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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너도?’, 그저 웃을 수 밖에…
권희정 기자  |  kkhj41@cau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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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9.25  20: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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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누구 좋아해?”는 낯선 이와의 첫 만남으로 인한 어색함을 쉽게 풀 수 있는 질문이다. 상대의 취향을 깊이 고려하지 않아도 쉽게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으니 말이다. 그만큼 팬덤 문화는 우리의 일상 속에 깊숙이 파고들어 와 있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종종 자신에게 불쾌한 상황을 초래하기도 한다. 자칫 “너 빠순이야?”라는 경멸조의 질문으로 되돌아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국에서 팬과 빠순이는 일상과 경멸을 넘나들며 우리 곁에 자리하고 있다. 팬 뒤에 빠순이란 꼬리표가 따라붙은 원인을 찾기 위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만나봤다.
 
  잘못된 편견에 의한
  빠순이란 마녀사냥
 
  아무런 이유는 없지만
  그냥 널 욕하고 싶어

  주홍글씨가 새겨진 이유
  팬 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일상은 보편적인 일상과는 다르다고 여겨진다. 때론 이러한 다름은 틀림으로 받아들여졌다. 윤명희 교수(숭실대 정보사회학과)는 확고한 애호 자체를 비정상적이라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고 말한다. “무언가에 빠져있다는 것은 정상적인 생활에서 벗어났다는 의미로 많이 쓰여요. 특정한 것에 너무 집중해 있기에 일상생활을 못 하는 일탈적인 상황에 놓여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거죠.” 비정상이라는 시선은 팬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했다.

  하지만 비정상이란 잣대가 모든 애호에 대해서 엄격하게 적용되진 않는다. “무언가에 빠진 사람 모두를 빠순이라고 부르지 않잖아요. 자의적으로 문화 간에 위계를 나눠 고급문화에 빠진 이들은 애호가나 마니아라며 정상범주에 넣죠. 반면 저급문화로 분류된 대중문화에 빠진 이들은 빠순이라며 비하하는 거예요.” 윤명희 교수는 문화에 위계가 있다는 인식이 팬을 빠순이로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대중문화 팬은 저급문화의 향유자로 치부돼 더욱 쉽게 비정상이란 낙인이 찍혔다.

  팬덤 문화가 사회적으로 크게 대두된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와 맞물려 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형성됐다는 의견도 있었다. 김성윤 강사(사회학과)는 1990년대 락·흑인음악 등을 즐겨듣던 신세대 남성들과 아이돌 문화 사이의 긴장이 있었다고 말했다. “한 아이돌 가수가 솔로로 데뷔하며 자신은 락음악을 하겠다고 했어요. 그때 신세대 남성들과 접점이 붙으면서 그를 무뇌충이라 부르게 됐죠. 이러한 아이돌에 대한 혐오와 맞물리면서 그들의 팬에 대해서도 빠순이라며 공격을 하게 됐어요.”

  김성윤 강사는 IMF 직후의 시대적 분위기 또한 팬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데 큰 몫을 했다고 말했다. “전통적인 노동소비 관념에서부터 팬 활동은 굉장히 비생산적인 활동으로 치부됐어요. 그런데 IMF 이후라는 사회경제적인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더욱 비난이 가해졌죠.” 생산성을 강조하는 시기에 비생산적이라 치부되는 팬 활동은 멸시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팬이라서? 여자라서!
  빠순이란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팬은 보통 여성으로 표상된다. 윤명희 교수는 그 원인으로 젠더에 따른 위계 구분을 꼽았다. 생산자는 남성, 소비자는 여성이란 구분에 의해 문화를 소비하는 팬층도 여성으로 표상됐다는 것이다. 그는 사회적 요인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여성들이 대중문화에 빠져들기 쉬운 측면도 있다고 봤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평등한 위치에 있어요. 그런 상황에서 대중문화는 현실에서 충족되기 어려운 부분이 쉽게 실현되는 상상의 영역이기에 쉽게 빠져드는 거죠.”

  이처럼 팬층은 여성으로 상정됐고 그들은 여성이기에 더욱 쉽게 비난받아 ‘빠순이’가 됐다. 구자순 교수(한양대 정보사회학과)는 기성세대들의 가부장적 사고가 여성 팬에 대한 인식을 부정적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한국사회는 가부장적인 권위주의에 물들어 있기에 젊은 여성들에 대한 통제와 제재가 강해요. 이런 맥락에서 여성들이 팬 활동을 하는 것을 빠순이라며 비하하게 된 거죠.” 그는 교육을 중시하는 유교적 사상까지 결부돼 공부할 시간을 뺏는다고 여겨지는 팬 활동을 터부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덧붙였다.
 
 
  김성윤 강사는 가부장적 규범을 따르지 않는 여성에 대한 낙인찍기는 항상 있어왔다고 말했다. 60년대엔 팝가수의 내한공연 중 여성 팬이 속옷을 무대 위로 던졌다는 헛소문이 돌 정도였다는 것이다. “그런 소문이 돈 이유는 남자 스타에게 열광하는 여성들에게 낙인을 찍기 위해서였어요. 이러한 낙인은 신여성, 양공주, 모던걸 이렇게 쭉 이어져 왔죠.” 팬도 이런 맥락에서 빠순이로 낙인 찍혔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남성이 팬일 땐 여성 팬의 경우와는 다른 양상을 띠었다. 윤명희 교수는 남성 팬을 지칭할 땐 빠돌이가 아닌 삼촌팬이란 단어가 더 많이 쓰인다고 지적했다. “빠순이는 철없고 비정상적인 어린 여성들을 지칭하는 의미로 쓰여요. 반면 삼촌팬은 친근하고 어른스러우면서도 대중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내포하죠.” 삼촌팬이란 단어는 성별에 따른 사회적 시선의 차이를 나타내주는 지표인 것이다.

  내가 빠지겠다는데 넌 좀 빠져
  팬이 빠순이라 비난받는 가장 큰 원인은 비정상적이란 인식 때문이다. 하지만 윤명희 교수는 팬을 비정상이라고 규정지을 수 없다고 말했다. “어떤 한 분야에 대한 애호라는 점에서 팬과 전문가 사이의 경계가 없다고 봐요.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 지을 수 없는 거죠. 팬이라고 해서 일상생활을 제대로 못 하진 않거든요.” 비정상이라 분류되는 빠순이 또한 달리 보자면 그 분야의 전문가였다.

  팬은 비정상적이지 않으며 더 이상 아이돌 문화를 비판하던 시대적 상황에 얽매여있지도 않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비난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성윤 강사는 그 이유로 빠순이라는 단어 자체를 꼽았다. “때로는 언어가 우리 사고를 지배하기에 현상이 언어로 정립돼서 굳어지면 오래가기 마련이에요. 팬 또한 빠순이란 비하적인 언어로 규정됐기에 계속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거죠.” 현재까지 이어지는 빠순이란 비난은 실체가 있기보단 예전 인식의 답습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구자순 교수는 무언가에 대한 애호는 당연하다고 말한다. “개인들이 자신의 취향·취미를 찾고 향유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고 존중받아야 해요. 문화적 측면에서도 팬 없는 대중문화는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팬덤 문화를 더욱 긍정적으로 바라봐야 하죠.” 특히나 팬덤 문화의 경우 대중문화를 이끄는 주축이기에 비난하기보다는 외려 장려돼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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