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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만 없고, 한국에만 있다힌국 차별금지법의 현주소
이호영 기자  |  jnsq96@cau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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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3.06  01: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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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착오적인 한국의 이력서
  차별금지는 법에서부터
 
 
“어떻게 그렇게 차별적인 회사에 투자하면서 감히 변호사 일을 할 수 있죠? 평등법 위반이에요. 당장 고발하겠어요.” 영화 <주토피아>의 토끼 경찰관 주디가 여우 퇴치제 개발에 투자한 변호사에게 한 말이다. 먹이사슬에서 벗어나 수많은 동물 종들이 평등한 존재로서 어울려 살아가는 주토피아에서 여우 퇴치제는 평등의 존재를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작은 초식동물인 주디가 편견과 차별을 이겨내고 코뿔소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주토피아 최초의 토끼 경찰관이 된 것 역시 종족에 상관없이 공정하게 인재를 선발하는 평등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주디가 경찰학교에 낸 지원서에는 사진이 붙어있지 않을 것이다. 인사담당자가 사진을 보고 종족을 추리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밖 현실에서 우리는 차별과 편견이 담기지 않은 이력서를 가질 수 없을까. 영화적 유토피아를 이력서에 구현한 다른 국가의 사례를 통해 시사점을 찾아봤다.
 
 
  뻗어 나가는 평등의 흐름
 
   
 
  독일은 2006년 「일반평등대우법」을 제정함으로써 사회 전 분야에서 차별을 금지했다. 타국민의 기술력을 수용하려면 채용 과정에서 인종이나 민족과 관련해 발생할 수 있는 차별을 방지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연방차별금지청은 익명지원제도를 시범 운영했다.
 
  익명지원제도의 목적은 구직자가 출신국, 나이, 외모 등의 비직무적 요소로 인한 차별을 받지 않고 전적으로 직업적인 자격 유무에 의해 채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박귀천 교수(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에 의하면 독일의 익명지원제도 도입이 채용 과정에 전혀 지장이 되지 않았고 인사담당자들은 오히려 이를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이력서상의 이름으로 국적을 유추해 뽑지 않았을 법한 유능한 인재가 선발돼 회사에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고용에서 차별받거나 소외되기 쉬운 집단에 공정한 채용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인 것이다.
 
  영국은 「평등법」이라는 강력한 차별금지법을 지녔다. 이 법은 채용 과정에서의 차별을 방지하는 지침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먼저 입사지원서에 직무관련성이 있는 정보만 기재하도록 하여 사진, 인종 또는 출신민족, 국가, 혼인 여부, 가족 관계, 연령, 성적 지향 등 개인적인 정보를 포함하지 못하도록 강제한다. 또한 선발기준이 차별을 조장하지 않는다는 입증 책임을 사용자에게 부여한다. 그 외에도 차별적인 질문을 방지하기 위해 ‘평등기회훈련과정’을 이수한 사람만을 면접관으로 위촉한다. 
 
  오늘날 다수의 국가가 평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중 최초의 현대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한 국가는 미국이었다. 미국의 포괄적 차별금지법인 「민권법」은 현재까지 채용 과정을 비롯한 사회 전 영역에서 평등사상의 근간으로 존중받고 있다. 이 법은 이력서에 사진을 비롯한 개인정보를 포함하지 말 것을 규정하고 있다. 그 결과 미국의 이력서는 오직 이름과 연락처, 학력 및 경력만을 요구한다. 또한 「민권법」은 비직무적 요소에 관계없이 고용될 수 있다는 점을 모집 광고에 명시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의 구인광고는 남성 혹은 여성 직군을 표기하지 않는다.
 
 
  의식도 법도 부족해
  평등한 채용을 지향하는 세계적 흐름에도 한국은 여전히 이력서에서 비직무적 요소를 당연시하고 있다. 노동과 관련된 사회의 의식수준이 변화를 부를 만큼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노동인권을 비롯한 인권 의식이 뒤떨어져 있는 이상 한국에 독일의 「일반평등대우법」 같은 법이 등장하기를 기대하긴 어려워요.” 황수옥 연구원(한국노동사회연구소)은 한국 사회의 노동 개념이 낙후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사용자가 노동자를 전근대의 노예처럼 보기 때문에 기왕이면 예쁘고 튼튼한, 노동력 이외의 부수적인 요소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는 업무능력으로만 평가받아야 합니다.”
 
  문제 제기가 이뤄져도 현실적인 변화가 이뤄지지 않는 가장 큰 원인은 채용을 담당하는 기업이 변화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별적 요소를 배제하라는 요구를 기업 활동의 위협으로 받아들이는 현 기업문화는 시대착오적인 인식을 보여준다. 구직자가 차별적으로 느끼는 요소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력서에 사진 부착을 금지하는 법안은 재계의 반대에 부딪혀 국회를 표류하고 있다. 홍성수 교수(숙명여대 법학과)는 채용 과정상 발생하는 차별을 개선할 의지를 보이지 않는 기업의 의식수준에 우려를 표했다. “이력서에 내포된 차별적 요소를 배제해야 한다는 의식이 기업들 사이에서 공유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차별을 금지하는 법률이 제정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국가인권위원회법」과 「근로기준법」은 노동 분야에 한해서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황수옥 연구원은 한국에 제정된 이러한 법률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실질적인 처벌 규정이 없어요. 게다가 「근로기준법」은 이미 노동을 하고 있는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채용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차별은 막기 어렵다고 봐야죠.” 한국 사회는 차별을 반대하는 윤리의식과 법적 제도가 모두 부족한 셈이다.
 
 
  입법으로 나아갈 길 제시해야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비직무적 요소에 대한 요구를 금지하는 명문 규정이 포함될 거예요.” 홍성수 교수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된 후의 이력서에 기대를 걸고 있다. 법이 강력한 처벌 규정과 함께 제정된다면 비직무적 요소를 포함하도록 한 기업에 시정명령이나 이행 강제금 부과를 통해 개선을 촉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황수옥 연구원도 이력서에서 비직무적 요소를 제외하기 위해선 의식 개선도 중요하지만 법률적인 제도가 먼저 갖춰져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했다. 일반적인 경우 법률은 사회적 분위기에 부응해 변화를 뒤쫓아가지만 차별금지법은 제정과 동시에 차별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을 동반하는 양상을 띤다. 이로써 국가가 차별에 반대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국민에게 전달할 수 있다. “차별로 고통 받는 이들이 있는 한, 일부의 반대가 있더라도 정의로운 방향으로 사회를 이끌 수 있는 법률을 제정해야 해요.”
 
  독일은 법률 제정을 통해 사회의 인식을 변화시킨 대표적인 사례다. 「일반평등대우법」을 제정한 이후 독일은 채용 시 차별 예방을 위한 시범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사회 전반의 문화와 의식을 개선하기 위함이었다. 박귀천 교수는 법률로 당장 차별행위를 금지할 수는 있지만 의식의 변화가 뒤따라야만 시민들이 법을 긍정적으로 수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률 제정과 더불어 사회구성원들이 스스로 차별 철폐의 중요성과 효과를 인식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것이 중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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