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그 들리지 않는 소리를 위하여…
  • 이효석 기자
  • 승인 2016.09.25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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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스 피카르트 저/최승자 역|까치(까치글방)|2010년 07월
말들이 쏟아집니다. 우리는 주워 담을 수도 없을 만큼 쏟아지는 말의 폭포수 속에 살아가죠. 저마다 한마디씩 거들며 확성기를 틀고 싶어 하기도 합니다. 일부 언론은 사안을 이리저리 왜곡하며 말들을 만들어내죠. 추문과 소문은 뒤엉켜 하나의 거대한 갈등의 실타래를 만들어냅니다. 말의 홍수. 어쩌면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나타내는 적절한 표현 중 하나죠.

  한마디라도 거들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도태될 듯합니다. 사회 이슈에 대해 짧은 몇 토막의 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트위터라는 140자의 세계에서 그 짧은 말 한마디 더 보태지 않으면, 무지하거나 사리에 어두운 사람으로 보이기 일쑤죠. 이렇다 보니 말 잘하는 기술도 주목받습니다. 담고 있는 콘텐츠보다는 이를 전달하는 스킬 자체에 대한 관심이 더 높죠. 스피킹 능력은 곧 생존 능력으로 치환되곤 합니다.

  너도나도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소통이 중요하다며 호통을 칩니다. 아마도 그런 소통이 불통에 불과했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 그런 윽박지름은 자신의 의견을 들어달라는 고집이거나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 이를 향한 고함에 불과할 때가 잦죠.

  막스 피카르트는 반대로 침묵의 가치에 대해서 말합니다. 저자의 대표작인 『침묵의 세계』는 침묵과 사랑, 침묵과 역사, 침묵과 시간 등 침묵이 다른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존재하는가를 이야기하는 철학 에세이입니다. 저자는 사랑은 그 자체보다도 침묵으로 더 잘 표현된다고 말합니다. 또한 침묵은 과거, 현재, 미래를 통일하는 것이며 사랑, 죽음, 삶 등 모든 것 이전에 이미 존재했고 이 모든 것 안에 있다고 말하죠.

  태초엔 침묵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 책은 그렇게 말하고 있죠. 신은 태초에 말씀으로 세상을 만들었다지만 이 책은 그 이전에 이미 침묵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침묵은 말하기를 포기하기 이전의 언어입니다. 완전체인 침묵에서 불완전체인 말이 태어났다는 거죠. 완전체이기에 침묵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습니다.

  과거로 돌아가 볼까요? 중세 시대 특정 시점에 일반 대중들이 사용했던 단어의 수는 고작 600단어 정도라고 합니다. 과연 그렇다면 당시 중세인들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없어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을까요? 아니면 한마디마다 내뱉어지는 말에 경외감과 두려움과 황홀함을 느꼈을까요? 아마도 후자가 중세인의 망탈리테였을 것이라는 게 사가(史家)들의 기록입니다.

  반면에 오늘날의 도시는 출처 없는 말들과 소음을 찍어대는 공장을 연상케 합니다. 책의 표현대로라면 “도시는 침묵의 마지막 잔해까지도 쓸어내리려고 하는 것” 같죠. 귓전을 때리는 클랙슨 소리, 실외기가 뿜어대는 윙윙거림, 거리에서 울려 퍼지는 시끄러운 유행가 앰프 소리, 저잣거리에서의 이죽거리는 말들. 저자는 확실히 하나의 세계로서의 침묵은 파괴됐다고 말합니다. 소음이 모든 것을 차지했고, 말들은 가치를 잃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죠.

  우리는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 더 큰 소음을 찾기도 합니다. 소음을 피하고자 듣지도 않는 라디오 음량을 키우고, 세상의 잡음을 차단하기 위해 고막이 찢어질 듯한 강렬한 사운드의 음악을 듣죠. 반대로 고요한 밤의 침묵이 두려운 사람은 보지도 않는 TV를 켜놓은 채 잠에 들곤 합니다. 낮의 소음에 비해 밤의 침묵이 너무 낯설기 때문이죠.

  사람들은 침묵에 대해 오해합니다. 분명 침묵한다고 해서 말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침묵한다고 해서 화나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침묵하는 이유가 잘 몰라서이기 때문만도 아닙니다. 침묵은 때로는 말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합니다. 침묵은 때로는 ‘마지막으로 한번만 참아보자’는 분노의 다짐을 내포하기도 합니다. 잘 알아서 침묵하기도 합니다. 그 사안에 복잡성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함부로 말할 수 없을 때도 있죠.

  오늘 하루만큼은 가을 늦은 밤 꽤 긴 침묵을 오롯이 느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잊고 있던 바람 소리가, 떨어지는 낙엽 소리가, 잠자고 있던 영혼의 속삭임이 들릴지 모르죠. 이 가을이 가기 전에 지독한 침묵 속 손가락을 스치는 책장 넘기는 소리를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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