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는 거북이를 사랑했고 거북이도 토끼를 사랑했다.”

 어린 시절에 본 이솝우화에서 토끼는 게으르고 거북이는 성실한 이미지였다. 토끼와 거북이는 달리기 경주를 벌였다. 경기 도중 낮잠을 잔 토끼는 느리지만 끈기 있게 경기에 임한 거북이에게 지고 만다. 우리의 전래동화에서도 토끼와 거북이의 악연은 계속된다. 거북이는 토끼의 간이 필요한 상황에 놓이자 토끼를 속여 용궁으로 데려간다. 거북이의 속셈을 안 토끼는 간신히 용궁을 탈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좀 더 성장한 뒤에 들은 이야기는 내가 알던 것과 달랐다. 토끼가 거북이를 위해 경주에서 일부러 양보한 것이고 거북이는 토끼에게 자극을 주기 위해 더 열심히 달렸다는 것이다. 용궁에 갈 때도 토끼는 자신의 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거북이를 위해 희생하려고 용궁으로 갔고, 거북이는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토끼를 탈출시켜주었다는 것이다. 나는 토끼나 거북이라는 동물에 대해 편견을 가지게 한 전자의 이야기보다는 서로를 사랑한 후자의 이야기를 더 좋아한다. 사랑이 편견보다 서로 배려하고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한 학기 수업 중에서 첫 시간과 마지막 시간의 가장 큰 차이는 설렘의 차이이다. 첫 시간에 교수와 학생들은 서로 자기를 좋아해 줄 사람을 만나길 원하면서 설렘을 가지고 수업에 들어간다. 그러나 학기가 끝나면 서로 좋아하는 관계도 형성되지만 실망하는 관계도 형성된다. 교수와 학생이 서로 좋아하는 것은 토끼와 거북이가 사랑한 것처럼 서로 도와주고 격려하였기 때문이다. 서로 실망하는 것은 서로에 대한 기대가 왜곡되거나 편견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편견과 왜곡이 그다지 멀리 있는 것 같지 않다. 학기 초와 달리 학기 중 혹은 학기 말이 되면 학내의 인터넷 공간 속에서 토끼와 거북이에 대한 편견과 왜곡과 같은 것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대학에서 교수와 학생관계는 더 이상 학문적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만 볼 수 없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학생 혹은 수요자 중심의 교육으로 대학교육이 이루어질 수도 없다. 서로를 도와주고 격려해주는 동반자 관계로 변하고 있다. 대학은 연구와 교육이 병행되어야 하고, 학업성적과 강의평가가 공존하고, 학문과 취업이 조화롭게 강조되어야 한다. 교수와 학생의 관계도 이러한 복합적인 대학교육의 이슈 속에서 자신의 목적만을 추구하는 배타적인 관계보다는 서로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우선되어야 한다.

 한 학기가 시작되었다. 한 학기의 수업은 교수와 학생이 공동의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여정이다. 이제 서로를 그리워하며 외로워하는 가을도 시작된다. 교수와 학생도 한 학기 동안 토끼와 거북이처럼 좀 더 서로의 외로움을 달래주고 도와주길 바란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서로 그렇게 믿어주길 바란다. 그러면 이번학기가 끝났을 때 학기 처음에 설렘으로 만났던 그 느낌을 간직하고 교수와 학생들은 토끼와 거북이처럼 서로를 사랑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강인구 교수
사범대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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