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건 없다, 다름이 있을 뿐
  • 이지은 기자
  • 승인 2017.09.03 12: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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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는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사소한 계기로 시작된 변화는 우리의 일상을 뒤집고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죠. 그런 변화의 시점을 티핑 포인트라고 합니다. 이번학기 기획부는 우리 사회의 티핑 포인트가 되고자 합니다. 오늘은 채식에 티핑 포인트를 찍어보겠습니다. 최근 기존의 공장식 축산업을 비롯한 비윤리적인 육류 생산 과정을 거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채식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인데요. 하지만 이렇게 채식이 두드러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한국에선 제대로 채식할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채식인들이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는 식당도 현저히 부족할 뿐만 아니라 소외감, 그들을 향한 조롱과 공격적인 언어 등 인식적인 배려 역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채식인들이 마음 편히 식사할 수 있는 곳은 없는 걸까요? ()에서 소수자인 채식인들은 어떻게 채식을 하고 있는지 들여다봤습니다.

 
 

불편한 인식 속
부실한 채식 인프라

이제는 필요한 변화의 움직임
채식이 당연할 수 있도록

 
나는 채식을 시작했다. 그리고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대신 고민이 차려졌다.’ 최훈 저자의 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사월의책 펴냄) 중 한 구절이다. 채식인은 식사 시간마다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 어느 식당으로 가지, 메뉴에 육류만 있으면 어떡하지, 채식인이라고 미리 말해야 하나, 같이 밥을 먹는 사람이 불편해하지는 않을까 등 비채식인은 하지 않아도 될 고민이 그들에겐 필수다. 육식이 당연한 사회에서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의 존재는 믿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먹을 수 없는 식사
  캐나다에 사는 한국인 이민자 이실비아 씨(40)는 채식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태어날 때부터 채식인이였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육류를 선호하지 않는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 한국의 채식인에 대한 이해도나 인식은 서구와 비교해 현저하게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동물보호단체인 peta2(peta2: The World’s Largest Youth Animal Rights Organization)는 미국 1500여 개 대학 중 약 62%가 채식 식단을 제공한다고 발표했다. 반면 한국에서 채식 식단을 공식적으로 제공하는 대학은 총 3곳으로 서울대, 동국대, 삼육대가 전부다. 이는 우리나라의 채식 관련 인프라가 얼마나 열악한지 여실히 보여준다.

  “대학 근처에서 채식인을 위한 식당은 찾아보기 힘들어요. 그래서 도시락을 만들어 오거나 김밥을 사 먹더라도 햄이나 달걀을 빼서 먹곤 하죠. 채식 식당은 보통 접근성이 낮고 가격이 높아 자주 가기는 어려워요.” 현실이 그렇다 보니 채식인들은 2천원 이하의 부실한 식사를 하거나 만원 이상의 비싼 식사를 하는 등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연세대 채식모임 베지밀-Veggie Meal’ 회장인 최민영 학생(연세대 독어독문학과)은 한국의 부실한 채식 인프라 때문에 외국에서는 동물성 식품을 일절 먹지 않는 비건(Vegan)’으로 생활하다가 한국에서는 유제품, 달걀, 어류까지는 먹는 페스코(Pesco)’로 전향하는 사람이 많다며 국내 채식인이 처한 열악한 환경을 꼬집었다.

  이화여대 채식·동물권동아리 솔찬의 회장 정림 학생(이화여대 철학과)도 채식인들이 갈 수 있는 식당이 한정돼 있다고 말했다. “저는 페스코이기 때문에 비건보다는 조금 나은 상황이지만 아무래도 베지테리언 샌드위치나 부리또 같이 항상 비슷한 음식 위주로 먹을 수밖에 없죠.”

  이처럼 채식인을 위한 식사를 제공하는 채식 식당은 국내에서 보기 드물다. 특히 완벽한 채식을 지향하는 비건 식당의 경우 서울을 벗어나면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전국의 채식 식당을 알려주는 ‘Happy Cow Free’ 애플리케이션에 나타난 비건 전용 식당은 대략 20곳 정도였다. 이마저도 서울에 밀집해 있어 지방으로 갈수록 채식인들의 여건은 열악해질 수밖에 없다.

  채식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식당에 한계가 있다 보니 채식이 인간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뿌리:고려대 채식주의자·페미니스트 네트워크 회장 이혜수 학생(고려대 교육학과)은 채식을 실천하고 난 후부터 비채식인 친구와 자주 만나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비채식인과 식사를 할 때 그들의 배려에 계속 미안해해야 하고 고마워해야 하는 상황이 되는 거죠. 그런 상황이 반복되면 인간관계에 벽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채식은 특이한 게 아니야
  우리나라에선 육류 선호가 당연시되며 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특이한 사람이 된다. 각종 방송 프로그램에서는 우승 상품으로 고기 세트를 제시한다. 그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성과를 축하하거나 노력을 요구할 때 흔히 고기 사줄게라고 한다. 이런 인식의 바탕에는 누구나 고기를 좋아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편향적인 사회의 인식은 채식인을 향한 시선으로 드러난다. 채식인들은 비채식인으로부터 특이하다혹은 유난 떤다는 등의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고 말한다. 채식인임을 밝히는 순간 그의 정체성은 오로지 채식인으로만 규정된다. “누군가가 분리수거를 한다고 그 사람은 분리수거를 하는 특이한 사람이야라고 하지는 않잖아요. 그런데 채식인이라고 했을 때, 상대방은 의 정체성 전체를 보지 못하고 채식인이라는 일부의 정체성만을 부각해요.” 분리수거와 채식 모두 결코 특별한 행위가 아니다. 그저 개인의 일상을 구성하는 일부일 뿐이다. 이혜수 학생은 채식을 하는 자신의 식습관을 특별한 구경거리로 여기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불편함을 드러냈다.

  “
처음에 제가 고기를 안 먹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식물은 불쌍하지 않느냐, 어떻게 고기를 안 먹고 살 수 있냐, 그래도 나는 고기가 좋다며 비아냥거리는 말을 들었어요. 제가 그 사람에게 채식을 강요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정림 학생은 채식을 시작했을 때 주변 사람들의 반응 때문에 채식을 실천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다른 사람에게 채식을 권하지 않아도 채식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여러 공격적인 말을 듣게 되는 것이다.

  이혜수 학생은 비채식인들에게 채식에 대한 방어기제가 있기 때문에 이런 공격적인 태도가 나타난다는 글을 읽은 적 있다며 언급했다. 비채식인은 잔인한 도살 과정의 폭력성을 알고 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있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오히려 채식인에게 공격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이혜수 학생에 의하면 비채식인들은 윤리적 부담을 덜기 위해 동물과 고기를 지칭하는 표현을 구분한다돼지는 영어로 ‘pig’이지만 돼지고기는 ‘pork’로 표현하는 식이다. 명칭을 구분함으로써 생명을 가진 돼지와 식재료에 불과한 돼지고기를 완전히 다른 존재로 인식한다. “생명을 가진 동물과 식재료인 고기를 동일시하는 사람이 나타나는 순간, 괴로운 연상이 이뤄져요. 그 고통을 막기 위해 채식인을 공격하는 거죠.”

이제는 변해야 할, 변하는 사회
  최근 들어 대학가에서는 여러 변화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고려대 뿌리:’, 이화여대 솔찬’, 연세대 베지밀등 일부 대학에서 채식 동아리가 만들어지고 있다. 정림 학생은 한국에선 육류 선호를 당연시하며 불필요한 수준으로 육류를 섭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과잉 육식 풍조는 채식의 존재를 가리고 있다.
정림 학생은 우리나라에 채식 문화를 알리기 위해 채식동아리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채식을 몰랐던 사람도 동아리가 있으면 그런 게 있다는 걸 알게 되잖아요. 채식인이 자신과 거리가 멀거나 특이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어요.”

  학생 사회 차원에서의 변화도 서서히 이뤄지고 있다. 고려대의 경우 총학생회 간식 사업으로 비건 식을 준비해 학생들에게 제공했다. 연세대에서는 채식 메뉴를 보장하는 학생 식당을 갖추도록 요구하려는 움직임이 일기도 했다. “아직은 논의가 시작되는 단계지만 단대별 학생회가 나서서 채식 메뉴를 도입하려고 시도하고 있죠.” 최민영 학생은 채식에 대한 편견 없이 활발한 논의가 이뤄졌으면 좋겠다며 앞으로의 변화에 기대를 표했다.

  캐나다에 거주 중인 실비아 씨는 한국에선 여전히 편협한 사고가 지배적이지만 캐나다에서의 채식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남들과 다르게 먹으면 까탈스럽다고 받아들여지죠. 채식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선택의 문제일 뿐인데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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