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이미 그를 알고 있다. 아니, 그보다는 그의 시를 알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수업시간에 교수님 얼굴만큼 페이스북을 자주 보는 이들이라면 그의 시를 못 봤을 리 없다. 빳빳한 종이에 투박한 손글씨로 쓰인 그 시 말이다. 힌트가 더 필요하다고? 제목은 ‘한 스푼’. 그 아래로 ‘누군가 나에게/아메리카노를 주었어/나는 쓴 커피를 안 좋아하는데/시럽은 없고/그냥 먹기에는 너무 써서/니 생각을 넣었어’라며 재치를 듬뿍 담은 내용이 쓰여 있다. ‘아!’ 당신은 이제야 타임라인 사이에서 코웃음 치게 만든 그 시가 생각이 났다. 문득 궁금해진다. ‘그래서 누가 썼어?’ 누가 썼냐고? 중앙대 출신의 SNS 스타 작가, 최대호 동문이 썼다.
 
 

 

 
 
그 시간, 그 장소에서 시작된
그의 시 세계
 
위트에 반전을 더했으니
읽어보시집
  
“인터뷰 요청을 꽤 받았는데 우리 학교는 나를 한 번도 안 찾는 거예요. 엄청 아쉬웠죠. 그런데 이젠 그것도 어제일이 됐네요.” 스타는 신비감으로 먹고산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야 대중의 상상력과 콩깍지가 착 달라붙어 자신의 가치가 더욱 높일 수 있다. 특히나 인터넷, SNS 스타는 외모까지 꽁꽁 감춰져 더욱 그렇다. 그러나 그는 다르다. 오히려 자신을 드러내고 더 많은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한다. 『읽어보시집』의 작가이자 SNS 시인인 최대호 동문. 어떤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이리도 우리를 만나고 싶어 했을까.
 
-최대호 동문을 인터뷰하러 간다고 하니 주변에서 ‘그분 중앙대야?’하고 묻더라.
“다들 시를 통해서 저를 만나니까 저에 대해선 잘 모를 수 있죠. 그나저나 제 인터뷰 기사는 1면에 나가나요?”
 
-(당황) 1면은 아니다.
“에이, 크게 좀 실어줘요. 한 번밖에 안 들어가잖아요. 같은 학교니까 중앙대 학생들이 많이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학교를 위해 글도 쓰고 싶고, 학생들이 보고 싶어 하면 만나서 얘기도 하고 싶어요.”
 
-중앙대에 굉장히 애착을 가지고 있다.
“저는 중앙대가 정말 좋아요. 중앙대에서 배운 게 지금 시를 쓰는 데 도움이 되는 건 아니지만 중앙대를 다니지 않았더라면 시를 쓰지 않았을 것 같아요. 편입 안 하고 원래 다니던 대학을 다녔으면 그냥 졸업하고 전공 살렸을걸요.”
 
 
 
 
그 시간, 그 장소. 우리 삶의 모든 일은 ‘그’ 지점에서 일어난다. 마치 우리의 시간과 공간은 좌표평면 위 X축과 Y축 같다. X축, 그 시간. Y축, 그 장소. 그 두 지점이 맞물리는 점에서 사건은 발생한다. 그 시간이 아니었더라면, 그 장소에 없었더라면 그 사건 또한 없다. 최대호 동문의 시도 마찬가지다. 그 수업, 그 교실이 아니었다면 그 시는 쓰이지 않았으리라.  
 
-편입해서 중앙대에 온 건가.
“사람들마다 각자 가지고 싶어 하는 것들이 있잖아요. 저는 그게 학벌이었어요. 이전에 다니던 대학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곳이거든요? 근데 중앙대는 다 알잖아요. 전역하고 어쩌다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갔는데, 그때 영어 실력이 조금 늘면서 목표를 잡아 편입을 준비했죠.”
 
-많이 알려진 대학 중에서도 중앙대에 오고 싶어 했던 이유가 있나.
“사실 편입을 준비했던 대학 중에서 가장 좋은 학교였고, 붙었기 때문에 즐겁게 온 거예요. 물론 그냥 막 선택한 건 아니고요. 제가 공군을 나왔는데 좋은 대학 다니는 애들이 주위에 많았어요. 중앙대 학생들이 꽤 있었죠. 자주 묻게 되더라고요. “중앙대 다니는 건 어때?” 그때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기대하며 들어온 중앙대는 어땠나.
“이전 대학에선 경영학 전공하다가 중앙대에선 식품공학을 전공했거든요? 전혀 안 맞았어요. 명문대에 대한 막연한 꿈만 가지고 성적 맞춰 들어온 거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죠. 고등학교 때도 문과였어요. 생물은 어떻게 해서 외우면 극복이 되는데 당연히 화학이나 수학은 젬병이었죠. 학점 2.85로 졸업했어요. 씨 밭이죠.”
 
-아까 중앙대를 다녔기 때문에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했는데.
“때는 3학년 1학기, 제가 따라가기 힘들어했던 화학 수업이었죠. 반포기 상태로 맨 뒤에 앉아 전공 책 귀퉁이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어요.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죠. ‘오, 여기 시 쓰기 좋게 직사각형의 긴 여백이 있네?’”
 
-굉장히 뜬금없다.
“저도 모르겠어요. 그냥 그 여백에 시를 쓰고 싶었어요. 그리고 ‘웃긴 시를 쓰자!’하는 생각이 들었죠. 시는 웃긴 게 아니잖아요. 시라고 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마지막에 웃기면 반전이 두 배 일 거라는 직감이 왔어요. 예상하지 못 한 거니까 사람들이 더 좋아할 거라는 판단인거죠.”
 
-수업 시간에 썼다는 그 시는 무슨 내용이었나.
“키 얘기에요.(우울) 제목은 ‘원한다면’이고요. 생각해봐요. 소개팅을 하고 싶다고 쳐요. 상대방이 좋아하는 스타일이 웃긴 사람이면 웃기려고 노력하면 되잖아요. 몸 좋은 사람이면 운동하면 되고 돈 많은 사람이면 돈을 모으면 되는데 키 큰 사람이라고 하면 만날 가능성을 높일 수가 없어요. 도입부에서 바꿀 수 있는 것에 대해 얘기하고 마지막에 키 얘기를 해서 반전을 주자고 생각했죠. 그래서 마지막이 이렇게 끝나요. ‘키 큰 사람이 좋다고 하지 마요. 다 컸어요.’”
 
-누구나 평소에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죠. 그러니까 이걸 조금만 정리해서 읽기 좋게 전달하면 모두가 공감해주는 거고요. 그런데 이걸 맨 처음에 제 개인 페이스북 계정에 올렸는데 반응이 처참했어요.”
 
-반응이 생각보다 좋지 않았나 보다.
“페이스북에는 저에 대해서 잘 아는 친구들만 있잖아요. 그러니까 ‘이거 왜 해?’, ‘얘 왜 또 깝죽거려?’ 등의 댓글이 달렸어요. 난 전략적으로 쓴 거였는데 못 알아주니까 엄청 분했죠. 시 쓰는 건 때려치우고 취업 준비를 했어요.”
 
 
 
 
그래도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다. 바닥을 찍으면 치고 올라오듯이 모든 걸 포기했던 최대호 동문에게도 기회가 왔다. 기회를 준 건 ‘인스타그램’이라는 SNS. 서로를 모르는 공간에서 자유롭게 누군가의 사진을 받아볼 수 있는 장점을 가진 인스타그램은 최대호 동문 특유의 시를 펼쳐 보이기에 아주 적합한 플랫폼이었다. 특히나 빛바랜 듯한 종이와 꼬마가 쓴 것 같은 손글씨는 타임라인을 파고드는 수많은 정보 속에서도 반짝거렸다. 깔끔한 카드 뉴스와 보기 좋게 편집된 영상 클립 속에서도 최대호 동문의 시는 타임라인 위쪽에 계속 머물러 있었다. 
 
-취업 준비를 하다가 시를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취업 준비 때문에 독서실을 다녔는데 같이 다닌 친구가 ‘인스타그램’이라는 SNS가 뜬다고 말해줬어요. 다운로드 받아보니 사진을 올리는 SNS더라고요. 근데 올릴게 없었어요. 취업도 안 되고, 돈도 없고, 자존감도 뚝 떨어진 상탠데 독서실 책상을 찍겠어요, 필기한 노트를 찍겠어요? 그래서 옛날에 쓴 시나 올려보자 했던 거죠.”
 
-이전과는 반응이 완전히 달랐나.
“최대호라는 사람을 모르는 상태에서 글만으로 평가하니까요. 좋아해 주는 사람이 많다 보니까 저도 계속해서 연재를 하게 되고, 글이 좋으니까 인기가 많아지고…현실은 시궁창이었는데 인스타그램만 켜면 연예인이 됐어요. 그러다 취업을 멀리하고 인스타그램을 열심히 했죠. 그러던 중 작년 4월에 제 사비를 들여 책을 냈어요.”
 
-베스트셀러 『읽어보시집』의 초판이 된 그 책 말인가.
“네. 어렸을 때부터 꿈이 ‘내 이름으로 된 책 내기’였거든요. 전부터 생각을 했죠. ‘시를 50편 쓰면 책을 꼭 내야지.’ 쓴 시가 50편 정도가 됐을 때 미대 다니는 동생에게 삽화를 그려달라고 해서 100쪽짜리 원고를 제본하러 가져갔어요. 자본금은 어머니가 아버지 몰래 대주셨고요. 『읽어보시집』이 나온 날 보다 그 제본된 책을 받아본 날이 제 인생 최고의 날이에요.”
 
-그 이후 취업 준비는 그만두고 시를 쓰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가.
“시에 대한 마음이 커지면서 준비한 만큼 취업이 잘 되지 않았어요. 아버지가 굉장히 싫어하셨죠. 근데 제가 원래 아버지 말씀을 잘 듣는 편이거든요? 그때 처음 대들었어요. 취업 준비는 계속하고 있다, 그런데 내 꿈은 취업이 아니다, 내 시를 인정해주는 사람들을 위해 시를 쓰겠다, 이건 하지 말라고 해도 소용없다, 라고 하면서요.” 
 
-SNS 시인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아무래도 『서울 시』의 작가 하상욱이다. 그러나 그와 최대호 동문의 시는 조금 다르다. 최대호 동문의 시가 가진 특징 세 가지로 ‘SNS’, ‘손글씨’, ‘연애’를 뽑아봤다.
“오, 맞는 것 같은데요? SNS라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SNS에 특화된 콘텐츠라는 의미다. 짧고 간결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콘텐츠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손글씨랑 SNS랑 같은 맥락인 것 같아요. 뉴스피드 넘어가는 속도가 엄청 빠르잖아요. 그 안에 담긴 정보들은 예쁘고 멋지고요. 멋지게 찍어놓은 브런치, 자유롭게 다녀온 유럽여행, 그 외 명소나 연예인 화보 등이요. 그러다 갑자기 누런 종이에 못생긴 글씨가 딱 있으니 누가 관심을 안 가지겠어요. ‘이게 뭐지? 편지인가? 한 번 볼까?’ 했는데 8줄을 안 넘어가니까 읽기 쉽고 또 바로 이해가 되죠.”
 
-너무 잘 알고 있는 것 같은데 혹시 전략이었나.
“전략은 전혀 아니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먹혔네요.(웃음) 전 어려운 시는 못써요. 살면서 한 번도 글을 써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냥 친구들 앞에서 말 많이 하고, 말 많이 해서 웃기는 걸 좋아하는 학생이었죠. 말을 하도 많이 해서 이쪽에 감각이 있나 싶은 정도지 글을 잘 쓰는 건 아니라 저렇게 시를 써 온 거고요. 손글씨는 제 아이덴티티가 돼 버려서 계속 고수하는 거죠. 그 종이에 그 글씨체 하면 ‘최대호구나!’하고 알 수 있잖아요.”   
 
-세 번째 특징, 연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연애를 주제로 가장 많이 쓰긴 하지만 다이어트도 주제로 많이 써요. 이 두 가지가 사람들이 가장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주제잖아요. 연애나 다이어트, 안 해본 사람 없고 안 하고 싶은 사람 없을 거예요. 먹는 것, 사랑하는 것, 자는 것 등 원초적인 걸 다루는 게 사람들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쉬워요. 제 시는 공감을 못 불러일으키면 실패거든요.”
 
-자신의 시가 해야 하는 역할이 있다고 보는 건가.
“그렇죠. 사람들을 공감시키고 웃게 만들고 슬프게 만드는 게 제가 원하는 거예요. 제 시를 보면 다 자신의 이야기일 거예요. 보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그러면서 피식 웃을 수 있는 그런 시를 쓰고 싶어요.”
 
-쓴 시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맘에 드는 시가 있다면.
“‘한 스푼’이요. 제 성격이 잘 드러나서 좋아요. 저는 아메리카노가 써서 싫어요. 그런데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게 멋도 나고 그게 제일 싸기도 하니까 자주 먹었거든요. 근데 너무 쓴 거예요. 어떻게 하면 아메리카노를 맛있게 마실 수 있을까 하다가 달달한 걸 넣어야겠다고 생각했죠. 이때 무릎을 탁! 달달한 거 하면 사랑이잖아요! 좋아하는 사람의 생각만으로도 아메리카노를 맛있게 마실 수 있을 것 같지 않나요?”
 
-지나가는 생각을 확 낚아채는 게 최대호 동문이 시를 쓰는 방법인 것 같다.
“지나가는 생각을 잡는다…표현이 좋네요. 시로 쓰면 좋겠다!”  
 
 
우리 모두가 바라는 일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하면서 돈 벌기, 내 이름으로 책 한 권 내기,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면서 일하기. 그런 의미에서 최대호 동문은 다 가졌다. 그는 큐레이션 서비스 업체 ‘피키캐스트’에서 시를 쓰며 일하고 있고, 이때까지 쓴 시를 모아 펴낸 『읽어보시집』은 베스트셀러 칸에 오르기도 했다. 이미 100만 SNS 독자가 그를 응원하기까지 하니 참으로 부럽다. 그래서 물었다. “대체 어떻게 하면 그렇게 살 수 있을까요?” 답을 들은 기자의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고 싶은 거 하세요, 제발.”
 
-지금까지 최대호 동문을 인터뷰하면서 느낀 건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라는 거다. 혹시 자신의 시에 점수를 매겨본다면 몇 점까지 줄 수 있나.
“이런 질문 처음인데 좋네요. 어렵기도 하고요. 음, 90점?”
 
-엄청 높다.
“(웃음) 제가 지금까지 쓴 시들은 제게서 나올 수 있는 최선이기 때문에 만점에 가깝다고 볼 수 있어요. 못 채운 10점은 소재는 좋은데 시화 못 시키고 있는게 많아서 5점, 시에서 깊은 맛이 안 나서 5점 뺐어요.”
 
-만점이 100점이라고는 안 했다.
“저는 자신 있어요. 남이 어떻게 봐주던 간에요. 별로라고 하든 재미없다고 하든 상관없어요. 일단 보라 이거에요. 한 번만 봐. 재밌을걸? 재미없을 것 같다고? 아닐걸?” 
 
-이런 사고라면 현실에 대한 걱정도 없을 것 같다. 
“저라고 왜 없겠어요, 있죠. 이건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그래서 자신 있는 분야니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거예요.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요, 다들. 쫄쫄 굶어도 하기 싫은 거 하면서 밥 먹는 것보다 하고 싶은 거 하면서 굶는 게 더 나아요. 물론 대기업 가는 게 꿈이면 대기업 가기 위해서 노력하는 게 맞고, 돈 버는 게 꿈이면 돈 벌려고 노력하는 게 맞아요. 근데 인생의 목표가 행복이고 멋진 인생이라면 행복과 멋진 인생을 위해서 노력해야지 왜 남들 다 하는 대로만 따라 하냐는 거죠.”
 
-혹시 등단할 계획은 있나.
“있죠. 그러나 등단을 위한 시를 쓰고 싶진 않아요. 등단을 하려면 해당 매체와 성격도 맞아야 되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곱씹을 거리가 있는 시를 써야 되잖아요. 근데 전 등단 안 해도 괜찮거든요. 등단에 도전하더라도 최대호만의 느낌을 살린 시를 써서 올리고 싶어요.”
 
-안 되면 어떡하나.
“계속 도전해 보면 되죠. 왜 또 걱정을 해요. 우리 모두 하고 싶은 걸 하자니까요!”
 
  
당신에게 
중앙대란?
 
“저는 평소에 시를 ‘명품 동아줄’이라고 말하고 다녀요. 시가 늪에 빠진 저를 구해줬거든요. 중앙대는 그 동아줄을 잡을 수 있게 받쳐준 의자 같아요. 의자가 밑에 없었으면 동아줄을 못 잡았을 거예요. 의자를 밟았기 때문에 동아줄을 잡고 하늘로 올라갈 수 있었죠. 제 모교라는 것이 무척 자랑스러워요. 나중에 아들이나 딸 낳으면 말할 거예요. ‘아빠, 중앙대 나왔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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