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측은 확신으로 이어진다는 말이 있다. 임호라는 사람이 ‘점잖은 왕’일 것이라는 추측은 곧 ‘점잖은 배우’일 것이라는 확신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임호는 변화를 택했다. 데뷔 24년 차 ‘왕 전문 명품 배우’라는 타이틀에 그치지 않고 괴물과 싸우기 위해 괴물이 된 정몽주를 연기했다. 그의 눈동자엔 부드러움과 다감함 대신 광기가 담겼다. 확신은 깨졌다. 더 이상 그는 왕으로만 남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의 장면도
한편의 영화처럼
 
정점에 이른 ‘정몽주’
학자 이전에
괴물의 모습을 그리다
 
 
 
 
 
 
 
 
 
 
 
 
 
 
 

그는 우리에게 오랜시간 ‘왕’이었다. 붉은 용포를 입고 특유의 부드러움으로 브라운관을 메웠던 그가 이제는 정적인 이미지에서 탈피해 역동적인 배우로 변신을 시도한다. ‘장희빈’으로 데뷔해 ‘전원일기’, ‘대장금’, ‘광개토태왕’을 거쳐 ‘정도전’으로 정점을 찍은 배우 임호를 만나봤다.

  -만나서 영광이다.
  “반갑습니다. 학교 다닐 때 중대신문 많이 봤어요. 중대신문에서 인터뷰 요청이 오다니 감회가 새롭네요.”

  -그런가. 중대신문 애독자였다니.
  “중앙대 학생이니까요.(웃음)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학교 소식을 접하기 위해 꾸준히 봤죠.”
 

  -최근 ‘옥중화’에서 체탐인 강선호를 연기했다. 요즘은 뭐 하고 지내나.
  “이제 막 강선호 역을 마친 터라 잠시 쉬고 있습니다. 아 참, 최근엔 MBC ‘일밤-복면가왕’에 출연했어요. 일찍 가면을 벗게 돼 아쉽지만 아주 만족스러운 무대였죠. 다들 제가 왕의 이미지가 강해서 그런지 얌전하고 점잖을 거라고 생각하시는데 사실 그렇지 않아요.(웃음)”

  -의외다. 그래도 사극의 ‘왕’ 아닌가.
  “왕 역할을 많이 맡긴 했죠. 숙종, 중종, 진지왕부터 왕의 아들인 사도세자, 월산대군까지…. 어휴.”

  -가장 왕 대접을 받았던 작품은.
  “1995년 숙종 역을 맡았던 ‘장희빈’이 생각나네요. 첫 주연이자 데뷔작이기도 한데 거의 매일 옥교를 타고 나왔어요. 그때 옥교꾼 아저씨들이 정말 고생하셨죠. 피아노보다 무거운 나무 옥교를 메고 종일 걸어 다니시느냐고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지금도 감사해요.”

  -개인적으로는 2003년 MBC ‘대장금’의 중종 역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많은 분들이 당시 수라상을 들며 ‘맛있구나~’ 했던 장면이 기억에 남으시나 봐요. 고백하건대 그 음식들 다 식은 거예요. 수라간에서 음식 만드는 장면을 찍은 후 족히 두시간은 넘어야 제가 먹을 수 있었거든요. 갓 만든 음식을 집어 먹었을 때의 그 맛있음을 회상하며 연기했죠. ‘맛있었는데~’하면서요. 왕이라고 진짜 왕은 아니었어요.(웃음)”

  -본인은 왕의 이미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예전엔 왕의 이미지가 진부하고 고루하고 답답하고 고지식한 느낌을 줄 것 같아서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렇게 투덜거리다가 어느 날부턴가 이제는 왕을 잘 안시켜주시더라고요. 어라, 갑자기 서운해지네요. 너무 투덜거렸나?”

  -학창시절부터 사극을 하고 싶었나.
  “전혀요. 그땐 주로 뮤지컬이나 대학극을 했어요. 데뷔 후 사극을 하게 된 것은 아버지의 영향이 컸죠.”
 

  -사극 1세대 작가 임충 말인가.
  “네. 당시 아버지께서 이종수 감독님과 ‘장희빈’을 준비하시다가 제게 숙종을 연기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시는 거예요. 어린 마음에, 그땐 정말 도망 다니느라 바빴어요. 아버지 작품에 제가 출연한다는 게 뭔가 부당한 것 같고 싫었거든요. 그런데 듣고 보니 절 시켜준다는 말도 아니었고 가서 카메라 테스트하고 오디션이나 한 번 보라는 이야기였어요.”

  -김칫국부터 마신 건가. 그런데 결국은 숙종을 맡았다.
  “당시 감독님께선 장희빈과 인현왕후를 신인으로 캐스팅했으니 숙종도 신인으로 뽑을 생각이셨대요. 저는 KBS 공채 2년 차였는데, 마땅히 활약했던 작품이 없어서 적합했던 거죠. 그리고 제 딴엔 1981년 MBC ‘여인혈전-장희빈’에서 먼저 숙종을 연기하신 유인촌 선배님을 따라가고픈 마음에 기꺼이 숙종 역을 맡았어요. 제가 닮고 싶은 우상이셨거든요.”

  -닮고 싶었던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

  “당시 유인촌 선배의 무대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무대를 휘어잡는 카리스마와 역동적으로 살아있는 연기에 반했어요. 저도 그런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죠. 후에 선배님과 MBC ‘전원일기’에서 함께 호흡을 맞춰 연기하게 됐는데 꿈만 같았어요.”

  -우상과 함께하는 작품이라. 많은 걸 느꼈겠다.
  “연기뿐 아니라 배우로서 생활하시는 모습 등을 보며 많이 배웠죠. 하루는 선배님이 찾아오셔서 ‘야 과자 좀!’ 하시는 거예요. 과자 드시면서 농담을 나누다가 가시는 길에 ‘야 내가 과자 다 먹어버렸으니까 네가 사다 먹어라. 한 오백 개 사다 먹어’ 하시면서 오천 원, 만 원을 주고 가시더라고요. 그분이 과자 드시러 오셨겠어요? 후배들과 소통하러 오신 거죠. 그런 것 하나하나 보면서 선배가 먼저 후배와의 담을 없애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그런지 배우 임호도 장난기 가득한 선배로 유명하다.
  “배우는 과묵하기만 하면 외롭고 고로와요. 특히나 방송드라마 영역에서 주로 활동하는 배우들의 경우엔 대기 시간에 모여서 수다도 좀 떨고 푼수도 떨고 해야 재밌죠. 나이 먹을수록 약간은 만만한 선배가 돼야 후배들이 옆에 오지, 과묵하고 어렵고 근엄하면 안 돼요. 친구 같은, 때로는 동생 같은 선배가 되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웃음)”
 
  “임호라는 사람에겐 1999년 ‘허준’에서 2003년 ‘대장금’ 그 사이 무렵이 격동의 시기였어요. 지금도 가끔 누워서 그런 생각을 해요. ‘다시 그때로 돌아가서 숙종을 연기한다면 정말 잘할 자신 있는데’ 하면서요. 지나온 과정을 후회하기도 하면서 통탄하기도 했죠. 그때도 최선을 다해서 한 건데 뭐가 잘하는 건지를 모르고 마냥 열심히만 했던 것 같아요.”
 
  -실제 연기와 학창 시절의 연기는 뭐가 달랐나.
  “대학 때는 친구들과 선배들과 모여 만든 연기가 전부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막상 실제 연기 세계에 나가보니까 학창시절의 연기는 그저 연기를 하기 위한 준비일 뿐이었어요. 대학 때는 이만큼만 해도 좋다고 이야기하겠지만 프로는 저기 끝까지 갔다 와야 하거든요. 아주 디테일한 부분에서 실제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것까지 다루어야 하는 게 프로의 영역이에요.”

  -학생 때는 아직 모른다는 건가.
  “그땐 선배 배우의 연기와 내 연기가 왜 다른지 몰라요. 아직 눈과 귀로 판별해 낼 줄 아직 모르거든요. 그건 광학 현미경으로 보지 않으면 안 보이는 아주 세밀한 거예요. 근데 그게 보이기 시작하면 완전 다른 세계가 펼쳐지죠.”

  -그 무언가를 알기까지 얼마나 걸렸나.
  “연기 시작하고 나서 한 십 년은 걸린 것 같아요. 십 년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이게 뭘까, 무슨 차이일까, 왜 다르지’의 반복이었어요. 나나 선배나 똑같은 대사를 똑같이 전달하고 있는 것 같은데 뭐가 다른지 모르겠는 거예요. 그런데 방송으로 보면 정말 달라요. 명쾌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현미경으로 본 사람에게만 보여요. 아마 다른 분야도 다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해요.”

  -디테일함이 갖춰져야 비로소 보이는 건가.
  “그렇죠. 끊임없이 궁금해하고 의문을 던지다 보면 하나하나 알아가는 재미죠.(웃음) 풀리지 않던 의문의 고리가 어느 날 떡하니 풀려버리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희열을 느껴요. 데뷔 10년 차가 되기까지, 그 기간에 정말 재밌게 연기했던 것 같아요. 뭔가가 찾아지기 일보 직전이니까요.”
 
  -자세히 말해 달라.
  “감정이라는 것이 어디서부터 생성된 것인가, 감정을 유지하는 데 과연 무엇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슬픈 연기를 해야 한다고 가정해봅시다. 아마추어 땐 막연히 ‘슬프다’는 생각만 하려고 하잖아요. 근데 연륜이 쌓이다 보면 슬픈 상황을 만드는 촉감, 냄새, 그 순간 공기의 맛 등 모든 에너지를 집중해서 슬픈 상황을 담아내요. 그 ‘슬프다’의 사이즈는 마치 한 편의 영화, 한 편의 노래가 되죠.”

  -굉장히 다양한 요소들이 함께 움직여 줘야만 가능한 일이다.
  “이를테면 숙종을 연기한다고 했을 때, 예전엔 단순히 ‘나는 숙종을 연기해! 얏! 나는 임금이다!’ 이러고 있었어요. 전혀 임금 같지 않죠. 숙종이라는 살아있는 한 사람을 표현하려면 좀 더 많은 고찰이 필요해요. 겉으론 어떤 말을 하고 있지만 가장 고민하고 있는 건 따로 있을 수 있죠.”

  -몰입을 위해선 어떤 노력을 하나.
  “대본을 80번 읽어요. 내 대사만 보는 게 아니고 전체 내용을요. 그렇게 가장 몰입했던 작품이 KBS ‘정도전’이에요. 데뷔 10년 차에 연기라는 게 도대체 뭔지 이제 좀 알게 됐다면 ‘정도전’은 그로부터 10년 뒤에 연기가 정말 재밌어질 때 했던 작품이죠. 조재현 선배님, 유동근 선배님, 박영규 선배님, 서인석 선배님 등 대한민국에서 사극 좀 한다는 남자배우들이 모여서 진검승부를 하느라 경쟁이 대단했어요.”
 

  -인물들 간의 첨예한 갈등을 잘 그려내 기억에 남는다.
  “서로 자신의 연기가 돋보이려 했던 순수한 경쟁이 빛난 작품이지 않나 싶어요.”

  -그 순수한 경쟁에서 나름의 승리를 거둔 것 같다.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것 같아요. 그렇지만 돌이켜보면 조재현 선배님이 정도전을 그렇게 연기해주셨기 때문에, 유동근 선배님이 이성계를 그렇게 연기해주셨기 때문에 저의 정몽주가 빛날 수 있었어요. 심지어 한 번도 NG 난 적이 없어요. 스튜디오 촬영 때 유동근 선배님과 제가 어려운 장면이 많았는데, 그냥 카메라 네 대를 한꺼번에 돌렸어요. 마음대로 하시라고. 자신 있다 이거죠.(웃음) 얼마나 준비를 했으면 그랬겠어요. 항간에 회자되는 ‘야 정몽주!’ 장면도 두 번 찍지 않았어요.”

  -기존의 점잖은 왕이 아닌 정몽주라는 괴물을 연기하게 됐다.
  “단순히 권력 싸움이 아니라 누가 더 백성을 위하냐는 싸움이었어요. 이성계는 자신이 반역자가 되더라도 백성의 더 나은 삶을 위해 혁명을 일으키겠다는 인물이었고, 정몽주는 비록 그런 나라라 할지라도 좋은 나라가 될 수 있도록 개선할 수 있다는 인물이었죠. 이러한 정몽주의 역할에 대해 작가님과 아버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리고 정몽주란 인물은 학자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실제로는 정치가, 외교가의 이미지가 강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그래서 감독님이 처음 생각하신 것보다 더 강하고 역동적인 정몽주를 연기했어요.”

  -그래서 더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촬영할 때만 해도 주변에서는 제가 이렇게 세게 연기해도 되나 긴가민가했어요. 그런데 방송으로 나가자마자 작가님이 전화를 주셨어요. 고맙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장면을 그렇게 연기해줘서 고맙고, 앞으로 정몽주를 어떻게 이끌어가야할 지가 보인다면서요.”
 
  “역동적이고 혼란스러운, 그러나 강한 생명력의 정몽주를 연기한 덕분에 점잖은 왕의 이미지에서 조금이나마 탈피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제 연기 인생에서 최고 정점이라고도 할 수 있죠. 사실 정몽주를 연기한 뒤 박수칠 때 떠나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그러나 이제는 사극 전문 배우에서 더 나아가 다양한 작품, 다양한 배역을 맡았으면 하는 욕심이 생겼죠. 어필을 잘해서인지 곧바로 KBS ‘TV소설 별이 되어 빛나리’의 서동필이라는 악역을 주셨어요. 제 연기인생 첫 악역이죠.”
 
  -처음 해본 악역은 어땠나.
  “보통 연기를 하는 배우들은 악역이 훨씬 쉽다고 해요. 왜냐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니까요.(웃음) 상대적으로 정적인 인물들은 어디까지 드러내야할 지에 대한 배우의 계산이 굉장히 치밀하지 않으면 그 장면이나 한 회가 망가질 수 있어요. 정몽주라는 역할은 이루고 나서의 뿌듯함이나 보람은 클지 모르겠지만 하는 내내 받는 압박감은 컸거든요. 근데 그 ‘TV소설 별이 되어 빛나리’의 서동필 같은 악역은 더 화내고 덜 화내고 없이 그냥 내가 화내고 싶은 대로 화내고 소리 지르고 싶은 대로 소리 지르면 되는 역할이었어요. 이렇게 스트레스 안 받고 연기해보기는 처음이었죠.(웃음)”

  -특별히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나.
  “어떤 연기를 해보고 싶다기보단 연출자분들이 걱정하지 말고 아무 연기나 줬으면 해요. 아직 제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는 게, 제가 좀만 더 잘하면 배역 걱정하지 않고 아무 역이나 주실 텐데 아직도 ‘임호라면 이런 역이 잘 맞지 않을까?’ 생각하며 캐스팅하시는 것 같아요. 연출자들의 부담감은 이해하지만 이제는 믿어도 되니까 아무 역이나 주셨으면 좋겠어요.(웃음)”

  -어떤 배우로 남고 싶은가.
  “예나 지금이나 같아요. ‘저 배우라면 이 드라마를 믿고 봐도 되겠다, 이 영화를 믿고 봐도 되겠다’ 이런 생각이 드는 배우로 남고 싶어요. 배우로서 믿을 수 있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어요.”
 
  -당신에게 중앙대란?
  “내리를 지나서 자취방에 갈 때면 정말 숨어서 갔어야 했어요. 후배들에게 붙잡히면 밥 사달라 술 사달라 하니까요. 한번은 잘못 걸려서 친구랑 땡전 한 푼 없이 쫄쫄 굶기도 했지만 그만큼 제가 편한 선배라는 거니까 마냥 좋았죠. 낭만이 있었어요. 교수님과 잔디밭에 나가서 막걸리잔을 기울이다 보면 고학년 형들도 하나둘 함께했죠. 노래방도 없던 시절이라 둘러앉으면 아무데서나 같이 노래를 부르곤 했어요. 덕분에 나를 사유할 시간, 나를 돌아볼 시간이 됐던 것 같아요. 그래서 중앙대는 제게 추억이자 계기이고 버팀목이에요. 물론 연기 연습도 그것대로 열심히 했지만 중앙대가 제게 이런 시간을 주었기에 오늘날의 제가 있을 수 있지 않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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