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라스틴 했어요’를 기억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이미 그를 안다. LG그룹의 자회사인 ‘HS애드’에서 대표크리에이티브디렉터를 맡고 있는 그는 광고계의 대부로서 최전방에서 활약하고 있다. 그는 바로 이현종이다. 엘라스틴뿐 아니라 올림푸스의 ‘마이 디지털 스토리’, LG 명화 캠페인, 배스킨라빈스 닉네임 캠페인, 프로스펙스 워킹화 캠페인 등 수많은 대형 광고들이 그의 손끝을 거쳐 탄생했다. ‘소비자가 뽑은 광고상’ 대상 7회 수상과 ‘대한민국 광고상’ 대상·금상을 수차례 수상하고 뉴욕페스티벌, 애드페스트, 스파이크 아시아 등 국제대회에서도 심사위원을 맡는 등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기도 한다. 사람의 마음을 훔치는 마술사, 이현종 크리에이티브디렉터를 만나봤다.
 
 
 
광고란
아무것도 아닌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
 
생각, 감각, 설득의 열쇠
마침내 마음을 열다
 
 
  그는 소비자를 설득하는 비즈니스맨이면서도 인간 감성에 호소해 오감을 자극하는 아티스트다. 또한 광고주로부터 자신의 작품을 지켜내는 변호사이면서도 다양한 광고 재료를 조합해 보기 좋게 연출하는 요리사다. 때론 사람의 마음을 꿰뚫는 심리학자이기도 하고 거침없이 군을 이끄는 장군이기도 하다. 천의 얼굴을 가진 그의 직업은 ‘광고 크리에이티브디렉터’다.

  -광고 크리에이티브디렉터는 어떤 직업인가.
  “생각하고, 감각하고, 설득하는 사람이죠.”

  -너무 쉽게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왜냐면 우린 ‘15초’에 능하잖아요. 영화가 아니라 광고니까 짧고 굵게 말하는 데 익숙하죠. 자세히 설명하려면 몇 날 며칠 워크숍을 해야 해요.(웃음)”

  -좀 더 자세히 말해 달라.
  “광고의 본질적인 아이디어를 결정하는 총괄자 역할이에요. 쉽게 말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의미’를 생산해내는 기술자죠. ‘인간 존재를 핵심적으로 관통하는 것은 권력의지도 아니고 쾌락의지도 아니고 바로 의미의지이다’라고 말한 빅터 프랭클린의 말처럼 사람이 산다는 것은 결국 ‘의미’를 산다는 것이니까요.”

  -사람들은 의미를 사고, 크리에이티브디렉터는 의미를 파는 직업이란 건가.
  “그렇죠. 여기서 ‘산다’는 건 ‘Buy’이자 ‘Live’예요. 광고 자체가 ‘의미’를 만들어 내는 일이잖아요. 아무것도 아닌 것을 특별한 것으로 만들기이며,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만들기이며, 어제까지 아무 관계도 없던 것들을 지금부터는 없어선 안 될 관계로 만드는 일이니까요. 이렇게 만들어진 의미를 파는 게 제 일이죠.”
 
 
  밤을 꼴딱 새운 듯 피곤한 얼굴로 기자를 맞이한 이현종 크리에이티브디렉터는 빛이 잘 들어오지도 않는 어스레한 작업실 의자에 파묻혀 있었다. 간밤 ‘의미를 만드는 작업’과의 한판 사투가 있었던 걸까. 작업실은 수백 개의 인문 서적과 광고 잡지로 가득했다. 의미를 만든다라, 아리송한 표정을 짓자 그가 입을 뗐다. “샴푸로 ‘감다’ 일까요, 샴푸를 ‘하다’ 일까요?”
 
 
 
  -어법상으론 ‘샴푸로 머리를 감다’가 맞지 않나.
 
“그렇죠. 요즘은 ‘샴푸를 하다’라는 표현이 보편화됐지만, 지금으로부터 16년 전인 2000년도엔 샴푸는 무조건 ‘감다’였어요. 왜냐면 샴푸는 머리카락을 씻는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죠. 이러한 샴푸에 ‘화장품’이라는 의미를 부여한 게 ‘엘라스틴 했어요’라는 광고예요. 화장을 ‘하다’라고 표현하듯이 브랜드 이름을 대명사화함으로써 샴푸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한 거죠.”

  -너무 익숙해져서 그런가, 잘 모르겠다.
  “그만큼 16년 전 엘라스틴 광고가 우리 모두의 인식을 송두리째 바꿔버렸다고 할 수 있겠죠. 그때 당시엔 샴푸를 ‘하다’라는 건 굉장히 충격적인 표현이었어요. 샴푸를 ‘하다’고 표현하면 마치 화장을 한 것 같고 마사지를 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들잖아요. 머리카락을 소중히 가꿔야 할 피부처럼 표현해서 여성들과 공감대를 형성한 거죠.”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었나.
  “엘라스틴 광고 의뢰가 들어왔을 때부터 이야기해볼게요. 당시 ‘팬틴’이라는 프리미엄 샴푸가 ‘14일 후의 약속’이라는 카피를 달고 국내 샴푸 시장에 들어왔어요. 그동안 LG, 애경 등 일반 샴푸가 점유하고 있던 국내 시장에선 비상벨이 울렸죠. 부랴부랴 LG에서도 프리미엄 샴푸랍시고 엘라스틴을 만들었는데,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자해서 광고 의뢰를 맡긴 거예요. 제가 처음으로 크리에이티브디렉터라는 직함을 달았을 때였죠.”
 
  -그렇게 크리에이티브디렉터로서 첫 대형의뢰를 맡았다.
 
“처음엔 광고주가 의뢰한 내용대로 광고를 만들어 주려고 했어요.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아마 엘라스틴이라는 제품의 성능을 강조하라는 숙제였던 것 같아요. 탄력 있는 머릿결로 가꿔준다든지 그런 거요. 그런데 제가 좀 반항아적인 기질이 있거든요. 딱 보니까, 이건 숙제를 푸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문제를 풀어야 하겠더라고요.”

  -숙제가 아닌 문제를 푼다니.
  “숙제라는 건 광고주가 자기 나름대로 문제를 해석해서 내놓은 거잖아요. 그런데 광고주가 항상 천재는 아니거든요. 언제나 문제에 걸맞은 숙제를 내진 않아요. 팬틴에 대항해서 샴푸 시장을 장악하는 게 엘라스틴의 ‘문제’라고 한다면, 제가 생각했을 땐 그에 적합한 숙제는 단순히 ‘샴푸로서의 기능 강조’가 아닌 ‘부정(否定)의 힘을 통한 충격요법으로 샴푸의 존재 이유를 바꾸기’였죠.”

  -부정의 힘은 무엇인가.
 
“말 그대로 아니라고 하는 거예요. 2000년대 초반 여성들의 머리에 대한 인식은 이미 뷰티 그 이상이 되어가고 있었고, 그렇다면 샴푸는 여자들에게 샴푸가 아니라 하나의 화장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다면 이제, 엘라스틴이라는 샴푸는 단순한 샴푸가 아니라고 하는 거죠. 샴푸를 부정함으로써 엘라스틴이라는 제품은 더 큰 의미를 획득하게 되는 거예요.”

  -부정은 새로운 긍정의 시작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바로 그거죠. 그래서 엘라스틴 광고 초반에 보면 전지현이 ‘머리는(머리카락이 아니라) 피부다’고 말해요. 결국 엘라스틴은 머리라는 피부에 입히는 화장품이라는걸 말하는 거예요. 새로운 아젠다를 던져서 궁금증을 유발한 뒤 이어서 엘라스틴을 ‘했다’고 표현해 샴푸의 존재 이유 자체를 바꾼 거죠. 샴푸 시장을 전체 부정함으로써 한판 크게 붙어보자는 얘기예요.”

  -결국 성공적으로 광고를 내보냈나.
 
“웃긴 게, 다 된 밥이었는데 심의에 걸려서 무산될 뻔했었어요. 그 당시 심의가 얼마나 웃겼냐면 ‘엘라스틴으로 감았어요’가 맞는 표현이라서 ‘엘라스틴 했어요’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근데 그게 깨지면 전략이 아예 무산되는 거니까 죽자 살자 싸웠죠. 다행히도 결국 통과는 됐어요.(웃음)”

  -결과는 어땠나.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죠. 엘라스틴을 2월에 런칭했는데 연말이 되자 프리미엄 샴푸 시장 점유율을 12% 가까이 확보했어요. 1년 만에 12%를 점유한다는 건 아마 샴푸 시장에선 전무후무한 기록일 거예요. 엘라스틴 제작 측도 경사가 나서 고맙다고 술도 막 사주고 그랬었어요.(웃음) 워낙 강력한 광고라서 그 후로도 5년 동안 캠페인이 지속됐죠. 넘버원 브랜드는 이렇게 탄생했어요.”

  -현재는 ‘~하다’ 식의 광고가 굉장히 많다.
 
“브랜드 이름을 대명사화 하는 ‘쿠쿠 하다’ 같은 광고들 말이죠? 어떻게 보면 엘라스틴이 이런 접근방식의 원조가 된 건데, 영광스러운 일이지요. 쫓아가는 광고가 아닌 이끌어가는 광고가 돼서 아류를 탄생시키는 게 좋은 광고니까요.(웃음)”
 
 
  사실 거의 모든 광고를 잘 보면 작든 크든 다 이런 부정이 들어 있다. 선택의 준거를 바꾸는 일이기 때문이다. 맥주의 맛은 보리가 아니라 물이 결정한다고 하거나,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과학이라고 얘기하는 것이다. 소형차를 팔아야 할 땐 ‘Think small’이라고 말하며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주장하는 것이고, 옷을 팔 땐 은근슬쩍 이렇게 입는 게 트렌드라며 당신의 촌스러움을 꾸짖는 것이다. 부정의 힘이 얼마나 강하냐에 따라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임팩트가 결정된다. 매일 아침 옷 갈아입는 정도의 일상적인 부정은 별 충격을 주지 못한다.
 
 
  -또 다른 대표적인 광고작에 배스킨라빈스 캠페인이 있다.
 
“아, 배스킨라빈스 캠페인도 재밌죠. 기존 아이스크림 이름은 죄다 멜론맛, 딸기맛 뭐 이런 것들이었는데 아이스크림 이름을 영화 제목으로 지어보자고 제안했어요. 재밌잖아요. 그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엄마는 외계인’ 같은 이름을 추천하면서 광고주를 설득했었죠.”

  -흥미롭다. 그들을 어떻게 설득했나.
 
“초면에 제가 ‘안녕하세요, 이현종입니다’ 하는 게 기억에 남으세요, 아니면 ‘안녕하세요, 넙치입니다’ 하는 게 기억에 남으세요? 그때도 이렇게 이야기했는데, 여기저기서 웃음 소리가 들렸지만 많은 분이 이해해주셨죠. 왜 하필 넙치였는지는 잘 모르겠어요.(웃음) 그렇게 탄생한 게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배스킨라빈스 닉네임 캠페인이에요.”

  -그런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는가.
 
“어느 날 회의를 하고 있는데 어떤 인턴 사원이 ‘아이스크림 이름이 하나도 재미없어요, 드라마도 없고 스토리도 없고…’라고 중얼대던 게 들렸어요. 그 자리에서 그 친구의 말을 귀담아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제 머릿속에선 그 말이 떠나질 않는 거예요. ‘맞아, 왜 굳이 원료 중심의 이름을 써야 할까? 대중에게 더 의미 있는 이름으로 어필하는 건 어떨까?’란 아이디어가 떠올랐죠.”

  -작은 소리에 귀 기울인 게 결정적 열쇠가 됐다.
  “맞아요. 대중의 행태, 좋아하는 포인트, 트렌드를 잘 읽어내서 적합한 아이디어를 던지려면 내 몸 자체가 대단히 민감한 필터가 돼야 해요. 그런 건 어느 책에 나와 있는 게 아니잖아요. 나 자체가 주변의 사소한 말도 톡톡 걸러낼 수 있는 필터가 되는 거죠. 눈도 필터고, 귀도 필터고.(웃음)”
 

  -LG 명화 캠페인도 같은 맥락에서 탄생한 광고인가.
 
“LG 명화 캠페인의 경우, 정답보다는 오답을 제시한 사례에요. 우리 이웃들의 집에 TV가 있고 화장품이 있는 것이 뭐 그리 흥미롭겠어요. 사람들은 어느 부분에서 흥미를 느낄까 고민하던 차에 배경을 바꿔보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죠.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 있잖아요, 그 사람들 부엌에 전자레인지 하나 놓는다면?’”

  -재미있는 상상이다.
 
“광고의 기본적인 속성 중 하나는 말도 안 되는 결합을 통해 말이 되게 만드는 거예요. 매일 보는 현실을 보고 흥미를 느낄 사람은 없어요. 이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상상력이죠. LG 명화 캠페인뿐 아니라 LG 텔레콤 오주상사 캠페인, LG 전선 광고, 이자녹스 캠페인 등 광고는 이렇듯 치밀한 상상 끝에 탄생했죠.”
 

  -광고 하나를 만들더라도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참 많다.
 
“결국 본질은 생각하는 힘과 이를 잘 표현하기 위한 감각이에요. 덧붙여 광고주와 소비자를 설득하는 일까지. 처음에 말했듯이 이 세 가지가 광고의 전부죠.(웃음)”
 
 
  아이디어는 열린 마음에서 나온다. 가슴은 광장이어야 하고 머리는 놀이터여야 한다. 수많은 생각과 이미지를 거침없이 받아들이고 그것들이 내 안에서 마음껏 뛰어놀게 해야 한다. 하등의 관계없는 방법으로 융합했다 분열하기를 반복해야 하며, 이 생각과 저 생각이 연결되는 것을 즐기고, 그러다 그 생각들을 결혼시켜 그럴듯한 아이를 만들어 세상에 내놓는 일로 생각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삼류는 베끼지만 일류는 훔친다고 말한 피카소는 아주 영리한 크리에이터임에 틀림없다.
 
 
  -원래 뭐든지 그렇게 척척 해내는 크리에이티브디렉터였나.
 
“제가 LG에 처음 입사할 당시엔 크리에이티브디렉터라는 개념도 없었을 뿐더러 전 미디어파트에 있었어요. 잡지사나 신문사의 광고파트와 매일같이 입씨름해야 해서 별로 적성에 맞지 않았죠. 그냥 그만둘까 하던 찰나에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이 있더라고요. 몇 글자 적어주는 게 일이라니, 너무 쉬워 보였죠. 어차피 그만둘 거,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으로 2년 차 때 카피라이터 시켜달라고 떼를 썼어요. 노조도 만들어서 아주 큰 땡깡을 부렸죠.(웃음)”
 

  -대단하다. 그래서 카피라이터로 이직에 성공했나.
 
“네. 카피라이터는 조금만 써줘도 될 것 같고 그렇게 머리 싸매고 일 안 해도 될 것 같았죠. 처음엔 쉽게 쉽게 했는데 심지어 좋아해 주기까지 하시니 ‘뭐 이런 직업이 다 있나’ 했어요. 그야말로 ‘어떻게 하면 편하게 살까’ 이런 궁리 하다가 재주랑 잘 맞아 떨어지는 직업을 찾은 거예요. 그런데 너무 대충했는지, 사수한테 정말 많이 혼났어요. 회사를 그만두라고까지 하셨죠.”

  -대충하려다 혼쭐이 났다.
 
“사실 바로 정신 차렸어야 했는데, ‘그럼 그냥 그만두지 뭐’란 생각으로 친구 한두 명과 모여서 출판사나 차려볼까 하는 작당을 했어요. 그렇지만 애들이 무슨 돈이 있겠어요, 모여서 술만 마시다가 다시 뿔뿔이 흩어졌죠.(웃음) 그러다 정신 차린 건 ‘덴쓰’라는 일본 광고회사에 일주일 연수를 다녀오고부터예요.”

  -일주일 동안 무엇을 봤길래 정신을 차렸나.
 
“당시 90년대 초중반 한국 광고계는 거의 후진국 중에서도 후진국 수준이었어요. 일본과는 광고 수준이 비교가 안 됐죠. 그곳에서 돌아다니는 팸플릿 구해다가 디자인을 배우던 시절이었으니까요. 하여튼, 어떤 일본인 광고쟁이가 본인이 만든 메르세데스 벤츠 광고를 보여주는데, 그 순간 감전된 거예요. 제가 여태까지 했던 건 정말 애들 장난이구나 싶었어요. 하나의 문학작품같이 굉장했죠. 그 일주일이 많은 변화를 줬어요. 그 후로 광고 공부를 무슨 고시 공부하듯 했어요.”

  -되는대로 살아오다가 의지적 인간이 됐다.
 
“완전히 빠졌죠. 새벽에 정신을 차려보면 혼자 남아있기도 했어요. 알량한 직업이긴 하지만 뭔가를 해내려면 한 번쯤은 모든 인연을 끊고 계룡산에 다녀오긴 해야 하더라고요.(웃음) 경험보다 좋은 스승은 없다고, 예전에 이직 권유하던 사수도 절 칭찬하기 시작하고 여기저기서 절 찾아주기 시작했어요.”

  -2005년도에 ‘웰콤’ 부사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꾸준히 히트를 치다 보니 스카우트돼서 간 거예요. LG 같은 대기업이 아닌 독립광고대행사들이 어떻게 경쟁에서 이기고 버텨왔는지도 볼 겸 웰콤에 가서 여러 가지 배웠죠. 당시 SM5, SM7, CASS 등 자동차광고와 맥주 광고를 주로 많이 했어요. 웰콤에 있다가 제 광고회사를 차리기도 했어요. 제 이름 ‘현종’을 영어로 한 ‘와이즈벨’이란 회사요. LG 명화 캠페인 등이 당시에 제작된 광고예요. 지금은 LG에서 하도 귀찮게 해서 다시 들어와 있는 상태고요.(웃음)”

  -지금 작업하고 있는 건 뭔가.
 
“지금은 해외에 진출한 LG 글로벌 쪽도 도와주고 있지만, ‘OVER THE RAINBOW’라는 회사를 실험적으로 조직했어요. 기존의 광고회사는 다 만들어진 제품을 효과적으로 홍보하는 데 그쳤다면 이젠 제품 제작 첫 단계부터 관여하는 거죠.”

  -제품 제작이라면 광고주의 영역까지 다룬다는 건가.
 
“그렇죠. 광고 일을 26년간 했는데, 하다 보니 광고뿐 아니라 문제의 본질을 보게 되더라고요. 사실 문제를 들여다보면 제품 자체가 잘못돼 있는 걸 팔아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아요. 요즘은 아이폰처럼 제품보다 더 좋은 광고는 없거든요. 제품이 완벽하다면 광고는 ‘하는’게 아니라 자연스레 ‘해지는’거예요. ‘Productising’이죠.”
 
  -Productising이 뭔가.
  “‘Product’와 ‘Advertising’을 결합한 말이에요. 프로덕트,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의 영역 구분을 없애서 상품기획부터 시작해서 브랜드네이밍까지 모든 프로세스에 관여하는 일이죠. 화장품 브랜드 ‘후’가 그렇게 탄생했죠. 멋지지 않나요? 제대로 성공한다면, 아마 최초일걸요.(웃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스치듯 왔다가는 사인들을 주워 모으다 보니, 평범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다 보니, 뒤집어서 상상하다 보니, 문제의 본질을 보다 보니, 어느새 이현종은 사람의 마음을 훔치는 마술사가 돼 있었다.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본 사람이야 유사 이래 얼마나 많았겠는가. 하지만 그것이 위대한 ‘사인(Sign)’이었음을 알아차린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었다.
 
 
  -당신에게 중앙대란?
  "모든 일을 그렇게 느끼는 편이긴 한데, 운명이 손을 잡고 이끄는 곳으로 왔더니 이곳이었죠. 81년도에 들어오자마자 중대신문에 입사했는데 그땐 원고지에 초고 쓰고 조선일보까지 가서 활자로 윤전기를 돌리던 시절이죠. 당시에 헤드라인 뽑고, 기사 쓰면서 익혔던 감각들이 결국은 카피를 쓰고 광고 일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어요. 중대신문도, 중앙대도, 제 운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해요. 운명적인 어떤 힘이랄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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