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세기말.새로운 천년을 눈앞에 둔 희망의 시대인가, 영국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말처럼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산사태'의 시대인가. 결국
이러한 희망과 산사태의 위기속에서 98년 학술계에는 새로운 화두가 던져질
수밖에 없다.`희망과 위기속에서 새로운 변화의 모색.'21세기를 준비하는 새
로운 시각의 정립이라는 화두아래 각 학술계간지에서 기획하는 특집들도 이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들을 선두에 서서 지휘하
고 있는 것이 `창작과 비평'(발행인:백낙청, 이하 창비) 겨울호 `쟁점'란에
서 다루고 있는 `식민지와 근대' 논의다.90년대 들어서면서 안병직 교수(서
울대 경제학과)는 `일제 식민지=착취기'라는 학계의 논리를 뒤엎고, `이 시
기에 한국 자본주의의 토대가 형성되고 근대화가 이루어졌다'는 식민지근대
화론을 주장하고 나서기 시작했다. 이에 신용하 교수(서울대 사회학과)는 "
안교수의 주장은 조선총독부 논리를 복원한 것"이라 반발하면서 식민지와 근
대 논의에 불을 당겼다.창비가 이 쟁점란을 마련한 것도 "단순히 식민지시대
나 일본제국주의 지배를 해석하는 차원에서 벗어나, 현재 우리 사회가 어디
에 서 있고 어디로 갈 것인가 하는 실천적 문제의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강일우 창비 간사도 "역사학계와 사회학계가 주장하는 내재적
발전론이나 경제학회에서 주장하는 식민지 근대화론 모두 일장일단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 서로 자신들의 입장만을 고수하면서 발전적인 방향을
가로막고 있다"면서 이에 제3의 안을 마련하고 다가오는 21세기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기획하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앞으로 창비측은 이와 관련한 논문들
을 계속 실어나가면서 이를 더욱 쟁점화시켜 나갈 계획이다.뿐만아니라 문학
과 지성사에서 발간하는 `문학과 사회'(발행인:김병익)에서는 이번 봄호에
`21세기 전망,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특집을 마련하고 있다. 21세기
를 준비하면서 그동안의 쟁점들을 점검하고 새로운 발전방향을 모색해보려는
시도들이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보면 맑스주의의 새로운 재인식, 주체의 소멸
과 정립문제 그리고 지식인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룰 예정이다.문학과 지성사
채호기 간사는 "지식인 문제가 집중적으로 부각될 것"이라며 지식인 문제를
들고 나오고 있다. 그는 "사회가 급변하면서 80년대 진보적 지식인의 위치가
애매해지고 지식인 역할이 위축되면서 대중이 정면에 나서게 되었다. 대중문
화의 부상은 이의 단적인 예로 볼 수 있다"며 지식인의 역할 재정립을 요구
하고 있다. 이와함께 98년의 어려운 경제.사회적 상황은 지식인의 역할 재정
립 요구를 더욱 부추길 것으로 전망하면서 이에 대한 지식인들의 고민이 선
행되어야 할 것이라 덧붙였다.한편 지난해 꾸준히 다루어졌던 동아시아 문제
도 계속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 12월16일자 신문은 서남재단과
문학과 지성사가 펴내는 `동향학술총서 시리즈'를 소개하면서 `다시 떠오르
는 동아시아론'이란 부제를 달고 동아시아론을 끄집어 내고 있다.`동아시아
인의 동양 인식:19~20세기'(최원식, 백영서 공저)는 금세기 초부터 최근까
지 한.중.일에서 논의된 각종 동아시아론을 생생히 담고 있다. 최원식 교수
(인하대 국문과)는 "일국주의 모델을 넘어서 세계적 안목을 갖기위한 방편으
로 동아시아에 관심을 가지며, 특히 이는 분단문제의 해결을 위한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밝히고 있을 뿐 아니라 백영서 교수(연세대 사학과)도 "자본의
획일화 논리에 저항할 수 있는 거점으로 동아시아란 단위를 설정해봄직하다
"고 말하고 있다.서구문명이 초래한 부작용들을 극복하고 새로운 대안을 찾
기위해 눈을 돌린 것이 동아시아론이다. 하지만 지난 97년 한해동안 이루어
진 동아시아 논의들을 점검해보면서 동아일보 학술부 이광표 기자는 "21세기
에는 서구문명의 시대가 가고 동양문명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란 낙관론에 대
한 객관적이고 진지한 고민이 부족했다"며 동아시아론에 대해 구호만 무성하
고 성찰은 빈약했다는 평을 내리고 있다. 동아시아 논의들이 다양하게 이루
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아직 어떤 합의점을 찾기는 어렵지만 꾸준하게 동아시
아 논의들이 이루어지면서 우리 것에 대한 객관적 시각을 제공하고, 인문사
회과학의 올바른 방향 설정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한편 98년은
학술단체협의회(대표:강정구, 동국대 정치외교학) 창립 10주년을 맞는 해일
뿐 아니라 창작과 비평이 여름호로 통권 1백호를 맞고 또한 문학과 사회 또
한 봄호로 창간 10주년을 맞게 된다. 이에 다양한 학술행사나 기획 특집들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학술단체협의회는 창립 10주년을 기념해
서 대규모 심포지움을 개최할 예정이며 문학과 사회에는 창간 10주년 기념으
로 21세기를 주제로 다양한 학술기획을 마련한다.특히 창비가 준비하고 있는
심포지움이 가장 주목을 끌고 있는데, 3월말경 열릴 예정인 통권 1백호를 기
념하는 `국내학술대회'에서는 문학, 사회, 여성과 사회운동, 식민지와 근대
등 분야별로 20세기를 뒤집어보고 21세기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는 자
리를 준비하고 있다. 한편 역사비평에서는 남한단독정부 수립 50주년을 기념
해 남북문제에 대한 새로운 시각정립을 위한 다양한 논의들을 다룰 예정이다
.지난해 학술계는 우리 학문의 길을 찾기위한 다양한 논의들이 이루어져 서
구중심에서 벗어나려는 주체적인 시각들이 돋보였다. 뿐만아니라 열린지성,
당대비평, 전통과 현대, 현대사상 등 학술계간지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
면서 다양한 논의들이 다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 이들을 하나의 틀거리로
묶을 수 있는 논쟁거리는 부재했다는 지적이 많다. 하지만 21세기를 준비하
는 올 한해는 `희망과 위기속에서의 새로운 변화모색'을 큰 틀거리로 분야별
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려는 시도들이 그 성과를 이루길 기대해 본다.

<김수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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