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대성>_에셔, 1898~1972

   에셔의 대표작에 해당하는 <상대성>은 계단을 중심으로 배치된 인물들을 통해 일상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좌측 상단에는 남녀가 산책하는 모습이, 우측 하단에는 식사를 하는 두 사람이 보인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옆으로 벽에 앉아서 편안하게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이다. 언뜻 보기에는 바닥에 앉아서 책을 보는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수직과 수평의 세계가 서로 다른 세 공간, 그곳에 살고 있는 서로 다른 사람들의 삶을 한 화면에 묘사한 그림이다.

  이 계단은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해야 하는 순환의 고리를 보여준다. 현대인의 일상도 마찬가지다. 영원히 반복될 것 같은 일상은 끊임없이 다가온다. 그리고 일상성 안에서 느끼는 감정은 분주함과 권태로움, 기쁨과 슬픔 등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상태들이 뒤섞여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모든 일상이 소리 없는 지배와 연결된다는 점이다. 전통사회에서의 지배가 신분이나 폭력과 같은 가시적인 성격을 지녔다면, 현대사회는 비가시적이다. 현대사회에서 국가나 자본과 같은 권력이 만들어 낸 새로운 무기가 바로 일상의 지배이다.

  사람들을 일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것, 그리하여 사회나 정치 문제, 인간의 내적인 문제에 대해서 망각케 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장치는 없다. 특히 일상의 지배가 개인의 욕구와 연결된 것처럼 여겨지게 될 때 효과와 지속성은 더욱 강력해진다.

  『현대 세계의 일상성』을 쓴 르페브르는 일상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방법에 대해 몇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무엇보다도 우선 일상 속에서 살며 일상을 체험할 것, 다음으로 그것을 수락하지 말고 비판적 거리를 유지할 것을 그는 요구한다.
에셔의 이 그림은 우리에게 일상을 낯설게 보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일상의 삶에서 떠나지 않으면서도 현실에서는 성립할 수 없는 비논리적인 이미지를 통해 그러한 일상을 생소하게 느끼게 하는 효과가 있다. 당연해 보이던 것에 대한 의아함은 일상을 구체적으로 바라보게 만들고,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일상에 매몰되었던 삶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에셔가 만들어 놓은 계단에서 벗어나는 꿈을 꾸자. 그 꿈의 실현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

『미술관 옆 인문학』 中, 박흥순 저, 서해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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