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자대면’을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세 사람이 얼굴을 마주 보고 대함’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누군가의 해명이 필요하거나 어떤 일의 진위를 가려야 할 때 세 주체가 만나는 것을 가리키고자 쓴다. 주위에서 삼자대면의 형국을 보기 힘든 것은 이 이유에서다.

 교수와 학생, 대학본부가 참여하는 ‘학부 학사구조 선진화 협의체’ 회의가 하루바삐 열렸다는 것은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다. 회의에서 협의체 위원이 추가적으로 선출된 것도, 협의체의 향후 아젠다와 역할, 일정 등을 다 같이 논의한 것도 긍정적으로 볼 만하다.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협의체라는 인상을 주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단순한 인상에 그치지 않으려면 몇 가지 선결 과제가 해결돼야 한다. 첫째로 협의할 아젠다를 정하는 데 있어 대학본부만이 주체가 돼서는 안 된다. 교수나 학생 대표 중 대학본부의 일방적 설명을 기대하고 이 회의에 들어온 쪽 있는가. 둘째로 중도에 회의장을 나가는 것은 ‘이 회의는 구성원들의 발언을 대하는 데 더 이상 민주적이지 않다’는 판단이 먼저 선 후여야 한다. 소통의 참의미는 아무나 논할 수 없다. 자신의 의견을 끝까지 개진해 보았는지, 상대의 의견을 소중히 여겼는지 자성해 본 이에게만 주어지는 권리다.

 유비, 관우, 장비 세 사람의 만남을 보고 삼자대면이라 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사욕을 버리고 목적을 향해 합심하자 결의한 것’에는 ‘도원결의’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기 때문이리라. 앞으로 세 주체가 만날 날이 많다. 그들의 수 많은 논의가 후에 꼭 도원결의라 불리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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