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 않으면 모른다.” 지난학기 중대신문에서 학술부 기자로 활동할 때 찾아간 강연회에서 뉴스타파 최승호 PD가 한 말이다. 그는 “기자는 질문을 던지는 데 거리낌이 없어야 한다”고 덧붙이며 우리나라 기자들은 질문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학생 기자로서 처음 간 취재에서 들은 가장 인상 깊은 말이었다. 이때부터 ‘망설이지 말고 질문하자’가 나의 취재 수칙이 됐다. 
 
  진실은 질문에서 시작한다. 만약 ‘광역화 이후 16학번들의 근황’을 취재할 당시 구체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았더라면 진실을 왜곡할 뻔했다. 본격적인 취재 전 대부분의 16학번 광역화 모집 학생이 원하는 본전공에 배정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기자 주변의 16학번 광역화 모집 학생들도 전부 원하는 본전공에 배정받았기 때문에 원하지 않는 전공에 배정받은 학생이 과연 많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스스로 내린 섣부른 결론이었다.
 
  ‘당연히 그렇겠지’는 위험한 생각이었다. 각 단대 학생회장에게 직접 물어보고 나서야 안성캠에는 무려 26명의 16학번 광역화 모집 학생이 희망 전공 진입에 실패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만약 ‘전부 원하는 곳에 배정됐겠지’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해당 전공의 상황을 캐묻지 않았더라면 사실이 왜곡될 수 있었다.
 
  ‘새내기 새로 배움터(새터) 만족도 조사’를 시행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SNS에 올라온 새터에 관한 부정적인 글을 보고 새터에 대한 불만족도가 높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새터 만족도는 평균 이상이었고 과반수의 학생이 새터의 순기능이 더 크다고 답했다.
 
  어떻게 질문할지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아서 아쉬움이 남는 기사도 있다. ‘2017 THE 아시아대학평가’에서 중앙대는 지난해 70위에서 60위로 10계단 상승했다. 상승 요인이 무엇인지 질문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지금 잘하고 있으니 순위가 올라갔겠지’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구체적인 질문을 생각해 내지 못했다. 상세 항목별 상승요인이 무엇인지 좀 더 자세하게 질문해야 했다.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보이지 않는 고릴라’라는 실험이 있다. 6명의 학생을 두 팀으로 나눠 서로 농구공을 패스하는 영상을 촬영한다. 피험자들에게 영상을 보여주고 농구공이 던져진 횟수를 묻는다. 이 과정에서 피험자들은 농구공을 던지는 학생들 사이를 지나가는 고릴라를 보지 못한다. 피험자들은 오직 공이 던져진 횟수만 알고 있다. 농구공에만 집중하느라 고릴라를 보지 못한 것이다.
 
  피험자가 고릴라를 보지 못한 이유는 인지적 과업 수행을 위해 선택적 집중을 했기 때문이다. 능률을 높이기 위해 불필요한 자극을 배제한 것이다. 기사를 빨리 써야 한다는 부담감에 한 가지 생각에만 매달려 편협한 질문만 하게 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자는 자극에 예민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자극에 질문해야 한다. 나는 나에게로 오는 자극을 배제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는가. 앞으로 써내려갈 기사가 부끄럽지 않게 편협한 생각의 벽을 무너뜨리고 망설임 없이 질문하겠다. 묻고 또 묻겠다.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