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로 차를 끓이지 마세요 - 중대신문
최종편집 : 2017.9.19 화 17:19
여론/칼럼수첩을 열며
함부로 차를 끓이지 마세요
승혜경 기자  |  c-bong@cau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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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4.02  17: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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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차를 끓여 누군가에게 ‘차 한잔할래?’라고 물었을 때 ‘그래 좋아!’라는 대답이 돌아온다면 상대방이 차를 원한다는 걸 알아챌 수 있다. 그러나 ‘음, 난 잘 모르겠는데’라고 한다면 당신이 차를 끓이든 말든 상대방은 마시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또한 억지로 마시게 하는 일은 절 때 해선 안 된다. 만약 처음부터 거부의 의사를 표했다면 그때는 아예 차를 끓이지 않는 게 좋겠다. 억지로 뜨거운 차를 입에 들이붓는 건 학대와 다를 바가 없으니까.“

  이런 기자의 말에 동의하셨나요? 그럼 이제, 이 상황을 성관계에 대입해보겠습니다. 당신이 애인에게 ‘나와 애정을 나눌래?’라고 물었을 때 “그래 좋아!”라는 답변으로 응수한다면 사랑하는 사람과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겠죠. 하지만 “음, 난 잘 모르겠는데.”라고 한다면 상대방이 거부하고 있다는 걸 알아채야 합니다. 너무나도 잘 들어맞는 논리가 아닐 수 없네요. 이 이야기는 실제로 한 사이트에서 ‘동의의 의미’라는 제목으로 게시된 동영상입니다.

  이렇게 간단하고 당연한 원리를 담은 동영상의 조회수는 약 25만을 기록했습니다. 너무 쉬운 이야기라 높은 조회수가 조금 아이러니하신가요? 하지만 많은 여성들은 공감과 분노의 댓글을 달았습니다. ‘그 자식이 내숭 떨지 말라고 하더라’, ‘좋은 거 다 알고 있다고 말하더라. 그렇게 성폭력을 당했다’ 등 모두 실제 경험에서 우러난 의견들이었죠.

  얼마 전 한 유명 남성 연예인이 한 여성에게 폭행·감금·협박을 가해 논란이 일었습니다. 여성단체를 비롯한 수많은 대중들이 그를 비판했죠. 하지만 그는 ‘상대방은 맞는 걸 즐기는 마조히스트’라고 밝혔습니다. 그러곤 원하는 대로 해줬을 뿐인데 오히려 자신은 억울하다는 당위성을 주장했죠. 그의 입장문이 발표되자 일부 여론이 뒤바뀌었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기레기’가 멀쩡한 사람을 추악한 가해자로 만들었다며 뉴스를 보도한 기자를 비난했습니다. 심지어 피해자 여성을 ‘꽃뱀’이라 지칭하기도 했죠. 기자는 또다시 시작된 ‘마녀사냥’을 보며 혀를 내둘렀습니다. 

  설령 피해자가 마조히스트라고 한들 가해자는 동의 없이 폭행해서는 안 됩니다. 더군다나 공공연히 피해자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까지 박탈했습니다. 한순간에 사회에서 가장 지탄받는 성적 소수자라 ‘아웃팅’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폭행은 범죄이며 특히 연인과의 관계에서 동의 없는 성폭력은 강력히 처벌돼야 합니다. 

  지난 5년간 한국에서만 데이트 성폭력으로 숨진 사람은 467명입니다. 살인뿐만 아니라 납치, 감금, 폭행, 등 연간 7000여 건이 발생하고 있죠. 이에 따라 경찰에서는 데이트 성폭력 전담반을 만들고 피해자 보호에 신경 쓰는 등 여러 조치도 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이 일어난 후 뒤늦은 수습은 피해자에게 조금의 위로도 되지 않을 겁니다. 

  지난호 중대신문 기획부에서는 ‘청소년의 성’에 대해 다뤘습니다. 청소년 성에 억압적인 교육현장을 고발했죠. 한 학생은 현장에서 이뤄지는 성교육은 원론적인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마나한 성교육은 잘못된 성의식을 만들뿐만 아니라 어쩌면 데이트 성폭력의 불씨가 될 수 있습니다. 청소년기부터 자신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주장하는 방법과 성적 감수성을 기를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성교육뿐만 아닌 적절한 법률 대책도 필요하죠. 최근 대선을 앞두고 한 대선 후보가 데이트 성폭력을 예방하는 차원으로 ‘영국의 클레어법’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에 대한 많은 남성들의 반발이 따랐습니다. 하지만 이는 찬반의 문제를 떠나 개인의 성적 자유권을 보장하기 위해선 신중히 고려해야 할 문제입니다.

  동의 없는 관계는 ‘사랑’이 아닌 죽음을 부르는 ‘화’입니다. 혼자만의 착각에 빠져 로맨스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이제는 차를 끓이지 말라는 의미가 ‘내숭’이 아닌 분명한 ‘거부’로 들리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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