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유기. 간단히 말하면 어떤 일을 해결하지 않고 방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조금 더 법률적으로 해석하면 공무원이 정당한 이유 없이 직무를 거부하거나 유기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다. 지난 4일에 열린 2018학년도 1학기 서울캠 전체학생대표자회의(전학대회)를 취재한 소감이다.

  선거시행세칙 개정을 끝내고 예산자치제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한 학생대표자가 손을 들었다. 이미 논의가 끝난 선거시행세칙에서 추가 조항을 넣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선거와 투표 과정에서 장애 학생이나 외국인 유학생에게도 차별 없는 선거를 만들기 위해 세칙을 개정하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학생대표자는 이를 무시하듯 자리를 떴다. 결국 의사정족수인 182명을 채우지 못해 전학대회가 중단됐다. 처음 참석 인원이 271명이었지만 회의 시작 3시간 만에 100명 가까이 자리를 뜬 셈이다.

  자리를 떠난 명수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들의 위치와 의결 안건이다. 그들은 학생대표자다. 출마할 때마다 ‘모든’ 학생을 위해 일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학생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겠다고, 대변하겠다고 약속했다. 의결 안건은 그런 그들을 믿은 학생들이 학생대표자를 향한 외침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을 믿었던 학생들을 버리고 자리를 떴다. 

  대표자는 정당한 이유 없이 직무를 거부·유기했으며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무시와 방치를 했다. 즉 직무유기다. 만약 직무유기가 아니라면 무엇인가. 당찬 포부를 외친 그들이 달라진 건가. 아니면 ‘모든’이란 의미에 학내 소수자는 포함되지 않았던가. 또한 남아있는 안건들은 학생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던 건가.

  결국 의사정족수를 채우기 위해 남아있던 학생대표자가 자리에 없는 학생대표자에게 전화를 거는 풍경도 보였다. 정말이지 웃어야 하는 건지 울어야 하는 건지 참 모르겠다. 그렇게 가까스로 모인 학생대표자들은 위태위태하게 안건을 의결했다. 중간중간 총학생회 측에서 제발 의결 안건이라도 해달라고 부탁할 정도였다. 학생대표자로서 생각을 하고 자리에 앉아 있는 건지 참 궁금했다.

  직무유기는 단지 중간에 회의를 떠난 학생대표자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전학대회에 참석하지 않은 학생대표자에게도 하는 말이다. 이들은 개인 일정, 갑작스러운 약속 등을 이유로 부득이하게 참석하지 못했다고 한다.

  미안하지만 그건 변명에 불과하다. 우선 전학대회가 어디에서 언제 열리는지 10일 전에 공지한다. 그것도 온·오프라인 모두. 또한 「총학생회 회칙」 제16조 6항에 따르면 전학대회 개의 1시가 전까지 대리인을 구할 수 있다. 학생대표자라면 마땅히 전학대회를 고려해 개인 일정을 짜고 정말 부득이하다면 대리인을 보내 학생들을 대변해야 한다.

  학생대표자는 영광도, 스펙도 아니다. 학생대표자라는 의무와 책임감 그리고 봉사 정신이 있어야 하는 막중한 자리다. 그럴 자신이 없다면 직무유기 대신 자리를 스스로 떠나는 게 맞다.

이찬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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