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수능을 네 번 봤다. 현역이었던 2010학년도를 시작으로 재수 시절의 2011학년도, 중앙대를 다니면서 치른 2012학년도, 그리고 군대에서 틈틈이 공부했던 2014학년도까지. 정말 끈질기게도 대학에 목을 맸다. 오죽하면 군대에서 근무를 서면서까지 ‘수능특강’을 펼쳐놨을 정도니 말이다.

  한국에서 최고의 대학에 입학하면 모든 게 끝인 줄 알았다. 입학하는 그 순간부터 나의 미래는 보장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좋은 직장과 화목한 가정, 평화로운 노후까지. ‘우리 아들은 K대 가겠지’라고 말하는 K대 출신 아버지의 말을 들으며 항상 그렇게 생각했다. K대가 모든 것을 해결해줄 거라고.

  2년 동안 기자생활을 하며 바라본 중앙대의 모습도 이와 달라 보이지는 않는다. 2018년 100주년을 기준으로 세운 비전을 바탕으로 2008년부터 시작된 일련의 학부와 대학원 구조개편, 행정직제개편, 신캠퍼스 사업 등. 이는 결승점을 향해 무조건 달리기만 하는 경주마를 보는 것만 같다. ‘명문대학’이라는 목표를 얻으면 모든 것이 보장될 것이라고 믿는 경주마 말이다. 세계적인 명문대학을 만들겠다는 ‘CAU 2018+’, 좀 더 구체적으로 ‘QS 세계대학평가’ 100위권에 들겠다는 목표를 세운 ‘New Vision’까지. 오로지 목표는 명문, 최고, 우등한 대학이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혼란에 빠졌다. 다니던 학과가 사라지고 서울캠은 발 디딜 틈 없이 과밀화됐고 운동공간이라는 기본적인 여건도 갖춰지지 않았다. 도대체 대학은 무엇을 위한 공간이고 무엇을 위해 대학을 다니는지 의문이 생긴다. 이렇게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학교는 ‘명문대학’을 위한 것이라고 유야무야 모든 일을 넘어간다. 그렇게 학생들은 이런 부조리를 어쩔 수 없이 감내할 것을 강요당하고 있다.

  그 사이 학생들은 분열됐고 서울캠과 안성캠, 운동권과 비운동권, 인문·사회와 경영·공대의 이분법적인 경계가 생겼다. ‘대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특정 단대가 희생할 수도 있는 거 아니냐’, ‘운동권은 분란을 일으키고 학교의 발전을 저해한다’, ‘명문대학을 위한 마음에서 저지른 범법 행위는 용서할 수 있는 거 아니냐’는 일부 학생들의 말. 대학의 발전이 곧 자신의 발전이라고 믿는 듯해 보였다. 대학의 발전을 넋 놓고 지켜보며 학생들은 자신의 목표마저 잊어버린 것만 같다.
 
  기자는 K대에 가길 포기했다. 자의든 타의든 포기하고 나니 그동안 ‘왜 그렇게 K대를 욕망했을까’라는 질문만이 남았다. 질문에 대한 답변을 생각하다보니 신기하리만큼 ‘나’라는 존재는 없었다. 단지 아버지의 욕망을 위해, 그리고 더 크게는 나의 미래를 위해. 하지만 K대에 입학한 후의 모습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어떤 생각으로 살고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삶을 살지는 전혀 없었다. 그저 미래가 밝을 것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망상만이 있을 뿐이었다.

  지금 중앙대는 어떤 ‘중앙대’를 그리고 있는 걸까. 구성원들이 만족하며 다니는 대학, 학생들이 자신의 잠재능력을 맘껏 꿈꿀 수 있는 대학, 졸업생들이 자랑스러워하는 대학이 QS 세계대학평가 100위에 들어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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