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글'뿐인 법
  • 이주리 기자
  • 승인 2017.12.04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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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제도의 현실

드러난 법의 허점
정책적 보완으로 메꿔야

 

 

‘연애를 글로 배웠어요.’ 이 문장은 연애에 대한 이론은 바삭하지만 실전에 적절하게 적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사용하는 말이다. 지금의 장애인 이동권과 관련된 법도 이와 다르지 않다. 법률은 장애인의 이동권을 단순히 ‘글’로만 기재하고 있을 뿐 정작 그를 제대로 시행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미비하다. 법률은 오랜 시간 동안 제·개정을 거쳐 왔지만 현실에 제대로 적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법으로만 만들어진 ‘이동권’을 현실에서 보장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지 전문가들과 살펴봤다.


  변했지만 해결하지 못했다
  장애인의 이동에 관한 법률이 처음 등장한 시기는 1981년이다. 「심신장애자복지법」 제13조는 ‘도로·공원·공공건물·교통시설·통신시설·기타 공중이 이용하는 시설을 설치하는 자는 심신장애자가 이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나 설비를 갖추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김명수 연구교수(홍익대 법학연구소)는 해당 법률이 장애인 이동권을 지키기 위한 법률로서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해당 법률에는 장애인의 이동을 보조할 수 있는 자세한 지침이나 규칙이 없어요. 단지 선언적인 내용에 불과하죠.”

  이후 1994년에 장애인 편의시설에 대한 세부지침인 「장애인 편의시설 및 설비의 설치기준에 관한 규칙」이 제정됐다. 이 규칙은 편의시설 설치대상과 그 기준을 명시함으로써 기존 법률에 구체성을 더했다. 1997년에는 「장애인·노인·임산부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장애인을 비롯한 교통약자의 ‘이동권’이 법적 권리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이는 장애인의 교통시설에 대한 접근성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정종화 교수(삼육대 사회복지학과)는 당시에도 장애인 이동권이 처한 현실은 여전히 어두웠다고 설명한다. “법은 법으로만 끝났어요. 예산, 세부 규정의 부재 등으로 인해 법의 실질적인 집행이 어려웠기 때문이죠.” 법이 통과된 이후에도 장애인들이 피부로 느낄 정도로 개선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나 2005년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교통약자법)이 제정되면서 상황은 조금 진전됐다. 저상버스 도입으로 장애인들이 시내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됐고 휠체어를 태울 수 있는 택시가 국내에 도입됐다. 그러나 김명수 연구교수는 교통약자법을 통해 대략적인 시설 및 기구는 확충됐지만 여전히 ‘이동권’은 유명무실하다고 지적했다. “이동권을 명시하고 있는 교통약자법 제3조는 교통약자도 모든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정하고 있어요. 하지만 정작 그를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는 않죠.”


  법과 현실 사이의 간극
  지난 30년간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많은 법이 제정돼왔다. “법률이나 계획의 틀은 체계적으로 마련돼 있어요. 하지만 현실 적용에는 아직도 문제가 있죠.” 권선진 교수(평택대 재활상담학과)는 이동권과 관련한 여러 법률이 만들어졌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법률이라는 형식적인 측면에 그칠 뿐, 이를 현실에 적용하면서 여러 한계에 부딪혔다.

  장애인의 이동권을 가장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는 교통약자법의 여러 조항은 의무 규정이나 준수 규정이 아닌 권고 사항에 그친다. 실제로 교통약자법에서 ‘할 수 있다.’ 등의 애매한 표현이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다. 정종화 교수는 장애인 이동권과 관련된 법에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여러 주체가 해당 법을 준수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권선진 교수는 법률 시행 미진함의 원인으로 재정 지원 부족을 꼽았다. “법률과 계획은 저상버스를 도입하라고 하죠. 하지만 민간업자의 입장에선 재정적인 뒷받침 없이 비싼 저상버스를 도입하기 어려워요.” 현재 대중교통 중 시내버스는 대부분이 민간 사업자에 의해 운영된다. 정부의 금전적인 도움없이 민간 사업자가 2억에 달하는 저상버스를 구매하고 이를 운영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동편의시설을 조사할 때 비장애인 중심으로, 양적인 측면만을 조사하는 것 역시 문제다. 국토교통부가 실시한 ‘2013 이동편의시설실태조사’에 따르면 버스차량, 철도차량, 항공기, 여객선 등 교통수단에 이동편의시설을 기준에 맞게 탑재한 교통수단은 약 72.4%에 달한다. 하지만 김명수 연구교수는 국토교통부가 제시한 수치가 실질적으론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다. “현재의 실태조사는 장애인의 관점에서 해당 시설을 얼마나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단순히 편의시설이 기준에 맞게 설치되어 있는지를 설치의 기준적합률을 조사하는 것에 그쳐요. 실제 장애인의 접근성과 이에 따른 이동권의 보장 정도를 조사하는 실태조사를 해야 하죠.” 덧붙여 그는 정부가 비장애인의 중심에서 편의시설을 고려하는 것이 아닌 장애인의 관점에서 조사를 진행하고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본권에 다가가기 위해서
  보다 구체적인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정종화 교수는 지방자치단체가 정부 정책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도록 유도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장애인 이동권을 위한 지방자치단체의 노력을 점수화해 인센티브 지급과 관련한 평가에서 지표로 반영해야 해요. 평가를 통해 정부가 성과보수를 준다면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 이동권을 위한 편의시설 마련에 적극적으로 앞장서겠죠.” 유인책을 통해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장애인 이동권 개선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전문가들은 정부의 각종 행정 기관 간의 연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명수 연구교수는 보건복지부뿐만 아니라 그 이외의 기관과도 원활한 업무 협조를 이뤄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저상버스의 도입, 도로 환경 조성 등을 위한 협의엔보건복지부뿐만 아니라 건설교통부, 행정자치부 등 다양한 기관의 논의가 필요하다. “그동안 관련 기관의 협조가 전제되지 않은 보건복지부 중심의 장애인 이동권 개선 계획만 수립되어 왔어요. 그러다 보니 제대로 된 성과를 거두기는 어려웠죠. 기관 간의 원활한 협조를 위해 새로운 기구를 설치해야 해요.”

  김명수 연구교수는 장애인의 이동권이 단순히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한 권리가 아니라고 말한다. “장애인에게 이동의 제약은 교육권, 노동권, 문화 향유권 등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창살이에요. 이동이 가능해야 배움터로 갈 수 있고 직장 또한 다닐 수 있죠.” 이처럼 장애인 이동권 개선은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이 받는 부당한 차별의 악순환을 끊는 결정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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