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은 고등학교 자습시간에 꾸벅꾸벅 졸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선생님께 걸려서 혼나게 됐는데요. 사실 속으론 억울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싶었는데 식곤증 때문에 불가항력적으로 졸게 됐거든요. 그래서 자려고 한 게 아니라 자게 됐다는 말을 생각해봤는데 튀어나온 말이 이것이었습니다. ‘선생님 저는 자졌습니다.’

  이렇듯 말하고자 하는 뜻(기의)과 그 말 자체(기표)가 항상 일대일로 연결되는 게 아닌 걸 느낄 때가 있습니다. 언어라는 기호도 하나의 사회적 약속에 불과한 것이니까요. 지난 한 주 동안 대학본부가 발표한 ‘학부 학사구조 선진화 계획(계획안)’의 면밀성을 검토하는 일은 계획안에 적힌 기표들이 기의들과 어떻게 연결됐는지 파악하고 평가하는 일이었습니다. 학내 주체마다 하나의 단어에 대해 받아들이는 의미가 달랐기 때문에 신중한 과정이었습니다.

  그중 계획안에서 자주 나타나는 ‘융·복합’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복잡했습니다. 학생들의 창의성 발현과 더불어 비인기전공 학과의 생존을 도모하자는 취지인데요. 그렇지만 마냥 긍정적으로만 그려지는 것은 아닙니다. 융·복합을 통해 비인기전공을 사실상 통폐합될 수 있는 위험성 또한 지적이 되고 있습니다. 융합 과정에서 대상 학과들의 정체성도 같이 녹아 없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죠.

  아직 계획안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예단하긴 힘들지만 융·복합이 이뤄지는 배경을 고려한다면 그 의미를 장밋빛으로만 그려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다만 중앙대가 재정지원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 교육부 주관의 대학구조개혁평가를 4월에 앞두고 있다는 점과, 그 평가의 방향이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밝힌 바와 같이 산업 인력 양성에 초점을 맞췄다는 맥락을 고려한다면 그 의미를 짚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복합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협력을 통해 효율성을 도모하고 거기에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게 하니까요. 그러나 말이 의미심장한 기의와 억지로 연결될 때면 발화자는 그 수상함을 덮기 위해 환상을 주입하곤 합니다. 화려한 수사학을 통해 장밋빛 미래를 그리게 하면서 말에 의문을 품지 않게 말입니다. 구조개편의 필요성을 말하는 글에서는 ‘국내외 최정상의 대학으로 거듭나기 위해 계획안이 반드시 필요하다’와 같은 표현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것처럼요.

  중앙인 커뮤니티를 보면 이러한 환상을 수용하고 내면화하는 유저들의 글도 보이곤 합니다. 이들은 구조개편에 반대하는 학내 구성원을 비판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학교 발전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듯 최우선적인 가치를 부여하면서요. 그러나 중앙대의 미래를 두고 환상을 논하기 전에 현실적으로 계획안이 주장하는 바가 어떤 의미고 구성원 모두가 원하는 상과 얼마나 근접하는지 따져보는 일이 선행돼야 할 것 같습니다.

  각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말들이 넘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차리고 ‘말’들에 올바른 뜻과 연결됐는지 파악하는 일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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