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50년만에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국민은 안정보다는 `변화'와 `개혁'
을 택했고 경제위기를 빨리 해결하라고 표를 주었다. 일단 축하한다. 그러면
서도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 앞에 놓인 많은 걸림돌과 지뢰밭 때문에 걱정 또
한 앞선다. 김 당선자는 수십 년간 민주화를 위해 투쟁해 왔다.하지만 대선
과정에서 정치 지향점이 사뭇 다른 `유신 본당'과 연대했고 내각제를 약속했
으며 반민주적 인사들을 무차별적으로 영입했다. 김당선자의 이같은 승리요
인은 변화를 창출하고 변화를 관리해야 할 그의 임기동안에 아킬레스건으로
줄곧 남을게 뻔하다. 여러 나라에서 대통령이 취임한 첫해를 밀월여행이라고
일컫고 이기간 동안에는 비판하지 않는 것이 관례이다. 게다가 연말연시에는
덕담하는게 우리네 미풍양속이다. 하지만 우리경우에는 그럴 여유가 없다.

김당선자는 우선적으로 외한 위기를 해결하고 정부기구를 축소하고 재벌구조
를 개혁하고 남북과 동서의 관계를 매끄럽게 풀어야한다. 하지만 기득권 세
력의 반발이 녹록치 않을게 뻔하다. 따라서 우리는 몇 가지 문제를 지적하려
고 한다."개혁의 첫단추 잘못 끼웠다〃김당선자가 개혁의 첫단추를 잘못 끼
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김당선자의 영향을 받았음에 틀림이 없는 금융실
명제를 보완하는 조치가 있었다. 보완은 실제적으로 폐기를 뜻한다. 경제위
기를 실명제에 덤터기 씌우는 일부 기득권세력에 손을 들어주었다. IMF의 지
적처럼 현재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데에는 검은 돈을 철저히 관리할 필요가
있다.또한 김대통령과 김당선자가 처음 만난 자리에서 전.노씨 사면이 결정
된 것은 크게 잘못되었다. 전.노씨는 12.12사태와 5.18의 진상을 국민들에게
솔직하게 밝히고 사죄하기는커녕 훈장과 2천억 원이 넘는 추징금조차 내지
않았다. 그런데도 사면이라니 말도 안된다. 두 전직 대통령이 뉘우침 없는
뻔뻔하고 당당한 모습을 보라. 난국 돌파를 이런 식으로 해서는 안된다. 이
미 원칙 없는 정치가 그 몰골을 일찌감치 드러내었다.따라서 우리는 몇 가지
문제를 제기하려고 한다.

첫째, 차기 정권은 개혁과 진보세력이 제대로 설 토대를 마련하라는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각 정당이 정책과 이념을 내세우기보다는 정략적 이해에 따라
이합집산했다. 따라서 이같은 정치판도를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 얼마전 남
재희 전 노동부 장관은 `노동과 세계'에서 지금 우리 보수정당들은 정체의 늪
에 깊게 빠져 있다고 진단하며 진보정당의 세례를 받아야만 영국과 독일 등
선진국의 경우처럼 건전해질 수 있다고 진보정당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개혁
세력이 폭넓게 포진해야만 정권이 바뀌었을 경우에도 개혁을 끝까지 밀어붙
일 수가 있는 법이다.

둘째, 부정부패의 척결이다. 얼마전 르몽드지는 한나라의 경제 발전을 가로막
는 걸림돌이 정치가와 공직자의 부패라고 지적했다. 오래 전부터 부정부패가
우리 삶의 한 양태가 되었다. 청렴은 전설이 되었고 부패는 더욱 기승부린다.
일찍이 미국의 경제학자 케네스 겔브레이스는 `경제학의 조망'에서 "한 국가
의 발전은 경제관료의 청렴성과 생산성에 좌우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지금
공직사회는 무능력하고 부정부패에 크게 오염되어 있다. 부패한 나라가 선진
국이 된 예가 없었다.

셋째, 학연 지연 혈연에 밑바탕을 둔 크로우니 캐피털리즘(CRO-NY CAPIT
ALISM)으로 불리는 `패거리 정치'를 불식해야 한다. 지금까지 비판과 토론의
장을 허용한 리더는 없었고 아집과 노욕으로 가득찬 보스만 있는 사당 정치
, 정치가와 재벌과 언론인의 유착관계는 수십년동안 우리 정신 문명은 크게
타락했다. 패거리 정치의 공범자이자 들쥐와 하이에나 근성을 지닌 언론을
혁파해야 한다.아무리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고 해도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추슬러야 한다. 멕시코에서 페소화폐가 위기에 처했을 때 `신종(新種) 람보
'였던 깡드쉬 IMF 총재가 벌렸던 행각을 꼼꼼히 살펴보아야 한다. 미국컬럼
니스트 윌리엄 파프는 "미국기업이 사회정의에 대한 개인들의 요구를 등진
채 새 경제결정론에 대한 확고한 믿음 위에서 움직이고 있다. 즉 시장이 정
의나 평등을 포함해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다 이야말로 전도된 미국식
마르크스주의다. 그럼에도 국가적 경제윤리가 되어버렸다"고 꼬집었다. 시장
경제와 해고가 약방의 감초가 아니라는 말이다.

운신의폭이 크게 좁아진 우리는 시장경제 만능론인 `미국식 마르크스주의'라
는 `변종(變種) 람보' 앞에서 주눅들어 있다. 이래선 안된다. 부정부패와 패거
리 정치를 이른 시일 안에 청산하고 개혁세력을 일구어 내야한다. 특히 우리
모두는 그 어느 때보다 차기대통령에게 전적으로 힘을 모아주어야 하고 김당
선자는 주체적 협상을 신중하게 해주길 바란다. 그게 국가의 줏대와 이익을
제대로 보듬는 첩경이다.끝으로 우리가 이 경제위기에서 배울 교훈이 한가지
있다. 80년초 미국도 IMF의 수혈을 받고 재생하면서 교육혁명이 살길이다고
외쳤다. 97년 사회당이 집권한 프랑스와 영국도 어려운 나랏살림에도 불구하
고 국가재건은 교육혁명의 완수에 있다고 판단하고 당차게 밀어붙이고 있다.

박영근<문과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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