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를 읽고’
  • 임지원 기자
  • 승인 2017.06.07 0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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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의 수용에 대하여
건강한 중앙대를 바란다
 
매주 수요일, 초조한 기운이 편집국을 감돈다. “편집장님, 혹시 도착했어요?”, “이번엔 무슨 내용인가요?”, “누가 써주셨나요?” 기자들이 목 빠지게 기다리는 건 바로 ‘중대신문을 읽고’다. 이 코너는 다름 아닌 중대신문에 관한 평가다. 해당 옴부즈맨의 필진으로는 중앙대 학생과 교수, 타대 학보 기자 등이 포함된다. 이들은 그 주 발행된 중대신문을 읽고 나서 무엇이 아쉬웠는지 혹은 좋았는지, 개선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 무엇을 기대하고 바라는지에 관해 평가한다.

  사실 본지에 대한 비판을 본지에 싣는 데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다. 어떠한 기고들은 송곳처럼 아프게 찔러오기도, 한 주 동안의 노력이 무안해지기도 했다. 우리 기자들이 수십 시간 동안 치열하게 고민하여 작성한 기사이기에 작은 비판에도 아팠다. 그리고 무서웠다. 혹여 누군가 이 글만 보고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되진 않을까, 한명 한명의 독자가 소중하기에 두려웠다.

  그럼에도 중대신문은 언제나 오피니언면에 ‘중대신문을 읽고’를 싣는다. 그리고 평가 중에서도 되도록 비판을 부탁드렸다. 한 주 동안의 결과물이 우리만의 자위가 되지 않도록, 결국 우리가 대학언론으로서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특히 이번학기에 들어서 ‘중대신문을 읽고’를 통한 의견을 편집 방향에 적용하고자 꽤나 노력했다. 필진들이 중대신문에 요구하는 바는 간단하고 확실했다. “학생을 위하여”, “약자의 편에서”, “더 날카롭고 세밀하게.”

  이를 적극 반영하여 안성캠 생활관 괴한 침입 등의 사건사고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후속 보도를 통해 문제의 근본을 분석하고 제도적 보완과 진정성 있는 소통을 요구하는 학생 사회의 목소리를 담았다. 또한 철저히 소수자의 시각에서 동성혼, 생리권, 마녀, 폴리아모리, 고용 차별 등의 기획을 준비해 이 사회에 존재하는 불합리에 딴지 걸었다. 그리고 기계적 중립에서 탈피하여 뉴스 해석적인 측면을 보완하라는 의견에 따라 전공개방 모집제도, SW사업 수주와 학칙개정 등 중앙대가 가고 있는 길의 과정에 정의와 사실을 따져 물었다. 비판받기를 마다하지 않았기에 조금이나마 학생 독자에 다가갈 수 있었다고 감히 평가해 본다.

  물론 미흡한 부분도 없지 않다. 3주 전, 기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못한 채 학생들의 인터뷰만을 보도해 관련자분들에 혼란을 드렸다. 촉박한 시간에 쫓기는 바람에 보다 정밀하고 촘촘한 기획을 내놓지 못한 적도 있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하다. 대학의 주인은 학생이지만 실질적으로 대학의 변화 흐름에 학생사회가 큰 영향을 미치기는 어려운 구조다. 아무리 수적으로 절대다수라 해도 정보에 대한 접근으로 보나 제도 및 정책에 대한 부분으로 보나 ‘구조적 약자’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학언론은 그래서 존재한다. 대학언론 기자들이 오롯이 ‘학생’들로만 구성되기 때문에 학생들의 여론과 진실을 담을 수 있는 것이다. 대학언론이 학생의 눈으로 표면적 사실보다는 근본적 진실을 바라보고, 자칫 토론과 비판 없이 제왕적 구조로 변질할 가능성이 있는 대학의 구성단위들을 견제할 수 있는 이유다.

  이렇듯 학생 독자들이 대학언론의 옴부즈맨이라면, 대학언론은 대학의 옴부즈맨이라 할 수 있다. 중대신문 또한 중앙대의 옴부즈맨 역할을 자처하므로 언제나 기꺼이 ‘중대신문을 읽고’를 기다릴 것이다. 그것이 중앙대를 위한 길임을 알기에, 그것이 우리가 할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자, 이제 묻는다. 당신은 기꺼이 비판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심도 있는 토론과 날카로운 비판이 오가는 건강한 중앙대를 꿈꾸며 편집국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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