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블록(Lego block)이 최근 바비 인형, 액션맨, 곰인형을 제치고 영국장난감업체협의회에서 선정하는 20세기 최고의 장난감으로 선정되었다. 어렸을 적에 형형색색의 블록들을 방바닥에 어지러이 놓고 하나씩 블록들을 맞추어 집, 사람, 동물들을 만들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레고를 최고의 장난감으로 뽑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레고블록의 정체성, 순간적 필요에 따라 전체모양이 살아있는 생물처럼 변화하는 가변성들은 레고 블록을 최고의 장난감으로 만든 특성임에 틀림없다.

레고블록, 20세기 최고장난감

이와같은 레고블록의 상징성들은 21세기를 분석할 수 있는 키워드가 된다. 이른바 ‘레고문명’. 지난 98년 프랑스의 문명비평가 자크 아탈리가 쓴 ‘21세기 사전’에서는 레고문명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레고문명은 문명 중의 문명이 될 것이다. 레고 문명은 모든 혼합이 조화를 이루고 서로가 서로에게 관용을 갖게 하며 새로운 차이점을 만들도록 독려하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반가운 소식으로 받아들이고 불안한 것을 하나의 가치로 받아들이며 불안정한 것을 안락함으로 받아들이는 것.”

레고문명의 첫 번째 특징은 다양한 형태의 융합이다. 서로간의 차이를 떠나 융합을 통해 그 접점들을 찾아가려는 노력들이 레고문명을 이루는 시발점이다. ‘퓨전’이라고 불리는 일련의 문화는 이러한 융합의 문화들이 앞으로 지속적인 관심을 끌 것이라고 예고하는 것에 불과하다. 마치 서로 다른 레고조각들을 모아 자신의 레고 세계를 만들 듯 자신만의 세계를 정치, 경제, 사회, 사상들의 다양한 융합을 통해 구미에 맞게 형성할 수 있다. 이는 독특한 라이프스타일과 21세기의 새로운 정체성을 요구한다. 이제 동서양, 과거와 미래, 인간과 자연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경계를 구분하기 보다 자신의 취향에 맞게 구성하는 능력이 더 요구된다.

다양성은 레고문명을 구성하는 기본 토대. 제각각인 레고블록의 크기와 모양은 글로벌 스탠다드에 따라 세계의 모든 조건이 규정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서로 맞추고 끼워 저마다 모양이 다른 스타일과 다양한 사고방식으로 스스로의 삶을 조립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레고는 성립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21세기가 다양한 삶의 방식으로 구성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서로의 삶의 영역을 인정할 수 없게 되어 생활자체가 어려워진다. 예전의 방식들을 고수하면서 서로간에 다양성을 인정하는 형식적 조화가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이러한 다양성에 대한 의식적 사고가 마련되지 않으면 다양성의 틀은 구성되기 어렵다.

만일 수백개의 레고블록으로 로켓을 만들었다면 그 최종결과물은 각각의 레고블록을 물리적으로 합한 것 이상을 발휘한다. 즉, 부분의 합은 전체보다 훨씬 크다. 레고블록 하나하나가 지닌 성격들이 완성된 레고블록에서는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닌다. 때문에 개인의 다양성들이 전체와 어떻게 조화되는냐가 관건이다. 다양성과 전체성의 공존. 공존하는 세계에서 전혀 다른 의미의 구조가 꽃을 피우게 된다.

레고문명의 학문적 논의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명저 ‘천의 마루’(Mille plateaux)에서 제기된 바 있다. 마치 어린 아이가 놀 듯이 미래의 인류가 역사를 만들어 낸 다양한 문명을 조립하면서 살 것이라는 그들의 지적이다. 순수한 형태의 사상, 문화가 점차 사라지고 다양한 사상, 문화가 모자이크처럼 짜집기된 문명이 도래하리라는 이 생각은 지금의 디지털 문화에서 제기되는 생각이다. 문제는 레고문명의 전체적인 특징들이 과연 현재의 전체 세계 시스템과 얼마나 조화를 이루고 있는가다. 그러나 레고문명의 특징들을 레고의 틀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기에, 새로운 중세에 대한 논의로 범위를 확장시켜 볼 필요가 제기된다.

물론 현단계의 세계시스템이 과연 유럽의 중세시대와 얼마나 잘 맞는가하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있다. 다만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중세의 특징들이 얼마나 현 단계의 시스템들과 어떻게 조화하느냐다.

중세와 레고문명의 접점

‘새로운 중세’에 대한 논의는 이미 1970년 정치학자 헤들리 불(Hedley Bull)에 의해 제기되었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장래에 출현할 가능성이 있는 국제 시스템의 하나로 중세의 시대를 예견한 바 있다. 주권국가들 사이의 관계가 우월한 국제시스템을 대신할 수 있는 모델이라고 생각하고 다음의 5가지 기준에 따라 이야기했다. 첫째는 국가의 지역통합의 가능성, 둘째는 국가의 해체, 셋째는 사적인 단체에 의한 국제적 폭력의 부활, 넷째는 초국가주체의 우월성, 다섯째는 세계의 기술적 통합이다. 국내에서도 조동일 서울대 교수가 지난해 ‘중세문학의 재인식’ 3부작을 펴내며 중세에 대한 재평가를 주장한 바 있다. 이와 같은 논의들을 종합해 볼 때 21세기의 논의가 중세의 시대로 정리되는 것은 예정된 결말이라고 판단하는 사람이 많다.

지난 유럽의 중세 시대에 대해 섣부르게 판단해선 안 된다. 여기서 말하는 중세는 세계사 발전 전단계로서의 중세가 아니다. 이것은 서구에서 후일 근대 세계시스템이라고 불리게 될 세계시스템이 탄생했던 16세기 이전에 존재했던 다른 형태의 세계시스템을 말하는 것이다. 지난 중세와 현재의 양상은 너무도 판이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대표적인 특징은 앞서 이야기했던 다양한 주체와 그 주체들로 구성되는 네트워크가 존재하리라는 예측이다. 이는 현재 비국가주체의 중요성이 커지는 것과 비교된다. 예를 들면 그린피스와 같은 NGO와 개발도상국의 국가 중 어느 쪽이 권력을 더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주체의 권리관계도 매우 복잡하다. 개인은 국적이라는 하나의 귀속의식 외에도 여러 관계가 얽혀 하나로 이야기하기 어렵다. 지금과 같은 다국적 기업이 활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적과 기업의식은 서로 딜레마를 이루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국제정치와 국내정치의 구별도 무의미하다.

오늘날 한국의 상황은 이와 같은 중세의 특징을 더욱 극명하게 만들고 있다. 개인을 더욱 유목민화하는 모바일 휴대통신의 범람, 내셔널리티와 시민공동체 담론 사이에서의 갈등, 천차만별의 모습을 나타내는 정체성의 혼돈은 레고문명의 새로운 문제지점들로 떠오르고 있다. 앞으로 기술은 개인을 항상 ‘부족’ 전체와 연결되어 있도록 전송수단을 휴대하고 다니도록 강요할 것이다. 또한 한국의 학생들은 문명간 차이를 짧은 시간에 적응시키느라 급속한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자유, 정체성, 주체

미래의 어떤 사상도 현재의 외삽(外揷)이라는 것을 고려해 볼 때 여전히 문제지점들은 현재에서 기인한다. 레고 문명이 이야기하는 자유로운 사고, 새로운 정체성, 다양한 주체라고 사고가 현재의 지점과 얼마나 조우를 하고 있는가가 새로운 문제지점이다. 디지털 기술 문명의 도래에 앞서 레고형 인간에 대해 새롭게 고민해 볼 일이다.

<오승환 기자> kunstbe@press.c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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