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주민등록번호, 남녀화장실 등 우리가 당연한 거로 여기는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억압이 아닐지 생각해보고 내가 가진 특권을 내려놓을 수도 있어야 해요.”

  이혜민 연구원은 미디어 측면에서 다양한 트랜스젠더를 노출하는 점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외국 드라마와 달리 한국 드라마에서는 성소수자가 제한적으로 표현돼요.” 박한희 변호사 또한 트랜스젠더를 고정된 이미지로 바라보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미디어는 트랜스 여성과 트랜스 남성을 특정 규범 속에서만 표현해요. 등장인물의 충격적인 과거 정도로 소비하기도 하죠. 트랜스젠더를 특별한 사람이 아닌 평범한 이웃으로 대했으면 좋겠어요.”

  이승현 이사는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성소수자 인식 개선의 첫걸음은 내 주변에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러분 주변에 트랜스젠더가 많지만, 이들은 드러내지 못할 뿐이에요.” 오늘도 성 소수자는 외친다. ‘우리는 어디에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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