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의 트라우마가 남긴 것
  • 중대신문
  • 승인 2015.06.08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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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각각▶ 군부심
술자리에서 자신의 힘든 군대 생활을 자랑하는 복학생 선배는 어디를 가나 한 명쯤 꼭 있다. 마치 군대를 다녀온 경험이 특권인 양 대단한 자부심을 느낀다. 그들은 군 가산점제 폐지의 수혜자는 여성이라며 여성들을 혐오하는 양상까지 보인다. 게다가 군대를 갔다 왔다는 특권을 내세우며 군대를 가지 않거나 공익으로 간 남성들에게 배타적이다. 그들의 언행을 못마땅해 하는 이들은 말한다. “군부심 부리네.” 군부심은 무엇이며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서동진 교수(계원예대 융합예술학과)와 김성윤 강사(중앙대 사회학과)는 군부심을 ‘여성혐오’와 ‘피해의식’이라는 키워드로 분석했다.
 

▲ 일러스트 전은빈씨

 
익숙해진 노예는
자유인을 비웃는다
정신 승리와 보상 심리 작용해
 
  대한민국 남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그 지겹다는 군대 이야기를 나눈다고 쳐보자(그래도 군대+축구 이야기는 아니니 어느 정돈 들어줄 만 할 것이다). 여기서 일종의 게임이 시작된다. 게임의 규칙은 둘 중 하나다. 누가 더 빡셌는가, 또는 누가 더 꿀을 빨았는가. 평범한 자본주의 국가에선 ‘비용-편익’ 관점에 따라 누가 더 편한 생활을 했는지를 두고 자랑질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온갖 신기한 일로 가득한 이곳에선 게임 규칙이 정반대다.
  “지하철 공익이 웬만한 현역보다 빡세다구.” “말해 뭐해. 전경은 하루하루가 실전이야.” “너네도 들어봤지? 요즘 해경은 도끼 든 중국 해적이랑 싸운다니까.” “‘진짜 사나이’ 봤지? 내가 그 메이커 부대 나왔잖아.” “전쟁 나면 누가 제일 먼저 죽겠어? 우리 수색대지.” “나? 해병대~” … 일동 침묵.
 
진짜 노예를 가리는 병리적 게임
  이들이 군복무 기간에 (특히 초기에) 뇌까리던 격언이 하나 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사람 일은 참으로 신기하다. 즐기는 연기를 하다보면 어느 순간 정말로 즐기게 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힘들고 싫어도 ‘즐기자’는 마음가짐 하나로 버텨낼 수 있다는 건 마법 같은 일이다. 그런데 모든 마법에는 대가가 따른다. 힘든 일이 더 이상 힘들지 않아졌지만, 어느 순간부턴 마땅히 싫어해야 할 일이 요상하게도 즐거운 일로 탈바꿈해버리기 때문이다. 피할 수 없어서 즐겼던 것뿐인데, 자신을 괴롭혔던 바로 그 관습과 제도가 애정의 대상이 되는 꼴이다. 그것도 부지불식간에.
  ‘군부심’이란 바로 이 모드 전환에서 나오는 셈인데, 결국엔 르로이 존스의 유명한 촌철살인과 다를 바가 없어진다. “노예가 노예로서의 삶에 너무 익숙해지면 놀랍게도 자신의 다리에 묶여있는 쇠사슬을 서로 자랑하기 시작한다. 어느 쪽의 쇠사슬이 빛나는가, 더 무거운가 등. 그리고 쇠사슬에 묶여있지 않은 자유인을 비웃기까지 한다.” 군부심 부리는 사람들의 습성과 놀랍도록 비슷하지 않은가.
  군부심은 병리적 현상에 가깝다. 대부분 군부심은 말이 좋아 무용담이지 ‘내가 나온 부대가 제일 빡세고 네가 나온 부대는 죄다 보이스카웃’이라는 심리로 이어지면서 허세와 다를 바 없는 수준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즉, ‘나 힘들었어’란 피해의식이 ‘내가 제일 힘들었어’라는 허세로, 나아가 ‘나만 힘들었어’라는 과대망상으로 전이되는 건 순식간이라는 이야기다.
  게다가 군부심의 끝판왕 ‘해병대+부심’까지 등장하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어진다. 해병대 힘든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모두가 다 안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해병대부심은 군부심의 정점에 선다. 그래서 종종 ‘여성 = 미필 < 공익 < 사병 < 특수부대 < 해병대’로 이어지는 모종의 서열의식이 만들어지곤 한다. 여기서 합리적인 의심을 한 번 해볼 법하다. ‘군대 갔다 오면 사람 된다’는 시쳇말을 패러디해보면 이런 식이다. 말 그대로 군대 안 갔다 왔으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고, 심지어 군대 갔다 온 그 ‘사람’들조차도 결국엔 다 같은 사람은 아니라는 이야기 아닌가.
  그래서 우리 사회 곳곳에선 이 ‘사람’들이 사람 아닌 자들을 사람으로 만들겠다는 블랙 코미디를 연출한다. 이를테면 군사문화에 물든 나머지 캠퍼스 곳곳에서 ‘다나까’ 말투를 강요하는 일부 몰지각한 선배들이 그런 경우다. 이 정도면 정신분열증에 가까울 지경이다. 지금이 어느 때고 여기가 어딘지…. 제 스스로 시공간 구분 능력이 없다는 걸 폭로한 셈이니 말이다. 이런 증상이 심하면 그들은 자신이나 타인을 해할 위험이 높아진다. 때로는 교통사고 발생률보다 이런 인간들에 의한 사건사고 발생률이 더 높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정신 승리와 보상 심리의 이율배반
  중증까진 아니더라도, 대체 왜 이런 병리적 현상이 나타나는 걸까. 적잖은 사람들은 군부심을 일컬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즉 이제는 널리 알려진 트라우마에 의한 행동 장애 증후군이라고 진단한다. 즉, 겉으로는 권위주의와 마초이즘으로 무장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와 같은 허장성세의 이면에는 군 생활 동안 체득한 트라우마에 대한 보상심리 체계가 작동한다는 것이다.
  알다시피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강제로 징집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군 생활 동안 있었던 신체적이고 정신적인 고통을 다른 감정으로 바꿔 내거나, 그러한 고통에 대해 다차원적인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라 할 것이다. 정신 승리. “아무리 빡센 일도 껌이었지!” 물질적 보상. “2년 동안의 시간을 날렸으니 취업 전선에서 가산점이라도 받아야겠다.” 정신적 보상. “너희들을 위해 영토를 지켰으니 나를 존중하고 경외하여라.”
  사실 정신 승리와 보상 심리는 비슷하면서도 다분히 이율배반적인 논리 체계다. 정신 승리는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해 피해 사실을 망각하는 전략이고, 보상 심리는 바로 그 피해로 인한 상처를 보듬어달라는 요구에 해당한다. 두 논리 모두 군 생활에 대한 피해의식에서 비롯된 셈인데, 그 결론은 상반된다. 정신 승리가 ‘난 괜찮아’라는 식의 허세로 국한된다면, 보상 심리는 ‘안 괜찮으니까 보상해줘’라는 박탈 감정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군부심이란 ‘징병제로 인한 피해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정신 승리와 보상 심리라는 이율배반적인 감정 표현과 행동’으로 간주될 수 있다.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 선을 넘을 때 발생한다. 적당히 부리면 될 것을 정신적 보상 청구를 과하게 한 나머지, 타인을 문화적으로 (또는 상징적으로) 지배하려 들 때 꼴불견으로 전락하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특히나 군사 문화 특유의 권위주의나 마초이즘에 동일화되어 또 다른 가해자가 돼버리는 피해자들을 보노라면 그 흔한 동정조차 보내기 어려울 지경이다. 비웃음을 넘어선 경악 수준이다. 정말로, 군대에서 자행되는 인권 침해, 따돌림, 억압과 폭력 등을 피할 수 없어서 즐긴 꼴이지 않은가.
  국가를 위해 충성했다는 것, 그리고 새파란 2년의 청춘을 헌납했다는 사실들은 해당 개인들에게 피할 길 없는 피해의식을 선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군부심은 그러한 피해의식을 이상한 방식으로 변환시킨 결과물에 불과해 보인다. 정신 승리란 결국 자기 기만의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고, 보상 심리란 것도 그것이 작동하면 할수록 사회 전체를 병영으로 만드는 역설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분노와 박탈감이 향하는 표적은?
  우리는 군부심 같은 우스꽝스러운 문제가 징병제 때문에 나타난 기괴한 현상이란 점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징병제가 휴전 상황과 분단 현실에서 연유했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이런 시대적 환경에서 개인들은 국가의 동원으로부터 자유롭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군부심으로 표상되는 정신 승리와 보상 심리가 일정한 피해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우리들이 피해자로서 가져야 할 정당한 분노와 박탈감은 어디를 향해야 하는 걸까.
  가끔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국가 권력으로 인해 개인들이 피해를 받고 있는데, 종종 우리 개인들은 다른 개인들과 지지고 볶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게 아닐까. 이제는 우리 선배들로부터 물려받은 가르침을 슬슬 갈아엎을 때가 아닌가 싶다. 무엇이 옳은 길일지는 저마다 셈이 다르겠지만, 적어도 불가피한 고통을 즐기는 ‘노예’가 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김성윤 강사
중앙대 사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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