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청춘의 고백
  • 장은지 기자
  • 승인 2017.09.11 07: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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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품고 있는 상처
부끄러워 않길
 
어느새 흑석동에서 맞는 세 번째 가을이 다가왔다. 해방광장 벤치에 앉아 손끝으로 매만지는 가을은 언제나 부드럽다. 곧 있을 가을 축제에 흠뻑 빠져있는 친구들과 중간고사를 준비하며 밤을 새우는 내 모습도 어렴풋이 보이는 듯하다. 4학년이 코앞이니 소위 짬 좀 생겼다 싶었는데 취업의 부담도 코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서릿발같이 차가운 현실에 부딪혀 좌절하는 선배들을 봐왔으니 두렵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마냥 먼일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손으로 만질 수 있을 것 같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두 달 남짓 남았다. 내일 당장 9월 모의고사를 앞둔 내 과외 학생이 물었다. “대학 가면 학교 안 가고 막 놀러 다녀도 안 혼나요?” 막연한 희망으로 눈을 빛내는 학생의 퀭한 얼굴을 보며 차마 “선생님도 너처럼 자기소개서 쓰고 있어. 떨어지면 너처럼 1년을 기다려야 해”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저 시험이나 잘 보라며 어깨를 두드려줬을 뿐이다.
 
  컴퓨터 앞에 앉아 24년이 넘는 삶의 ‘성장배경’을 500자로 요약하다가 나도 모르게 드라마 대사 한마디를 떠올렸다. “나는 회사원이 될 거야. 죽을 만큼 노력해서 평범해질 거야.” 기사를 준비하면서 봤던 ‘청춘시대’라는 드라마에 등장한 대사였다. 등록금 마련 때문에 28살이 되어서야 겨우 취업 전선에 뛰어든 여주인공은 평범해지기 위해 평범한 일상을 포기한다. 그 꿈의 종착역은 ‘평범한 회사원’이 되는 것, 취업이었다.
 
  이렇게 ‘청춘시대’ 속 청춘들은 아름답지 않았다. 오히려 드라마에 등장하는 모든 청춘은 적나라한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아파했다. “화장은 점점 진해지고 거짓말은 점점 늘어간다”는 정예은의 눈물과 “나의 질투에서는 썩은 냄새가 나”라는 강이나의 고백을 보면서 공감했다. 그들의 아픔과 눈물에 공감했다는 건 나의 청춘 또한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의미이리라. 문득 N수생이었던 나에게 대학과 청춘은 유토피아였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러나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았다.
 
  대학은 나에게 삶의 무게를 가르쳐줬다. 같은 교실에서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급식을 먹으며 공부할 때는 몰랐던 것을 알게 됐다. 삶은 공평하지 않았다. 높은 경쟁률의 대외활동과 인턴, 인간관계에서 겪은 뜻밖의 실패들은 두 번의 입시 실패가 인생의 가장 큰 실패가 아님을 가르쳐줬다. 낯선 타향살이와 아르바이트의 무게에 어깨가 뻐근해지기도 했고 부모님께 등록금 고지서를 내밀며 죄스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현실의 버거움을 누구에게 쉽게 꺼내 보일 수 없었다. 내가 가진 아픔이 누군가에게는 사치로 보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나의 치부로 보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보다 힘든 사람이 훨씬 많으니 투정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꼭꼭 숨기기 바빴다.
 
  하지만 드라마 속 아름답지 않은 청춘들은 내가 치부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치부가 아니라고 말해줬다. 백미는 유은재의 대사였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나와 다를 거라고 생각했어. 나는 오만했어. 다들 나와 같은 사람이야. 나만큼 불안하고, 나만큼 머뭇대고, 나만큼은 착한 사람이야.” 다른 사람의 삶을 멋대로 판단해 나의 이야기를 숨기려고 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결국 자신의 벽을 허물고 서로에게 서로의 치부와 아픔을 드러내는 그들을 보면서 나는 위로받았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읽고 있을 많은 독자에게 내 아픔의 일부를 용기 내어 털어놓는다. 부끄럽지만 부끄럽지 않다. 누군가 이 글을 읽고 ‘나만의 아픔이 아니구나!’하며 공감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독자들이 더 나아가 가까운 사람들에게 본인의 상처를 털어놓고 위로받을 용기를 낸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우리 숨기지 말자. 치유는 상처를 보여주는 데서 시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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