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봄이 더디게 찾아오는 안성캠퍼스 강의실에서 너를 처음 만난 것도 벌써 5년 전 일이구나. 이제 겨우 고등학생티를 벗은 너는 짙은 아이라인에 검은 생머리가 인상적인 신입생이었지. 그렇게 강한 인상을 주던 네가 수업시간만 되면 맨 뒷자리에서 사정없이 졸아대는 통에 나는 내 수업이 그리 지루한가 싶어 걱정을 했었다. 그러나 상담시간에 너를 만났을 땐 나름의 생기와 꿈이 있던 걸로 기억해.

  “수업시간에 왜 그렇게 조는 건데?” “주점에서 알바하느라 잠을 잘 못 자요….” “힘들지 않아? 다른 일을 좀 찾아보지 그래?” “근데요 교수님… 제가 술이 너무 좋아요. 사람들이 늦게까지 술 마시면서 기분 좋게 즐기는 모습을 보면 제 걱정이 사라지는 것 같아요. 술이랑 관계된 진로를 찾아볼까 싶어요.(히히)”

  농담인 줄만 알았는데 방학이 지나 다시 내 연구실을 찾은 너는 밤마다 연습해서 딴 칵테일 조주기능사 자격증을 들고 나타났어. 그때 알았지. 한다면 하는 녀석이구나. 넌.

  한 해, 두 해가 가면서 장난인 듯 진심인 듯 진로를 탐색해가던 네가 생각난다. 잠 많은 네가 새벽마다 출근하는 어린이집 실습도 마다하지 않았고, 노인들과 접해보고 싶다며 생뚱맞게 한의원 아르바이트도 했었지. 사회적 기업이 궁금해 사회적 기업으로 운영되는 떡집에서 무작정 일하기도 하고,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돌보는 아이가 말썽을 부린다며 마치 네 동생 일인 듯 한숨을 내쉬곤 했었지.
밤낮을 쪼개서 열심히 살았던 너에게 나는 미안함만 남는다. 후배들도 맞이할 기회를 주지 못하고 안성과 흑석을 오가며 힘들게 수업을 듣게 하고 번듯한 학생회실 하나 얻어주지 못했네. 그러고 보니 안성캠 호숫가에서 졸업사진 찍는 재미도 넌 느끼지 못했구나.

  무엇보다 가족복지를 공부해서 행복하다던 너에게 너의 전공이 이 사회에서 큰 가치가 없는 것처럼 느끼게 한 건 아닐까 싶어 면목이 없다. 우리 전공이 이윤을 창출하거나 꺼져가는 생명을 살리거나 졸업과 동시에 대기업 취업이 보장되는 않지만, 사람과 사람 간의 소중한 관계를 연구하고 사회에 기본이 되는 ‘가족’을 돕는, 우직함과 진정한 마음이 필요한 공부라는 것을 너는 어쩌면 알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어느새 눈발이 날리고 졸업논문을 쓰느라 정신이 없겠구나. 낭만이나 희망보다는 지레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내내 겁을 주던 대학을 떠나는 너에게, ‘믿는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어려움과 갈등의 대학생활이 너를 담금질하는 시간이 되었을 것이라고.

  너의 눈 화장은 많이 자연스러워졌고, 덕분에 반짝이는 네 20대의 눈빛이 더 빛나는 듯하다. 5년 전 3월의 그날보다 어쩌면 어깨가 조금 쳐져 보이기도 하지만, 네 마음속은 많이 여물었다는 것을 알기에,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 속으로 힘차게 날아갈 것을 믿는다.

  이 글을 안성캠 가족복지학과로 입학했으나, 학문단위재조정으로 인해 힘든 학교생활을 하고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보냅니다.

장영은 교수
가족복지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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